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운 글'을 쓰는 가장 확실한 방법

글쓰기에 진화론적 패러다임 적용하기

by 고도

우리는 흔히 글쓰기를 창조의 영역이라 여긴다.

완벽한 영감과 치밀한 설계도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감. 커서가 깜빡일 때마다 숨이 막히는 건 바로 이 강박 때문 아닐까.

나 역시 그랬다. 글쓰기뿐 아니라 삶 전체가 그랬다. 나는 "해낸다"는 말을 신봉했다. 안 되는 일도 되게 하고, 벽을 만나면 들이받아서라도 길을 냈다. 그것이 능력이고 미덕이라 믿었다.

2025년, 그 믿음은 나를 배신했다.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스르고 억지로 결과를 쥐어짜 내던 작위적인 방식은 결국 한계를 맞았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나를 몰아붙인 끝에 남은 건 번아웃이라는 강제 정지 신호뿐이었다.

텅 빈 안식년의 시간 속에서 찰리 멍거와 도덕경, 그리고 복잡 적응계 이론을 탐구하며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통제해야 할 기계가 아니라, 스스로 자라나는 생태계였다."

기계는 설계도가 필요하지만, 생태계는 설계되지 않는다. 그저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할 뿐이다. 나는 어렵게 얻은 안식년에 얻은 취미인 글쓰기만큼은 절대 작위적으로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이 진화론적 패러다임을 적용해 보기로 했다.


메타 라이팅(Meta-Writing): 창조주가 되지 말고, 선택자가 돼라

깨달음 이후, 키보드 앞에 앉는 마음가짐을 바꿨다. '창조주'의 부담감을 내려놓고, '진화론자'가 되어 쓰기로 했다.

칼 포퍼는 과학이 끊임없는 반증을 통해 진보한다는 메타 사이언스를 정립했다.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식이 발전하는 구조를 규명한 것이다.

나는 이 관점을 빌려 내 방식을 메타 라이팅이라 부르기로 했다. 글을 잘 쓰는 기술이 아니라, 생각이 탄생하고 생존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과정은 3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 변이를 만든다 (저널링) 스마트폰 메모장(나는 Notion을 사용한다)에 생각의 씨앗을 무작위로 뿌린다. 다윈의 원시 수프와 같다. 샤워하다 떠오른 생각, 길을 걷다 느낀 분노, 책 속의 한 줄. 논리도 검열도 필요 없다. 날것 그대로 기록한다. 이것은 일기보다 더 원초적인 저널링(Journaling)이다.

둘째, 자연선택에 맡긴다 (숙성) 시간이 흐른 뒤 메모장을 다시 연다. 이때 일어나는 것이 바로 자연선택이다. 모든 생각이 살아남지는 못한다. 대부분은 휘발되지만, 어떤 생각은 시간이라는 양분을 먹고 자라나 비로소 '할 말이 많은' 상태가 된다. 그사이 내가 겪은 경험과 사유가 덧입혀져 스스로 생존력을 갖춘 녀석들만 내 선택을 받는다.

셋째, 진화시킨다 (발행) 나는 그렇게 살아남은 녀석들을 골라내어 살을 입히고 다듬어 브런치에 내놓는다. 이것은 창조가 아니라 진화다.

이 방식의 미덕은 '작위성'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억지로 짜낸 글이 아니라,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잉태되고 선택받은 생각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장 '나다운 콘텐츠', 나만이 쓸 수 있는 진솔한 이야기들만이 끝까지 살아남는다.


맥락의 발견: 보물은 이미 당신의 노트 속에 있다

세네카는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과거뿐"이라고 했다. 진화론적 글쓰기의 또 다른 묘미는 과거의 기록들이 보여주는 '거대한 맥락'에 있다.

안식년을 고민하던 6개월 전, 지난 수년간의 저널을 다시 읽었다. 치열하게 살던 당시에는 보이지 않던 삶의 붕괴 궤적이 그제야 보였다.

5년 전 기록에는 이미 지침이 묻어 있었고, 3년 전부터는 우울이 깊어지고 있었으며, 1년 전부터는 자율신경계 이상이라는 실질적인 병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단절되어 있던 하루들이 모여 비로소 고장의 인과관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기록이 보여준 흐름 덕분에 나는 안식년이 순간의 충동이 아닌, 살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당신의 스마트폰 메모장이나 낡은 노트 속에도, 당신조차 잊고 있던 아직 발현되지 않은 보물들이 잠들어 있을지 모른다.


결론: 함께 진화해 보시겠습니까?

도덕경의 '무위자연'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이다. 진화론적 글쓰기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쥐어짜는 고통 대신, 내 안에서 솟아나 살아남은 것들을 수확하는 기쁨이 있다.

물론, 이 글조차도 아직은 검증되지 않은 하나의 가설이다. 나는 여전히 초보 작가이고, 이 실험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동료 작가들에게, 그리고 글쓰기를 망설이는 분들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싶다. 완벽한 첫 문장을 쓰려고 고통받는 대신, 메모장에 잠들어 있는 투박한 생각들을 한번 꺼내보시는 건 어떨까.

만약 아직 저널링을 하고 있지 않다면, 혹은 매번 소재 고갈에 시달리고 있다면, 오늘부터 당장 스마트폰 메모장을 켜보시길 권한다. 무심코 적어둔 한 줄이 차곡차곡 쌓이면, 훗날 결코 마르지 않는 영감의 샘이 되어 당신의 창작을 끊임없이 적셔줄 테니까.

그것들은 쓰레기가 아니라, 아직 선택받지 못한 당신의 가능성이다. 이 거대한 생태계 안에서, 우리 각자의 방식대로 함께 진화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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