마블은 망해가는데, 왜 아이언맨은 여전히 그리울까

완벽하지 않아서 사랑받는 것들에 대하여

by 고도

영웅은 '한계'에서 탄생한다

요즘 마블 영화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나 역시 동의한다. 화려한 CG와 우주적인 스케일은 커졌지만, 가슴을 뛰게 하던 그 무언가가 사라졌다. 흥미롭게도 대중은 여전히 떠나간 영웅, '아이언맨(토니 스타크)'을 그리워한다. 왜일까? 그가 가장 강력해서?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가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잘 부서지는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조던 피터슨은 『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 이런 통찰을 던진다. 전지전능한 신이 가지지 못한 유일한 것은 바로 '한계'라고. 역설적이게도 신은 자신과 닮았으되, 자신에게 없는 '한계'를 가진 인간을 창조하고 기뻐하셨다.

이야기의 생명력은 결핍과 한계에서 나온다. 슈퍼맨이 처음엔 환호받다 점차 지루해진 이유, 최근 등장하는 '우주적 힘'을 가진 마블의 영웅들이 매력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너무 완벽하다. 한계가 없는 곳에 고뇌는 없고, 고뇌가 없는 곳에 성장은 없다. 우리는 전지전능한 해결사가 아니라, 피 흘리고 부서지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인간을 사랑한다.


토니 스타크, 가장 포퍼(Popper)적인 인간

나는 토니 스타크를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가 말한 '추측과 논박'의 과정을 가장 잘 시각화한 인물로 본다. 그에게 '아이언맨 슈트'는 단순한 무기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향해 던지는 '가설(Hypothesis)'이다.

영화 속에서 그의 슈트는 처참하게 박살 난다. 적의 공격에 부서지고, 시스템 오류로 추락한다. 이것은 가설이 틀렸음이 증명되는 '논박(Refutation)'의 순간이다. 하지만 토니는 부서진 슈트를 보며 좌절하거나 숨기지 않는다. 슈트가 박살 나는 순간 데이터는 수집되고, 그는 곧바로 새로운 가설인 'Mark' 시리즈의 다음 버전을 설계한다.

Mark 1에서 Mark 85까지. 그 숫자는 그가 얼마나 많이 실패했고, 그 실패를 얼마나 철저하게 검증했는지를 보여주는 훈장이다. 그가 매력적인 이유는 슈트가 단단해서가 아니다. 슈트가 부서질 때마다 더 나은 가설을 들고 나오기 때문이다. 즉, 그는 칼 포퍼가 이야기하는 과학적 지식의 성장 과정을 그대로 밟는다.


나는 왜 부서진 슈트를 고집했는가

최근 나의 업무 프로젝트, 특히 'Pilot 5'의 실패를 복기하며 나는 내가 토니 스타크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음을 깨달았다.

초반 Pilot 1에서 4까지는 성장이 빨랐다. 토니가 초기 슈트들을 빠르게 개선해 나갔듯, 나 역시 가설을 세우고 실행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문제는 Pilot 5에서 터졌다. Pilot 5가 현장에서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것을 '논박'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새로운 가설(새로운 Pilot)을 준비하는 대신, '임시변통(Ad hoc)'이라는 땜질 처방에 매달렸다. "이 이론이 진리였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Pilot 5는 외관상 세련되어 보였을지 모르나, 성능은 나오지 않는 실패한 가설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프로젝트에 쏟은 시간과 애정 때문에, 그 한계를 직시하지 못했다.

Pilot 4로 돌아가 무엇이 문제인지 면밀히 비교하거나, 과감히 Pilot 5를 폐기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현장에 적용되었다는 압박감, 그리고 내 아이디어를 보호하고 싶은 욕망이 섞여 나는 누더기가 된 가설을 붙들고 씨름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개선하려 건드릴수록 성능은 나빠졌고, 안정적인 패턴 없이 오락가락하는 시스템은 나와 동료들을 지치게 했다.


가장 아끼는 아이디어를 죽여라

Pilot 5의 실패는 나에게 뼈아픈, 그러나 진정한 자산을 남겼다. 그것은 바로 태도의 문제다. 개발자는, 아니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자신의 창조물과 사랑에 빠져선 안 된다. 오히려 찰리 멍거가 말했듯 뒤집어 생각해야 한다.

"이게 망한다면 어떤 이유 때문일까?"

더 나은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내 내부에 '레드팀(Red Team)'을 만들어야 한다. 자식같이 소중한 아이디어라도 무자비하게 박살 내고 검증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대니얼 카너먼이 제안한 '사전 부검(Pre-mortem)'은 훌륭한 도구가 될 것이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이 프로젝트는 이미 처참하게 실패했다"고 가정하고 그 원인을 역추적해 보는 것이다.

앞으로 나는 내 가설이 논박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슈트가 부서져야만 비로소 다음 단계의 Mark가 탄생할 수 있음을, 그리고 영원하지 않고 부서지기 쉽기에 그 성장의 과정이 소중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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