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금 유머 인문학 03.
근 20여 년 만에 스틱(수동기어) 자동차를 운전하는데, 기특하게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하는 수영이나 스키도 몸에 기억이 묻어 있어 그럭저럭 쫓아다닌 적도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체화 인지’(embodied cognition)라고 부른다.
지각, 판단, 추리 등 우리의 인지활동은 오직 뇌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감각 운동 능력을 갖춘 신체의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몸을 통해 느끼고 경험한 감각이 인지의 일부분이 된다는 것이다.
예전엔 정신이 심장에 있다고 생각했고, 근대 이후로는 지능, 이성을 관장하는 두뇌가 그 근원으로 다루어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신이 오로지 두뇌만의 산물이 아니라 몸과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생긴다고 본다.
두뇌의 하수인 정도로 취급되던 몸이 두뇌와 비슷한 반열에 올라섰다.
생각이 행동을 정하고 감정을 바꾸기도 하지만, 반대로 행동이 감정을 일으키고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차가운 커피를 마신 면접관은 지원자를 차가운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따뜻한 커피를 마신 면접관은 지원자를 따뜻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한단다.
참 단순하고 순진하다 싶은데, 이와 비슷한 연구 사례가 적지 않다.
‘체화 인지’ 이론 덕분에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더 복잡해진 느낌이다.
무언가를 배우기에 ‘체화 인지’는 꽤나 유용하다.
단순히 눈으로 공부하는 것과 실제 환경에서 몸을 써가며 경험해 보는 것은 차이가 크다.
자전거는 직접 타보지 않고는 배우기 어렵다.
그래서 몸소 반복된 연습을 통해 습득한 지식은 오래가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어 실용적이다.
특히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야 할 비상 상황에는 더욱 그러하다.
반면에 사람의 마음이 촉각이나 후각 같은 감각이나 주변 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릇된 판단을 하거나 원치 않는 기억이 지워지지 않고 트라우마로 남게 되기도 한다.
결국 무언가를 배울 때는 몸의 감각을 잘 써야 하고, 무언가를 결정할 때는 몸의 감각에 현혹되지 않는 두뇌를 잘 써야 할 일이다.
별로 행실이 단정하지 않은 부인이 있었다.
이 여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부를 끌어들 이 곤했다.
약간 의심을 품게 된 남편이 감시를 강화하게 되어 한 달이 넘게 정부를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는 터였다. 부부가 나란히 잠이 들었을 때, 부인은 꿈을 꾸게 되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남편이 집을 나가자 부인은 정부를 불러들이고 정부의 품에 안겨 정다운 얘기를 속삭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현관의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바싹 강화된 남편의 감시에 그렇지 않아도 전전긍긍하던 이 부인은 몹시 놀라 소리를 질렀다.
“남편이 돌아왔어요. 빨리 도망치세요!”
소리를 지르며 부인은 꿈에서 깨어나 벌떡 일어나 비몽사몽간에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옆에 누워 자고 있던 남편이 벌떡 일어나더니 바지를 주워 입고는 창문을 넘어 숨이 넘어가도록 도망치는 것이었다
말 나온 김에 한마디 하자면,
사실 인류에게 불륜은 피할 수 없는 달콤한 원죄라 할 수 있다.
4천 년 전 비석에 새겨진 '함무라비 법'에서부터 오늘날 십계명에 이르기까지, 불륜을 비난하지 않은 시대는 없었지만 근절된 시대도 없었다.
최근에는 “인류의 절반이 불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서 일부일처제 사회에서는 불륜이 사라질 수 없다"라는 연구도 발표된다. (바람난 유전자, 나카노 노부코)
그렇다고 불륜을 권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어쩌다 불륜 유전자의 노예가 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쓴 D.H. 로렌스의 말은 새겨볼 만하다.
“어쩌면 인간의 영혼은 외도를 필요로 하고, 그것을 거절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외도의 중요한 의미는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점에 있다.”
다만 명심해야 할 것은 ‘들키면 불륜이고 안 들키면 로맨스다.'
절대, 죽을 때 까지, 배우자에게 들키지 말아야 한다.'
"달려드는 개들을 번뜩이는 어금니로 물어 공중으로 패대 기치는 적갈색 멧돼지도,
젖먹이 어린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암사자도,
그리고 갑자기 사람의 발에 등을 밟힌 살모사도
자신의 침대에서 남편과 뒹굴고 있는 다른 여자를 본 아내만큼 분노에 휩싸이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으로 금지된 사랑의 설렘을 안전하게 맛볼 수는 방법이 하나 있다.
불륜을 다룬 문학작품은 차고 넘치지만, 그중에서도 신비로운 작품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이탈리아 작가 알렉산드로 바리코의 소설 ‘비단’이다.
수년에 한 번씩 프랑스와 일본을 다니는 유부남 주인공이 단 몇 차례의 은밀한 눈빛과 쪽지만으로 한 일본 소녀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장면 장면이 전해주는 매우 간결하면서도 생생한 느낌이 그저 오묘하다.
불륜인 듯 불륜 아닌 불륜 같은 소설이다.
판타지에 반전이 섞인 스토리는 직접 확인해 보시길. 몽환적인 연서 일부를 감상해 보자.
"누가 감히 지금 이 순간을 지워버릴 수 있겠어요?
당신은 천천히 제 몸속으로 들어와요.
당신의 손은 제 입술을 더듬어요.
당신의 손가락이 제 입속으로 파고들어요.
당신의 눈에서 당신의 목소리에서 기쁨이 넘쳐나요.
당신은 천천히 몸을 움직여요.
마지막 고통이 느껴지는 순간 저도 환희와 비명을 내질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