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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말함 Aug 28. 2022

내 곁에 닿은 당신을 환영합니다.

"점을 선으로, 한 번의 만남을 긴 인연으로. 한 번으로 끝날 수도 있는 만남에 물을 주고 결국 꽃피우도록 하는 정성. 저에게 없는 단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그 정성일 거예요. 낯가림이 심하다고, 심하게 내성적이라고 아무리 변명을 해보아도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죠. 그 핑계로 딱 한 뼘의 공간만 다른 사람들에게 내어주고 있거든요. 그 좁고 그늘진 공간에 어떻게든 뿌리를 내리는 인연들에게만 겨우 물을 주는 형편이거든요. 그 밖의 인연들은 다 가위로 싹둑싹둑 자르면서요. 제 마음대로 인연을 재단하면서요. 그러지 말자, 라고 아무리 다짐을 해보아도 자꾸 품이 좁아지는 저 자신을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중략) 무턱대고 누군가에게 기대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어깨를 내주기도 해야겠어요.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함부로 등을 돌리지도 않고 슬며시 곁에 앉아봐야겠어요. 술도 좀 권해봐야겠어요. 제 곁의 양지를 조금 넓혀봐야겠어요. 그곳에 어떤 싹을 틔울지 알지 못하잖아요."
-김민철,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나의 어리석은 점을 말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그중에서 하나를 꼽아보자면 인간관계에 지나친 철벽을 친 것이다. 성별과 나이를 막론한 철벽이 어디에서 나타난고 하니, 대학교를 졸업하는 동안 인간관계가 비교적 단출하게 정리되었다는 데에 기원이 있었다. 지금 내 곁의 사람들과 변치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나의 한정된 에너지를 굳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데 쓰기보다 이미 있는 사람들에게 살뜰히 써야겠다고 결심해버렸다. 사회생활을 하며 인간관계에 상처를 입거나 지칠 때면 이러한 생각은 더욱 견고해졌다. 그러다 보니 애초에 새로운 만남에 관심이 없고, 혹여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라치면 나와 잘 맞을지 아닐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도 못하는 채로 이미 친해질 생각이 없어 대화에 시큰둥하게 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인들의 삶의 궤적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면서 그전까지 오랜 시간 쌓아왔던 만남의 양상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컨대 결혼식 같은 거국적인 만남이 아닌 경우에야 결혼한 남자 동기들을 만날 수 없게 되었으며 결혼을 한 친구에게 섣불리 외박 일정을 제안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정서적으로 내가 가장 친밀하게 여기는 친구가 임신을 하고 휴직을 하게 되면서 향후 5년 정도는 육아로 인해 예전처럼 만나는 것이(이 경우, 만남의 장소, 만남의 횟수, 만나서 나누는 정서적 교류와 관심사 모두를 포함한다.) 어렵겠다는 계산과 동시에 탄식이 절로 나왔다. 예전처럼 만나지 못한다고 해서 관계가 끝나거나 변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내 곁에서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삶의 주기에 따른 관계의 변화를 나는 결코 떠올려 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물리적으로 가깝다는 것이 관계의 질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깊은 관계의 누군가는, 물리적으로는 가깝지 않더라도 그 존재와 관계 자체만으로도 정서적인 안정감과 충족감을 불어넣어 준다. 예전처럼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서로를 염려하며 응원하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또 요즘은 워낙 과학 기술이 발전해서 물리적인 거리를 한순간에 무화시키는 스마트한 소지품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물리적으로 가까워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어딘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맛난 음식을 나눠 먹을 수 있으며 서로의 눈을 바라볼 수 있다. 난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것을 먹고 풀냄새 나는 어딘가를 걸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이런 행복들이 앞으로는 쉽지 않겠다고 여겨지는 것이 두려웠다.


  각자의 생은 전혀 다른 경로와 속도로 이루어져 가기 때문에 때로는 서로가 멀리 떨어지는 순간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변곡점마다 새로운 만남의 기회와 인연이 찾아온다고 믿는다. 우선은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이고, 긴장을 수반하는 낯섦과 생경한 경험을 통해 자신과 다름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깊이와 외연을 확장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조금 더 마음의 문을 열고 내 곁에 닿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잘해야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며 대화해야지. 나와 다르더라도 나보다 잘난 점을 찾아 욕심내어 배워야지. 다짐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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