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산티아고 1

일단 떠나자 산티아고

by 정만철

딱히 버킷리스트 가운데 하나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죽기 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꼭 한번 걸어 보겠다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일본 유학 시절 시작된 공황장애가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는 물리적 거리보다 훨씬 더 먼 심리적 거리의 산티아고가 머릿속에 있었을 뿐이었다.

작년(2022년) 지방선거에 홍성군수 예비후보로 출마를 하고, 잠깐이나마 치열했던 선거를 패배로 끝내면서 떠오른 생각이 '산티아고'였다. 4월 초에 경선 결과가 나오고 나서 곧바로 떠날 준비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6월 1일에 있었던 본 선거까지는 도지사 선거와 군수선거를 도와주는 게 도리인 듯 싶어 우리 쪽 후보들과 함께 유세차에 올라 지역 곳곳을 누볐다. 결과는 참담했고, 다시 일어설 기력도 생기지 않았다. 내 선거에서 진 것보다 훨씬 더 큰 상실감이 밀려왔다. 침대에 누워 꼼짝할 수도 없었고, 천장만 봐도 눈물이 흘렀다.


작년 2학기 수업을 하고, 올 2월 말로 다니던 대학을 그만뒀다. 지방대학이야말로 가장 큰 사양산업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백수이자 자유인이 되면서 다시 머릿속 한편에서 스멀스멀 산티아고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래 올해는 무조건 가자!' 홍성에 있으면 자꾸 딴생각이 들 것 같아 5월 말에 아내가 있는 전주로 이사도 했다. 10년 주말부부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것이 명분이라면 가장 큰 명분이었다. 그리고 6월 초에 필리핀에서 개최된 아시아유기농업대회에 초청을 받아 열흘 동안 필리핀 가우스와 간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필리핀에 있는 동안 '지금이 아니면 정말 못 가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에 있는 친한 여행사 대표님께 카톡을 보냈다. "6월 20일이나 21일에 파리로 출발해서 8월 중순에 바르셀로나에서 나오는 일정으로 비행기표 좀 알아봐 주세요." 그리고 아내에게는 "나 한국 들어가면 바로 산티아고에 꼭 다녀와야겠어. 8월에 순례길 마치고 바르셀로나에서 나오려고 하는데 당신도 시간 낼 수 있으면 바르셀로나로 나와서 며칠 같이 여행하고 들어올래?"라고 문자를 보냈다. 56세에 백수가 된 남편이 배낭 하나 메고 800km를 걷고 온다는데 걱정이 안 되겠느냐만, "그래 인생 뭐 있어! 꼭 가고 싶으면 다녀와."라는 답장이 왔다. 이해해 주고 응원해 주는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도 들었지만, 속으로는 '앗싸!!'를 수도 없이 외쳤다. 여행사 대표님께 연락해 인천 출발 도하 경유 파리 도착, 바르셀로나 출발 도하 경유 인천 도착의 일정으로 비행기표를 확정했다.


필리핀에서의 행사가 끝나고 6월 11일에 한국에 도착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어떻게 싸야 할지 고민이 시작됐다. 하지만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며칠 동안 인터넷 검색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랬더니 아내가 먼저 "산티아고 가려면 짐도 싸야 하고, 짐 싸려면 시간이 걸릴 텐데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라고 이야기를 했다. "응 그러게.. 짐을 싸야 하는데...."라고 대답을 하고는 염치 불고 이것저것 장만을 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무조건 짐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막상 짐을 싸려 하니 어떤 것을 가져가야 할지, 어떤 것을 빼야 할지 막막했다. 우선 배낭의 크기부터가 걱정이었다. 남자들은 대부분 40리터 이상을 가져간다고 하지만, 나는 36리터로 결정을 했다.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기 위해 일단 서울로 갔다. 배낭은 성수동에 있는 오스프리매장에서 추천을 받아 스트라토스 36을 구입했다. 그리고 배낭만큼 중요한 것이 신발인데 하이킹화와 트래킹화 중에 어떤 것으로 할까 고민하다 오스프리 매장 매니저의 추천으로 라 스포티바(La Sportiva)의 트래킹화로 결정을 했다. 검은색에 빨간색과 노란색의 조합이 마음에 들었다(나중에 걷다 보니 검은색은 피하는 것이 좋았다). 여름이었지만 그래도 침낭은 가져가야 할 것 같아 300g짜리 구스다운 경량침낭도 구입했다.


