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년의 깨달음은 몽상일까

30년 뒤의 딸들에게 전하는 아빠의 타임캡슐

by 고도

나의 사랑하는 두 딸들에게.

오늘은 2026년 2월 20일 금요일. 아침에 진이가 일찍 일어나서 혼자 식탁 의자에 앉아 패드로 유튜브를 보고 있더구나. 엄마가 어제 충전한다고 식탁 위에 놓고 잔 걸, 일찍 일어난 진이가 기회를 포착한 거지. 앞으로는 다른 데서 충전하기로 했다. 이제 곧 진이가 어린이집에 등원할 예정이라 오늘 OT가 있어서 엄마가 다녀왔단다. 진이는 성격이 무던하고 눈치가 빠른 편이라 어린이집에 적응을 잘할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아빠 마음엔 내심 염려가 되는구나.


안식년의 깨달음은 몽상일까

아빠는 요즘 마음 한구석에 지속적인 의문을 품고 있단다. 지금 아빠는 안식년을 보내고 있어서 마음을 흔들 만한 자극적인 요소가 별로 없어. 하지만 이 고요한 시간이 끝나고 다시 치열한 실제 업무와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내가 지금 다짐하고 반성한 것들을 과연 그대로 실천할 수 있을까?

예전에 벤자민 프랭클린도 같은 고민을 했던 모양이야. 그는 13가지 덕목을 정해두고 매일 자신을 피드백했지. 아빠에게도 그런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단다. 그리고 그 가장 기본이 되는 습관은 매일 저녁 일기를 쓰는 것이겠지. 하루를 정리하고 반성하는 습관, 그것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일 테니까.

오늘 아빠가 일기를 쓰며 뼈저리게 후회한 일이 하나 있단다. 저녁쯤 엄마에게 은근슬쩍 이렇게 말했어. "봐봐, 남편 멋있지? 어디 나가는 것도 없고, 가만히 앉아서 책만 읽고." 아빠는 내심 칭찬을 바랐어. 하지만 엄마의 대답은 "거봐, 내가 휴가 쓰라고 했지? 이런 와이프 어때?" 였단다. 평소 같았으면 웃으며 맞장구를 쳤을 텐데, 오늘따라 그 태도가 갑자기 못마땅하게 느껴졌어. '나에 대한 인정이 먼저 아닐까?' 싶었지.

물론 엄마는 아빠가 칭찬을 바랄 때마다 본인의 공을 먼저 내세우는 장난스러운 경향이 있고, 그게 가끔 불만스러울 때도 있었어. 하지만 마음에 여유가 있고 명랑할 때는 결코 화가 나지 않는 일이었지. 결국 문제는 엄마의 태도가 아니라, 아빠의 마음 상태였던 거야.


천재의 가면과 평정심이라는 기술

왜 갑자기 화가 났을까 내면을 깊이 분석해 보았단다. 진짜 원인은 엉뚱하게도 '인터넷 댓글'에 있었어. 예전에 어떤 유튜브 영상 아래에 아빠가 댓글을 달았는데 좋아요가 꽤 많이 눌렸어. 그런데 어떤 사람이 거기에 반박을 달았더구나. 그냥 넘어가면 될 텐데, 아빠는 그 매력적인 함정에 걸려들고 말았어. 우리의 뇌는 싸움을 참 좋아하거든. 싸울 때 도파민이 뿜어져 나오고, 잠시나마 살아있다는 강렬한 자극을 받게 되니까.

처음부터 싸우려던 건 아니었어. 약간 무례한 댓글에 대해 나름 '합리주의자'로서, '내가 틀리고 당신이 맞을 수도 있다'는 정중한 태도로 답하려 했지. 그런데 돌아온 대댓글은 "하… 더 자세히 써줬어야 이해를 하겠네 ㅋㅋㅋ" 였어. 나를 한심하게 여기는 듯한, 아빠의 지적 능력을 깔보는 오만함이 읽히자 순식간에 흥분하고 말았단다.

