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
사랑하는 아들!
엄마는 지금 아주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하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단다. 지금처럼 엄마가 말짱한 정신일 때 바로 엄마의 마음을 전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이 글을 쓰려고 한다.
언젠가 한번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네게 말한 적이 있지.
“아들! 엄마는 절대로 연명치료는 하지 않을 거야. 알았지?”
“엄마! 그건 엄마의 생각일 뿐이야. 자식 된 도리로서는 모든 치료를 다해야 하는 거야”
네 입장도 이해가 되어 문서로 남겨두는 것이 좋은 것 같아. 지금부터 솔직하게 엄마의 마음을 이야기할게.
엄마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보내면서 느낀 점들이 많았어. 갑자기 교통사고로 파킨슨씨병 말기로 접어든 외할아버지가 너무도 안타깝고 마음 아팠단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무의미한 연명을 하고 계신 아버지가 보기 좋지는 않았다. 가족도 못 알아보시고 그냥 침대에 누워계시기만 할 뿐 인간으로서의 생활이 아닌 상황을 엄마는 견뎌내기 힘들었다. 병원비는 외삼촌이 내고 있었지만 그도 맘이 편하진 않았고. 다행히 긴 소송에서 마지막에 반승소를 해서 어느 정도 병원비는 감당할 수 있었지. 하지만 그 세월 동안 외할머니와 이모들 그리고 외삼촌네 식구들은 마음고생이 참 많았다.
외할머니도 대퇴부 골절로 요양병원에 가시게 되었을 때 걱정이 많았다. 과연 재활치료를 해서 다시 걸을 수 있게 될까? 욕창과 치매로 삶의 의욕을 잃은 외할머니를 보면서 할머니가 이 생활을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되었지. 내심 고통 없이 그냥 빨리 가시는 게 나은 게 아닌 가 자문하기도 했었단다. 외할머니가 위독하게 되었을 때 병원에서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보호자의 동의서를 요구했단다. 엄마랑 할머니는 그전에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라는 것을 작성했지만 위중하게 되었을 때 다시 보호자에게 물어보고 결정하는 거라고 한다. 우리 형제들은 모두 동의했어. 그래서 외할머니는 마지막 순간에 가족 모두를 알아보시고 엷은 미소까지 짓고는 그렇게 편안히 가셨단다.
‘내 마음을 전하는 노트’라는 엔딩노트의 주목적은 생의 마지막에 연명치료 여부에 관한 의사를 밝히는 것이라지만, 더 폭넓게는 가족에게 전하는 말이나 장례절차 등도 적고 있다고 해.
엄마가 어떤 원인으로 죽을지는 몰라. 내일 일은 모르는 거니까. 한국인 사망통계자료에 의하면 사망원인 1, 2, 3위는 각각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이라고 하네. 엄마는 각각의 상황에 대해 다른 엔딩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먼저 암에 걸리는 경우야. 우선은 수술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수술이 가능하다면 당연히 암을 제거해야겠지. 만일 암이 전이된 상태로 발견된다면 암으로 죽으리라는 게 확실해져. 이때는 어디까지 치료를 할지도 엄마의 의지대로 할 거야. 항암치료로 완치될 수 있다면, 단 그 확률이 50% 이상이라면 항암치료를 받을 거야. 그러나 항암 치료해도 완치 가능성이 없다면 받진 않을 거야. 남아 있는 삶을 정리하고 기운이 다할 때까지 못 해본 것들을 해보면서 삶을 마칠래. 아픈 건 싫으니까 진통제는 실컷 맞을 거야.
엄마 심장은 튼튼하니까 심장질환이나 뇌질환으로 죽는 것보다 늙고 쇠약해져서 건강 상태가 나빠진 연후에 노환으로 죽을 확률이 가장 높지 않을까 생각해.
혼자서 바깥 외출하기가 힘들어지는 단계가 되면 우선은 집에서 화초를 가꾸거나 책을 보면서 그렇게 여생을 보내게 될 거야. 그 기간이 너무 길지 않기를 바란다.
그다음 단계로 침대 밖으로 못 나가게 되는 건데, 엄마는 결코 그 단계로 진입하고 싶진 않아. 말 그대로 죽어도 싫어. 어쩔 수 없이 그 단계에 진입하게 된다 해도 병원엔 가지 않을 거야. 갑자기 열이 난다든지 기력이 쇠해져도 그냥 내버려 둬. 그때에도 엄마 지력이 남아서 내 일은 내가 알아서 결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엄마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엄마가 이런 결정들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야. 바로 치매지. 엄마가 치매에 걸린다면 우선은 스스로 진단을 받을 만큼 판단력을 가지기를 간절히 기도해. 그래야 남은 생에 대해 계획이라도 세울 수 있겠지. 마음은 이미 죽었는데 몸은 살아 있는 것만큼 끔찍한 일도 없을 거야. 치매도 몇 단계가 있는데 엄마가 치매에 걸린다면 가족들이라도 알아보는 단계에 알게 되면 좋겠어. 그것도 안 되는 상태가 되면 엄마는 이미 죽은 거야. 더 오래 살아도 너에게 좋은 모습으로 남기 어려워질 테니까. 치매에 걸려 사람을 못 알아본다고 해도 그게 깜빡깜빡하기 때문에 어떤 날은 좀 나아 보일 수 있겠지만, 거기에 속으면 안 돼. 결국 좋아 보이는 날은 점점 줄어들고 엄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거야.
명심해! 엄마는 엄마로 살다 죽고 싶어. 난 절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서 죽긴 싫어. 심폐소생술은 절대로 하지 마. 코 줄도 삽입하지 마. 인공호흡기도 달지 마. 소변 줄도 끼지 마.
엄마는 내가 내 손으로 밥을 먹고, 화장실 가고, 차차 기력이 달려서 자연스럽게 이승을 떠나고 싶어. 집에서 잠자듯이 가고 싶지만 그렇게는 어렵겠지. 그러면 요양원은 괜찮아.
엄마 장례는 조촐하게 하고 싶어. 엄마를 아는 사람만 조문 오면 좋겠어. 화장해서 산에 뿌리거나 수목장이 좋겠어. 그게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거니까.
사랑하는 아들!
엄마의 뜻을 잘 이해하고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죽음이 있기에 삶도 있는 것이고 죽음은 삶과 결국 같은 것이란다.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오늘 하루도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