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금 유머 인문학 04.
“꼭 이렇게 말로 해야 돼? 반사적으로 움찔해진다.
예상대로 아내의 잔소리가 쏟아진다.
허구한 날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가족이면서도 그 속내를 알아채지 못하니 피차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대화라는 게 서로 잘 이해하자고 하는 건데 짜증과 섭섭함만 불러낸다.
물론 ‘거시기’ 단어 하나로도 말이 술술 통하고, 눈빛만으로도 손발이 척척 맞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냥 말로 잘 설명해 주면 좀 좋은가?
이심전심까지는 몰라도 동상이몽은 피해야 하지 않은가?
심리학에 ‘투명성 착각’(Illusion of Transparency)’개념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상대방이 잘 이해해 줄 거라고 착각하는 현상이다.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은 유리를 통과하는 것처럼 투명하게 상대방에게도 전해진다고 여긴다.
그래서 내가 이 정도 얘기했으면 알아듣겠지 착각하는데, 가까운 친구나 가족에게서 종종 나타난다고 한다.
이와 유사한 내용으로 ‘허위 합의 효과’(false consensus effect)라는 개념도 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생각이 합리적이라고 평가하고, 다른 사람도 자신의 생각과 같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오류를 의미한다.
이 두 가지 현상들은 모두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자신의 기준에 따라 타인의 행동을 평가하는 심리에 기인한다.
내 생각은 합리적이며, 내가 하는 말은 상대방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반면에 나와 다른 생각은 틀리거나 애매하다고 느끼며 외면하게 되는 것이다.
결론은 내가 상대를 아는 만큼만 상대도 나를 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생각보다 주위 가까운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한 셈이다.
그러니 ‘이쯤 얘기하면 알아듣겠지’ 하고 애매하게 기대하지 말고, 반대로 ‘이런 뜻으로 얘기한 거겠지? 하고 애매하게 판단하지도 말아야 한다.
애매함 이야말로 오해와 원망의 시작이다.
이런 건 꼭 말로 해줘야 한다.
어느 부유하지만 늙은 노인이 83세의 생일을 맞아 건강진단을 받으러 의사를 찾았다.
의사는 노인의 온몸을 살펴보고 나서 자못 감탄하는 투로 말했다.
“여든세 살의 노인으로는 훌륭한 몸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생일 하루 전날에 건강진단을 받지요?” 부유한 노인은 바로 생일날 오후에 18살 된 소녀와 결혼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단히 경악한 의사는 노인이 결혼 따위에 목숨을 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누누이 설명하고 포기시키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였다.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난 결혼할 거요! 다른 말씀은 없으시오? 의사 양반?"
“꼭 한 가지 있습니다.”
“노인장이 진정 평온한 결혼생활을 원한다면 하숙생을 한 사람 있게 하십시오."
노인은 잠시 생각하고 나서 “그것참 좋은 생각이오!” 하고 말했다.
그 뒤 반년쯤 지난 어느 날 의사는 자금 문제 때문에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의사의 두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의사 양반, 축하해 주시오! 내 아내가 애를 가졌소!”
의사는 마음속에 무언가 찔리는 듯이 애써 표정을 감추며 되물었다.
“허! 그래요? 노인장께선 제 충고 대로 하숙생을 두긴 두셨군요?”
노인은 자못 통쾌하다는 듯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렇다 마다요. 내 아내와 같이 그 하숙생도 임신을 했지요”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하자면,
'노인에게는 욕망에 사로잡히고 싶은 욕망이 있다.'
프랑스 철학자 보부아르의 말처럼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점잖음과 정숙함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한 사회적 편견이다.
“아흔살이 되는 날, 나는 풋풋한 처녀와 함께하는 뜨거운 사랑의 밤을 나 자신에게 선사하고 싶었다”
콜롬비아 작가 마르케스의 소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의 첫 문장이다.
노년의 추한 모습이라 비난 받기에는 억울한 당당하고 솔직한 욕망 선언이다.
역사적으로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황혼의 로맨스에 도전한 유명한 일화들이 있다.
74세의 괴테가 19세의 아가씨를 연모하여 당시 세상을 발칵 뒤집었던 사건이 그것이다.
괴테가 제정신이 아니라거나, 꽃뱀의 꼬임에 넘어갔다느니, 그 나이에 사랑이라니, 등등.
편견의 한가운데서 힘겨웠던 지성인의 사랑은 ’마리엔바트의 연가‘라는 문학으로 승화되어, 노년의 뜨거운 정열을 전하고 있다.
그 고명한 아리스토텔레스도 노년의 사랑에 솔직했다.
제자 알렉산더 대왕의 내연녀에게 유혹에 빠져 사랑을 고백한다.
그리곤 그녀의 조롱 섞인 요청도 마다하지 않는 흑역사를 만들게 된다.
“당신이 등에 안장을 얹고 고삐를 물고 나를 태워서 말처럼 기어 다닌다면 진정으로 나를 사랑한다고 믿겠어요”
후세 화가가 남긴 이 풍자화는 윤리와 이성의 대가인 노학자도 굴복할 만큼 사랑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인간적인가를 반증한다.
이쯤에서 세계적인 음악가 리스트의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라는 유명한 가곡을 감상해 보자.
“무덤 앞에서 슬퍼할 시간이 찾아오기 전까지, 사랑할 힘이 남아있을 때가지 사랑하라"라는 외침을 새기며 말이다.
"노년은 다른 식으로 살아갈 뿐, 덜 살지는 않는다”. (투르니에, ‘노년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