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반맨 Oct 26. 2022

눈치 없는 남자

49금 유머인문학 01.

“뭐가 미안한데?"라는 아내의 반문에 머리를 쥐어뜯어 본 적 있지 않은가?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들의 이런 요상한 대화 패턴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녀들의 언어 속에는 비밀코드가 담겨있어 해독이 필요하다.
‘여자어’ 번역기가 나올만했다. 겉으로는 A를 말하면서 속마음은 B를 요구하는 여자들의 이중 심리를 남자들의 입장에서 해독하는 것이란다. 


사실 겉과 속이 다른 여자들의 대화방식은 오래된 진화의 산물이다.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사냥을 간 남편이 죽게 되면 여자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자신과 아이들을 돌보기 어렵게 된다.
따라서 여자의 언어도 상대방의 감정을 해치지 않고 유대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아버지나 남편이 절대 권력자인 가부장제 시대에서는 남자의 눈치를 보면서 자신의 요구를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여자의 언어습관이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그녀들의 언어습관은 더욱 진화되고 있다.
단순히 우회적인 표현을 넘어, 듣는 사람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말이다 
“원하는 대로 해”라고 말하면서 여자가 남자의 얼굴을 쫴려본다면? 
이미 자르기로 마음먹고서는 “나 그냥 단발로 자를까?”라고 물어본다면?
“꼴도 보기 싫으니까 나가!”라고 했다가, 가장이 식구를 팽개치고 나간다고 비난한다면?  
도대체 어쩌 라는 건지 남자들의 정신은 분열되기 일보 직전이다.  


‘한 사람이 상호 모순된 메시지를 전달해서 상대방이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커뮤니케이션 딜레마’를 영국의 인류학자 G. 베이트슨은 ‘이중 구속(double bind)’ 이론으로 설명한다. 실제로 학계에서는 이중 구속을 조현병(정신분열증의 공식어) 원인의 하나로 꼽고 있다. 

이제 여자들의 이중언어는 약자의 탐색 언어가 아니다.
눈치 없는 남자를 교묘하게 끌고 다니는 강자의 가스 라이팅 언어다.
한때 꼰대남들도 종종 구사했던 이중언어는 그저 애교스러울 뿐이다.
 “눈치 보지 말고 마음대로 시켜, 난 짜장면!” 


어느 한 청년과 아가씨가 짝이 되어 등산을 가게 되었다. 
산 중턱에 이르렀을 때 억수 같은 비가 퍼부어 그들은 계곡에 있는 조그만 동굴 속으로 피신하게 되었다. 
좀처럼 그칠 것 같지 않은 폭우를 보던 청년은 갑작스레 비에 젖어 드러나는 아가씨의 몸매를 보자 음흉한 생각을 품게 되었다.
참다못한 청년은 아가씨를 끌어안고 바닥에 쓰려졌다.
완강하게 반항하던 아가씨는 견디다 못해 청년의 뺨을 후려치며 욕설을 퍼부었다.  

“야! 이 짐승 같은 놈아!”
잔뜩 흥분했던 청년은 그 소리를 듣고 그만 머쓱해져서 주섬주섬 옷을 추스르고 동굴 입구 쪽으로  걸어 나갔다.
옷이 벗겨진 채, 위험한 순간을 간신히 넘긴 아가씨는 일어서서 포기하고 동굴 입구로 나가는 청년을 더욱 분한 듯이 노려보더니 아까의 욕설보다 더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를 백! 지르는 것이었다.   

‘야! 이 짐승만도 못한 놈아!”


기왕 말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하자면,

우리는 종종 덜 떨어진 남자를 짐승에 빗대어 비난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는 'Four legs good, Two legs Bad!'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라는 슬로건이 나오는데, 혹시 다리가 세 개(?)인 남자 사람은 어느 줄에 서야 되나?
반인반수 정도 되는 건가?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여자한테 짐승처럼 들이대나 보다.
근데 어떨 땐 ‘짐승 같은 놈’이라 욕을 듣기도, 또 어떨 땐 ‘짐승남 오빠’라 콧소리를 듣기도 한다.
사실 짐승들은 본능적으로 때를 안다.
반인반수 남자들만 여자들 눈치 보느라 애쓰면서도, 까딱하면 짐승만도 못한 하등동물이 되고 만다. 


"네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고, 세 다리는 억울하다!"



그래도 힐링해 줄 음악이 있어 다행이다. 가사 내용도 잘 모르면서 그저 센티멘털한 멜로디에 젖었었던 올드팝, 조안 글래스콕의 ‘켄타우로스’(Joanne Glasscock ‘The Centaur’)를 함께 들어보자. 인간도 짐승도 아닌 반인반마 켄타우로스가 소녀를 사랑하게 되는 서글픔을 노래하는데, 양쪽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언덕 위의 쓸쓸한 켄타우로스가 인간 남자의 억울함 감정을 대신해준다.  

조안 글래스콕 '켄타우로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