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기!! 집을 떠나다
드디어 집을 나오는 날이다. 인천공항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의 출발시간이 밤 01시 30분이라서 전주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왔다. 집에 차를 두고 기차로 인천공항까지 가기로 해 익산역까지는 아내가 차로 태워다 줬다. 익산역에서 아내와 함께 커피를 한잔 마시고, 오후 4시 35분 KTX를 탔다. 서울역에는 6시 10분쯤 도착을 했는데, 바로 공항철도를 타고 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시장 구경도 좀 하고,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사 가야겠다 싶어 남대문시장으로 향했다. 며칠 전 필리핀에 갔을 때 기념품으로 받은 목도리가 있었는데, 목에 걸치고 다니니 햇빛에 목이 타지도 않고 에어컨 바람에 목도 보호할 수 있어서 좋았던 게 생각이 났다. '그래 머플러 한 장 사야겠다' 생각하고 여기저기 가게를 돌아다니다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발견했다. 마 재질이라서 땀 흡수도 잘 될 것 같았고, 햇볕에 목도 보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값이 싸고 가벼워서 좋았다. 면 손수건도 하나 달라고 하니 주인장이 묻는다. "그렇게 큰 배낭을 메고 어디 가세요? 혹시 국토대장정 같은 거?" 이 나이에 혼자서 국토대장정이라니... "유럽으로 여행을 가는데 햇빛이 강하다고 해서요." "유럽이요? 어떤 나라인데요? 전 일본 이외에는 외국은 없는 줄 알았어요. 남대문에서 장사하느라 일본 이외에는 아무 데도 못 가봤는걸요." 수많은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 오고 계신 분인데 외국에 나갈 기회가 없었다는 게 좀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찾으시는 물건을 사가셔서 너무 좋네요. 조심해서 잘 다녀오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주시는데, 눈빛에서 부러움 반 걱정 반의 진심이 보였다.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와 공항철도를 탔다. 밖에 비가 오기 시작해 빨리 공항으로 가려고 직통열차를 탔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10시도 안 됐다. 너무 일찍 도착을 했는지 카타르항공의 카운터도 닫혀있다. 기다리는 시간에 로밍도 하고, 약국에 가서 미처 챙기지 못한 약들도 구입을 했다. 짐이 배낭 하나이다 보니 부칠 짐이 없어 체크인과 출국심사도 간단했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우선 공항라운지에 갔다. 올해만 해도 일본과 필리핀에 세 번이나 다녀왔지만, 번번이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바람에 라운지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밤늦은 시간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어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샐러드와 평상시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컵라면, 그리고 나초 안주에 맥주를 마시며 두 시간 정도 공항 놀이를 제대로 했다. 라운지에 앉아 있는데 카타르항공 도하행 비행기의 탑승게이트가 43번에서 41번으로 변경이 되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슬슬 짐을 챙겨 게이트로 가니 벌써 많은 승객들이 줄을 서 있다.
비행기의 기종은 알 수 없었지만 내부를 보니 제법 큰 비행기였다. 아마도 좌석의 열이 10열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난 창문 쪽 세 자리 가운데 복도 쪽으로 앉았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아내가 챙겨 준 수면유도제를 먹어서 그랬는지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자마자 곯아떨어진 것 같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승무원이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젊은 커플에게 기내식을 전달하려다 나를 깨웠고, 덕분에 나도 기내식을 먹을 수 있었다. 잠에 취해 기내식 메뉴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정말 맛있었다는 기억은 확실하다. '역시 카타르 항공이구만!'이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잠에 빠졌다. 인천에서 도하까지는 약 10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도하 도착 두 시간쯤 전에 완전히 잠에서 깨어난 것 같다. 장혁이 주연으로 출연한 '더 킬러'라는 영화를 보는데 이런 영화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흥행하지 못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주인공의 연기력에 대한 의문과 실망을 느끼는 도중에 아침 기내식이 나왔다. 닭가슴살 구이와 닭고기 소시지, 에그스크램블 등, 닭고기 세트였는데 어지간한 레스토랑 메뉴보다 훨씬 더 고급진 맛이었다. 열흘 전 필리핀항공의 기내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도하공항 도착 예정시간은 카타르 현지시각으로 오후 5시 30분이었는데 50분 정도가 늦어져 6시 20분에 도착했다. 환승 수속을 하니 6시 40분쯤 되었고, 파리행 비행기가 8시 출발이라서 7시까지는 탑승구로 가야 했다. 도하공항은 실내정원 같이 식물들이 많아 아름답고,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공항으로 유명하다. 공항 구경만 해도 재미있겠지만 이번에는 시간이 없어 탑승구로 가기에도 빠듯했다. 10여 년 전에 아내와 아프리카 여행을 가던 중에 도하공항을 경유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도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도하공항의 랜드마크인 노란 곰돌이를 보고 싶었지만, 어디에 있는지 몰라 A구역의 프랑스행 탑승구로 가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몰려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노란 곰돌이였다. A, B, C구역이 합쳐지는 지점의 중앙에 곰돌이가 있었던 것이다. 곰돌이 앞에서 셀카를 찍고 면세점 구경도 하면서 걷다 보니 7시가 넘었다. 부랴부랴 게이트로 가니 사람들로 북적인다. 다시 비행기에 올라 자리에 앉자마자 잠이 들었는데, 이번에도 어떻게 이륙을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졌다. 카타르항공의 비행기는 동체 자체가 커서 답답함이 없었고, 지난번 제주도 리조트에서 가져온 슬리퍼를 신고 있어서 발 또한 편했다. 긴 시간 동안의 비행이었지만 크게 피곤함을 느낄 수 없어서 좋았다.
파리의 샤를드골국제공항에는 현지시각 오후 2시 30분경에 도착을 했다. 제1터미널에서 내렸는데 생각보다 공항이 그리 크지 않다. 공항 입국서류도 없고, 여권을 제시하고 씨익 한번 웃어주니 도장 하나 찍고 통과다. '국경경찰'이라는 사람들이 무뚝뚝해 내 앞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엄하게 대하더니, 내 미소 하나에 별말 없이 무사통과라니.. 역시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 모양이다. 세관에 신고할 물건이 없어 세관도 아무 문제 없이 통과하고 밖으로 나와 드디어 인생 첫 파리의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아쉽게 구름이 자욱한 하늘이었지만..... 한국에서 파리까지 꼬박 하루는 걸린 것 같다.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도 잠시 동안의 파리를 만끽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