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을 정리하며

강전정을 하듯 과감하게

by 정만철

옷장 정리 자주 하시나요? 인생에서 가끔은 과감해져야 할 일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옷장 정리이다. 미니멀리즘까지는 아니더라도 입지 않는 옷들을 정리하는 것은 인생다이어트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지난 5월 홍성에서 전주로 이사를 하면서 옷장을 시원하게 정리했다. 옷장 정리를 하는 이유로는 대개 유행이 지났거나 신체의 변화(살이 쪘다거나 빠졌다거나 하는)로 몸에 맞지 않아서, 또는 이사를 하면서 짐을 줄이기 위한 경우 들일 것이다. 이번에 옷장을 정리한 가장 큰 이유는 이삿짐을 줄이는 데 있었다. 10년 동안 홍성과 전주에서 주말부부를 하면서 내 옷만으로도 방 하나가 가득 차게 되었다. 전주로 이사를 하면 아내와 옷방을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이사 가기 전에 내 옷을 정리해야 했다.

홍성에는 아내의 옷이 별로 없어 아내 옷을 먼저 정리했다. 그래도 물어보고 정리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해 전화를 했다. “옷걸이에 걸려있는 녹색 재킷하고 옷장 안에 있는 하얀색 티셔츠들... 이런 것들 어떻게 할까?” “아아 어지간한 것은 다 버려도 돼! 근데 그 회색 운동복은 좀 챙겨줘.” 아내 옷 정리는 금방 끝이 났다. 이제는 내 옷 차례다. 오래되어 색이 변한 옷은 좀 있어도 떨어지고 해져서 못 입는 옷은 단 하나도 없다. 특히 정장은 살이 찐 관계로 몸에 맞지 않거나 유행이 지난 것들이 많다. 결혼식 때 입었던 정장은 서울의 수선집에서 요즘 스타일로 리폼을 했지만 색깔 때문에 단 한 번도 입지 않았다. 우선 이런 것들을 한편에 쌓아 두었다.

그런데, 옷을 정리하다 보면 예전 추억들이 떠올라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도저히 버리는 쪽으로 손이 가지 않는 옷들이 있다. 옷 하나하나에 묻어 있는 추억들 때문이다. 이 옷을 언제 어디에서 샀는지, 이 옷을 입고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났는지... 등등. 이 옷마저 없었다면 그 추억 또한 옷에 묻은 먼지처럼 내 기억 속에서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행거에 걸려있는 아끼던 아웃도어 점퍼가 하나 눈에 띄었다. 늦가을이나 초겨울, 초봄에 자주 입었던 것인데, 스타일이 너무 영(young)해 최근에는 거의 손도 안 대던 옷이다.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전이니까 아마도 2019년 3월이었을 것이다. 일 때문에 고베에 갈 일이 있었는데, 일본의 3월 기온이 당연히 한국보다는 따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얇은 옷 몇 가지만 챙겨서 갔다. 하지만 고베는 항구 도시라서 바닷바람도 차고 때아닌 꽃샘추위가 찾아와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산노미야와 모토마치 사이에 있는 상점가의 아웃도어 매장에서 그 점퍼를 사게 된 것이다. 그때 그 점퍼를 입고 오지코엔(王子公園)에 활짝 핀 벚꽃을 보러 갔었는데, 그 점퍼만 입으면 그때의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떠오르곤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려야 했다. 전주로 가져갈 옷과 의류 수거함에 넣을 옷을 구분해 놓으니 가져갈 옷보다 수거함에 넣을 옷이 훨씬 더 많다. 추억이고 뭐고 일단 짐부터 줄이자는 마음이 컸던 모양이다. 커다란 이불 보자기에 옷들을 차곡차곡 담아 질질 끌다시피 의류 수거함까지 다녀온 횟수가 세 번이다. 요즘은 옷값도 비싸 처음 구입한 금액으로 환산하면 아마도 자동차 한 대 값은 되지 않을까 싶다.

난 옷을 살 때 반드시 직접 매장에 가서 입어보고 사는 편이다. 그래야 마음에 드는 디자인과 사이즈를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신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다 보니 실패하는 경우도 가끔 있는데, 어떤 옷은 분명히 내 스타일이 아닌데도 “아유 사장님!! 색깔도 그렇고 사이즈도 그렇고 완전 사장님 거네요.. 어쩜 이렇게 잘 어울리실까. 호호호!!”라는 매장 직원의 갖은 감언이설에 속아 비인기 상품 처분에 기여하게 된 것들도 종종 있다. 이런 옷들은 대부분 옷장 속에 잘 모셔져 있다가 의류 수거함으로 가게 된다.

원예 용어 중에 강전정(强剪定)이라는 말이 있다. 농학사전에는 ‘줄기를 많이 잘라내어 새 눈이나 새 가지의 발생을 촉진시키는 전정법’이라고 나온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은 마음이 약해 나뭇가지를 찔끔찔끔 자르게 되는데, 이러면 오히려 나무의 세력을 약하게 한다고 한다. 아예 작정하고 나무 밑동 가까이를 잘라주면 가지도 더 많이 나오고, 꽃나무라면 꽃송이도 더 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옷장도 마찬가지이다. 비워야 새로운 옷들로 차는 것이다. 그리고 꼭 옷장이 가득 찰 필요도 없다. 옷장이 비었다고 마음까지 공허해지는 것은 아니니까. 오래된 친구가 좋듯이 매일 같이 입고 싶은 맘에 드는 옷들과 추억을 겹겹이 쌓아가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어느덧 무더웠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다. 난 또다시 강전정을 하는 마음으로 옷장 정리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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