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후의 두 딸들에게 남기는 편지
나의 사랑하는 두 딸들에게.
오늘은 2026년 2월 21일 토요일. 너무 따뜻해서 깜짝 놀랄 정도였단다. 낮 최고 기온이 18도까지 올랐으니, 한겨울인데도 봄기운이 완연했어. 원래는 가까운 썰매장에 가서 올겨울 마지막 눈놀이를 시켜줄까 했었지. 그런데 어제 새벽에 진이가 아빠를 조금 힘들게 하는 바람에 늦잠을 자기도 했고, 날씨도 썰매를 타기엔 너무 따뜻해서 계획을 바꿨단다.
대신 아침부터 꺼내든 건 <플레이도> 찰흙놀이였어. 진이가 손을 빠는 습관이 있어서 그동안은 잘 안 시켜주던 건데, 이제는 자는 시간 말고는 손을 잘 안 빠는 것 같아 오랜만에 꺼내주었지. 다행히 오전 내내 그걸로 아주 잘 놀더구나.
찰흙놀이를 하면서 슬이가 조물조물 파르페도 만들고 아이스크림도 만들어서 아빠한테 가져다주었어. 아빠가 "와, 이 집 너무 맛있네요. 다른 것도 만들어주세요!" 하니까 슬이가 "네~" 하고 귀엽게 돌아갔지. 그런데 옆에서 설거지하던 엄마가 갑자기 "그렇습죠~" 하고 사극 말투를 흉내 내며 장난을 치는 게 아니겠니? 아빠가 "그건 노비 아니야?"라고 받아쳐서 아침부터 한바탕 크게 웃었단다.
오후에는 근처 허브농원에 다녀왔어. 그곳에 모래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한참을 재미있게 놀았지. 그렇게 놀고 있다 보니 연락을 받고 온 슬이 친구 태린이도 합류해서 더욱 신나는 시간을 보냈단다.
오늘은 온전히 너희들에게만 집중하며 다른 생각은 비워내려고 노력했어. 그런데 참 이상하지?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여유롭게 지내는 게 생각보다 꽤 힘든 일이란다. 사실 오늘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평온한 하루였는데도, 문득 마음 한구석으로 은근한 불안함이 몰려왔거든. 그 이유가 뭘까 가만히 들여다보았지.
불안한 마음의 밑바닥에는 '지금 뭔가 해야 하는데 안 하고 있다'는 강박이 자리 잡고 있었어. 아빠가 이런 불안함이 찾아올 때 효과를 본 방법을 하나 알려줄게. 물론 당장 해야 할 명확한 과제가 있다면 그걸 먼저 해치우면 되겠지. 하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없거나 그저 푹 쉬어야 할 타이밍인데도 불쑥 불안감이 찾아온다면, 반대로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는 게 좋단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과연 생존에 불리한 전략일까? 아빠는 기업들의 흥망성쇠에 관심이 많아 여러 경영 서적을 읽어보았는데, 의외로 '아무것도 안 해서' 망한 회사는 거의 없단다. 오히려 조급함과 불안함에 쫓겨 쓸데없는 일들을 마구 벌이다가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훨씬 많지. 그러니 뾰족하게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을 때는, 그저 가만히 머무는 것도 아주 훌륭한 선택이야. 마치 초원의 사자가 사냥할 때를 제외하고는 가만히 엎드려 에너지를 아끼는 것과 같은 이치란다.
성경에 나오는 선악과의 비유도 이와 관련해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단다. 창세기 2장 15절에서 17절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평화롭게 살기 위해 필요했던 건 '무엇을 더 잘해야 하는가'가 아니었어. 그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명확히 아는 것이 가장 중요했단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꾸만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지?" 하고 끊임없이 고민해. 그리고 그 질문 때문에 마음속이 자꾸만 불안해지지. 하지만 슬이야, 진이야. 마음이 초조해질 때마다 생각의 방향을 틀어 '내가 지금 무엇을 피해야 할까,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까'를 생각해 보렴. 즉, 너의 한계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명확히 기억하는 거야. 그 선만 넘지 않는다면, 그 안에서는 온전한 자유를 느끼며 무엇이든 '임의로' 즐겨도 좋단다.
한계를 명확히 기억하면, 오히려 그 안에서 자유를 느낄 수 있단다.
사랑을 담아,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