가져갈 짐들을 한 군데로 모아 보니 다음과 같았다.

배낭(오스프리 36리터), 신발(라 스포티바 트래킹화), 판초우의, 침낭(300g 여름용), 슬리퍼, 바람막이, 긴바지 3개(1개는 입고 감), 반바지, 속옷 3개(1개는 입고 감), 양말 3개, 스포츠타월 2개, 모자, 복면, 파우치(5개 정도), 무릎보호대 2개, 풋크림, 로션, 선글라스, 세탁망, 뺄래 집게(2개), 옷핀(대형 5개), 충전기, 손톱깎기, 코털가위, 칫솔(2개), 치약, 세안비누, 빨랫비누, 면도기, 노트(1권), 펜(3개), 비상약(파스, 진통제, 배탈약, 알레르기약, 신경안정제, 홍삼진액 등), 귀마개(2개) 등

배낭에 차곡차곡 짐을 넣고 무게를 재 보니 6.7kg였다. 배낭 무게는 자신의 몸무게의 1/10에 맞추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경험자들의 말대로라면 충분히 잘 싼 짐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지나고 나니 필요 없는 것들이 꽤 있었다. 다음에 다시 산티아고를 갈 기회가 있다면 그때는 짐을 훨씬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은 해외 어디에 가나 신용카드나 트레블월렛을 사용할 수 있지만,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현금을 가져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그동안 해외에 나갈 때면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공항에서 환전을 해 왔는데, 유로화의 가치가 올라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으로 환전을 하기 위해 미리 농협은행을 찾아갔다. 농협 창구에 가서 환전을 하겠다고 말하니, 그 직원 왈 "올원뱅크 어플에서 사전 환전 예약을 하면 창구에서 직접 환전을 하는 것보다 5만 원 정도는 할인을 받을 수 있어요"라고 한다. 그 자리에서 직원의 안내에 따라 어플에서 환전 예약을 하고 창구에서 현금을 받았는데, 공항에서 환전을 하는 것보다 10만 원 이상 이익이라고 했다. 그 직원의 말이 재미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비싼 게 산 꼭대기에서 사 먹는 컵라면 하고 공항에서 환전하는 거예요." 어찌 되었든 그 직원의 친절함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프랑스에 도착하는 날 숙소도 미리 예약을 하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해외에 나가면 자주 이용하던 부킹닷컴(Booking. com)이라는 어플에서 검색을 해 보니 파리 시내의 호텔은 대부분 40만 원이 넘었다. 어차피 휴가를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치안만 괜찮다면 굳이 비싼 호텔을 잡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파리 북쪽에 있는 UCPA Hostel Paris였다. 1박에 66,000원으로 한 방에 6명이 묵는 도미토리인데 어플에 남긴 이용자들의 평점도 나쁘지 않아 바로 예약을 했다. 파리는 처음 가 보는 곳이라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것이 걱정은 되었지만, 일단 가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었다. 이놈의 대책 없는 자신감이란... 프랑스길의 시작은 프랑스 남부의 국경마을 생 장 피에 드 포르(Saint Jean Pied de Port, 일명 생장)부터다. 파리에서 생장까지는 비행기로 가는 방법과 기차로 가는 방법이 있는데 나는 기차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파리 몽파르나스(Montparnasse)에서 고속열차인 테제베(TGV)로 바욘(Bayonne)까지 가고, 바욘에서 일반열차로 환승을 해서 생장까지 가는 길이다. SNCF Connect에 접속하면 한국에서도 쉽게 예약이 가능해 파리에서 생장까지 한꺼번에 예약을 했다. 비용은 127.70유로로 싸지는 않았지만, 파리에 가서 기차표를 구입하는 것보다는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하고 가는 편이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생장에서 하루를 묵고 그다음 날 순례길을 시작할 예정이어서 생장의 숙소를 미리 예약해 둘까 싶었지만, 일단은 가 보고 결정을 하기로 했다. 생장에도 순례자 속소인 알베르게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이렇게 순례길을 떠날 준비는 끝났다. 이제는 집을 나서는 일만 남았다. 그래 난 지금 오춘기다. 집 나갈 구실은 이렇게 완벽하게 마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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