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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반맨 Oct 28. 2022

눈 뜬 장님

49금 유머 인문학 02. 

예전에 많은 사람들을 멘붕으로 빠뜨린 영상이 있었다.  

한때 화제가 되었던 보이지 않는 고릴라 영상 실험이다.

농구공 패스를 세느라 멀쩡히 등장했던 고릴라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영상을 봤던 사람의 절반 정도가 이같이 눈 뜬 장님이었다는 사실에 그나마 위로가 되기는 했지만 그 충격은 강렬했다.


미국의 심리학자가 이 실험을 통해 무주의 맹시, 인간이 어느 한 가지에 집중하다 보면 나머지를 잘 인지하지 못하는 착각 현상을 입증하였다.

이는 지능이나 성격과는 무관한 태생적 한계라고 한다.

집중은 어떤 하나의 일을 위해 다른 생각에 방해받지 않는 것으로, 제한된 인간의 주의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진화되어왔다.

하지만 주변을 살펴볼 수 있는 시야를 좁혀서 종합적인 판단을 그르치게 하는 부작용도 함께 낳았다.

결국 우리의 인식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서 생기는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현상인 것이다.


눈 여겨볼 것은 무주의 맹시 현상이 특정 집단에서 발생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위 실험에서 가장 고릴라를 못 본 집단은 행동심리학자들이었다고 한다.

명색이 인간의 행동을 연구한다는 전문가들 대부분이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이 밖에도 기업 임원, 성공한 사업가처럼 사회적 지위가 높고 나이가 들수록 무주의 맹시 현상이 더욱 잘 드러났다고 한다.

평소 자신의 실력과 경험치에 대한 자신감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사실 우리는 이런 현상들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딴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나는 많은 것을 똑바로 볼 수 있고, 내가 본 것은 옳은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의 주의력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제로섬 게임이다.

그러니 언제든 눈 뜬 장님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 그나마 어리석은 판단을 줄일 기회가 생겨난다.  


한 탐험가가 사막을 횡단하고 있었다.
집 떠난 지가 반년이 다 되어가는 이 남자는 자신의 욕정을 해소할 길이 없어서 죽을 지경이었다.
견디다 못한 이 남자는 지금 타고 있는 낙타가 암컷임을 알고... 아쉬운 대로 해결하기로 맘을 먹었다.
낙타 뒤에 붙어서 실랑이해 보지만, 낙타의 뒷발에 차여 나가떨어지기 일쑤였다.
결국 이 남자는 포기를 하고 말았다.
계속 사막을 건너가고 있는 중에 멀리서 사람 소리가 들려 가까이 가보니 아주 예쁜 여자가 옷이 갈기갈기 찢어진 채로 쓰러져 있었다.
여자는 "저~어~ 무~물~좀 주세요!" "물만 주시면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제발."
남자는 얼른 자신의 물을 나눠주었다.
물을 벌컥벌컥 다 마시고 난 그녀는 "감사합니다. 당신은 저의 생명의 은인이세요. 원하시는 것은 뭐든지 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남자는 흥분을 감추며 "곤란한 부탁인데, 그래도 들어 주실 수 있나요?"
"그럼요, 전 당신의 애인이 되어 드릴 수도 있습니다."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럼 한 가지만 부탁하겠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저 낙타 뒷다리 좀 잡아주세요~~~~~"


말 나온 김에 한 마디 하자면,

사막이라는 극단적으로 고립된 공간은 유머처럼 종종 별난 상상력의 열린 무대가 된다.
사람과 동물 간의 교감이야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유머 속 상황과 닮은  발자크의 단편소설 사막의 열정은 사막이니까 가능한 인간과 동물 간의 판타지를 이야기한다.  
사막에서 홀로 헤매던 군인이 우연히 매혹적인 암표범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
그런데  문명인인 인간이 야생 동물에게서 느끼는 사랑이 맹목적 욕망과 질투로 변질된다.
암표범과 짝짓기 하는 수컷 표범을 질투하고, 스스로 표범처럼 꾸미고 행동을 따라 하면서 집착이 더해 간다.
심지어 자신을 버리고 수컷에게 갈까 봐 묶어두기까지 하는 이 기묘한 이야기는 2000년 초 영화로도 제작되어 실감을 더하기도 하였다.
혹시 유머 속 남자도 극도로 외로운 사막여행에서 우직하게 곁을 지키는 낙타에게 사랑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니 이 척박한 사막에서조차 복작복작 수선 떠는 문명인들보다는, 묵묵히 자기 길을 걷는 낙타가 새삼 의연해 보인다.  
낙타 예찬론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시 한 편 감상해 보자.
신경림의 시 낙타는 가끔 읽게 될 때마다 느껴지는 울림이 여전히 깊다. “언제쯤이면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고 초연하게 살 수 있을까?’ 하고 씁쓸히 되묻게 된다.
아직까지는 슬픔과 아픔을 잊은 듯 살 자신도, 또 무슨 재미로 살았는지 모를 만큼 심심하게 살 자신도 없다.
하지만 지치고 힘들 때, 별과 달과 해와 모래가 있는 곳으로 길동무가 되어줄 낙타 같은 친구들이 있다는 게 새삼 고맙고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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