이것이 아빠의 치명적인 약점이야. 지난번 편지에서 말했던 그 '천재의 가면'을 정통으로 건드린 거지. 아빠는 분명 안식년 동안 이 얄팍한 가면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삶을 그리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약점이 건드려지자마자 그간 책을 읽으며 사유했던 것들을 까맣게 잊고 또다시 논쟁에 뛰어들고 만 거야.

그때 아빠의 뇌는 이미 흥분 상태였어. 스스로는 평화롭게 책을 읽고 있다고 착각했지만, 속으로는 파도가 치고 있었지. 그러다 재미 삼아 엄마에게 칭찬을 요구했고, 원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자 애먼 곳으로 화가 튀어버린 거란다.

마음의 평정심. 그것은 아빠가 앞으로도 계속 단련하고 싶은 덕목이야. 평정심을 갖자고 속으로 다짐만 한다고 해서 그렇게 살아지는 게 아니란다. 마음을 다스리는 건 일종의 '기술'이야. 그 기술은 누가 대신 가르쳐주지도 않고 하루 아침에 얻어지지도 않아. 인생이라는 실전 속에서 수많은 가설을 세우고, 무참히 실패해 보고, 다시 유용한 방법을 찾아가는 끈질긴 과정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지. 앞으로도 무수한 실패가 있겠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을 거란다.


실천적인 사랑은 몽상이 아니다

요즘 아빠는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고 있어. 고백하자면, 이 두꺼운 고전을 집어 든 데에는 '교양 있어 보이고 싶다'는 약간의 허세도 들어갔음을 인정해야겠다. 이 역시 아빠의 '천재의 가면' 중 일부겠지. 초반엔 사람 이름이 너무 헷갈려 읽기 힘들었지만, 꾹 참고 넘기니 꽤 흥미로워지더구나.

책 속에 '조시마 장로'라는 지혜로운 인물이 나와. 하루는 어떤 귀부인이 그에게 '실천적인 사랑'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지. 자신은 인류를 너무 사랑해서 모든 걸 버리고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막상 자문해 보면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거야. 자기가 돌보는 환자가 고마워하기는커녕 불평하고 비하한다면 그 배은망덕을 견딜 수 없을 테니까. 결국 자신은 타인의 칭찬과 보답을 바라는 '보답의 노예'일 뿐이라서,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는 고백이었지.

이에 대한 장로의 답변이 아빠의 마음을 세게 때렸단다. "인류 전체를 더 많이 사랑할수록, 개별적인 사람들은 점점 덜 사랑하게 됩니다. 몽상 속에서는 인류를 위해 십자가형도 마다하지 않을 각오를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단 이틀도 누군가와 한 방에서 지낼 수가 없는 법이지요."

그렇다. 몽상(夢想). 아빠는 이 단어만큼 두려운 게 없어. 아빠가 이 안식년 동안 책을 읽으며 깨닫고 다짐한 모든 것들이 그저 온실 속의 '몽상'이어서, 현실의 거친 파도에 부딪히면 단박에 깨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에게 관대해지겠다, 침묵하겠다, 인정을 구하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이 역시 속으로는 그럴싸한 내 모습을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칭찬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숨어있었던 건 아닐까.

조시마 장로는 덧붙였어. 실천적인 사랑은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라, 가혹한 노동이자 인내라고. 온갖 노력을 기울여도 목표에서 멀어지는 것 같은 공포감을 느끼게 될 거라고 말이야.

현실은 아빠의 기대와 달리 칭찬은커녕 비아냥과 무시, 배은망덕한 일들로 가득할지 몰라. 오늘 인터넷 댓글에서 겪었던 일처럼 말이야. 하지만 관대함과 평정심은 다짐만으로 성취되지 않는단다.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날 선 본능들을 무수히 억누르고, 그 틈새에 규율 있는 훈련과 인내를 촘촘히 채워 넣어야만 비로소 '기술'이 되어 내 것이 되는 거겠지.


너희들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해왔지만, 이 편지에서 고백했듯 아빠도 이런 것들이 전혀 잘 되지 않는단다. 글은 너희에게 쓰는 것이지만, 사실은 미래의 아빠에게 쓰는 글 같기도 하구나. 30년 후의 아빠는 너희들에게 말한 것처럼 잘 살고 있을까?


이만 줄이도록 하마,

사랑을 담아서,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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