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산티아고 3

너무 짧아 아쉬원던 파리

by 정만철

파리 샤를드골국제공항에서 나와 호텔까지 가는 길이 걱정이었다. '이 나이에 길을 잃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그동안 여기저기 여행 다니던 경험이 있는데 설마 거길 못 찾아가겠어?' 어떻게든 찾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었지만, 머릿속은 오만가지 생각들로 뒤죽박죽이었다. '그래 일단 나가 보자!' 생각하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 숙소로 가는 길에 괜히 말도 안 통하는 택시를 타서 낭패를 보는 것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인터넷으로 전차 노선을 검색했다. RER(일드프랑스 지역급행망)이라는 노선으로 가는 게 가장 편리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RER 노선이 공항 2 터미널에서 출발을 한다고 나와 있었지만, 공항 내 셔틀 모노레일을 타 보니 공항 3 터미널에서 타야 했다. 프랑스에 와서 첫날 묵을 숙소는 파리 북부 Rosa Parks에 있는 UCPA Sport Station Hostel이었다. 숙소까지는 공항에서 RER B 노선을 타고 Care du Nord역에서 내려 Magenta 역까지 5분 정도를 걸어가야 했다. 그리고 Magenta역에서 다시 RER E 노선으로 갈아타고 Rosa Parks에서 내려 2~3분 정도 걸으면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하에서 숙소의 매니저에게 미리 문자를 보내놨던 것도 도움이 되었다. Rosa Parks역에 내려 잠시 길을 헤맸는데, 숙소 매니저에게 전화를 해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가 보니 2층 침대가 3개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청년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고, 나는 출입문 바로 뒤에 있는 침대의 1층을 배정받았다. 그 청년과 가벼운 인사를 하고 파리 시내 구경이나 나가려고 하는데 침대에 붙은 라커에 자물쇠가 없다. 귀중품이나 돌아다니는 데 불필요한 물건들은 라커에 두고 나가려고 했지만, 자물쇠가 없어서 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카운터에 자물쇠가 있는지 물어보니 개인적으로 구입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매니저에게 주변에 마트가 있는지 물어보니 가까운 곳에 있다고 했다. 매니저가 알려준 마트에 갔는데 자물쇠는 없다고 하고, 카운터 앞에서 히잡을 쓴 중동계 아주머니와 덩치가 큰 프랑스 아주머니 둘이 멱살잡이까지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정말 난장판이 따로 없다. 매장 직원에게 자물쇠를 사고 싶다고 하자 큰 건물 모퉁이를 지나면 'Station'이라는 잡화점이 있는데 거기로 가보라고 한다. 다행히 종류는 많지 않았지만 몇 가지 자물쇠가 진열되어 있어 2.5유로짜리 작은 자물쇠 하나를 샀다. 여권과 현금, 그리고 중요한 물건들 몇 가지를 라커에 넣고 자물쇠를 채웠다. 그리고 숙소를 나와 에펠탑으로 향했다. 에펠탑까지도 RER을 탔다. 두 번을 갈아타야 했는데, 파리 지하철이 너무 복잡하고 지저분해서 시내를 다니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생각한 것만큼 복잡하지도 지저분하지도 않았다. 복잡한 것으로 말하자면 일본 도쿄의 지하철만 할까?


에펠탑에 도착하니 6시 반 정도가 되었다. 그동안 에펠탑을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봐 와서 크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가까이도 가 보고, 철탑을 손으로 만져보기도 했다. 센 강 다리를 건너 강 너머의 에펠탑을 멀찌감치 바라보기도 하고, 관광객들이 모여 있는 포토존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다시 에펠탑으로 돌아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 보기로 했다. 파리에 또 언제 올지도 모르겠고, 이번 파리 일정이 너무 짧아 구석구석 다닐 수가 없었기에 에펠탑만이라도 완전 정복하고 싶었다. 에펠탑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요금은 28.3유로였다. 중간까지 가는 엘리버이터도 있었지만 기왕에 올라가는 김에 꼭대기 까기 가기로 했다. 정상에 올라가니 파리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일정을 맞추다 보니 파리를 너무 짧게 보고 가는 것 같아 아쉬웠다. 오르세미술관, 루브박물관, 노트르담 대성당 등 보고 싶은 곳도 많았는데, 이번 여행의 목적이 순례길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 다음에 또 올 수밖에... 에펠탑 꼭대기에서 석양을 보고 싶었지만, 저녁 8시 반인데도 날이 훤하다. 세느강변의 석양이라도 보려고 했지만 9시가 넘어도 해가 질 기미도 안보였다. 내일 새벽에 기차를 타려면 일찍 숙소를 나가야 해서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9시 40분에 Rosa Parks역에 도착했는데 아직도 하늘이 밝다. 역 근처 레스토랑에서 샐러드와 맥주로 저녁을 먹고 있으니 그제야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숙소에 들어오니 왠 젊은 여성이 내 옆 침대에 걸쳐 앉아 있고, 배낭이 여러 개 놓여 있다. 나갈 때는 인도네시아 청년과 둘이었는데 그새 6명이 다 찬 것이다. 여성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하니 호주 시드니에서 왔단다. 나도 호주 캔버라에서 살았었다는 이야기를 하니 아주 반가워한다. 내 위층 침대에서 자는 사람이 남자친구란다. 한 방에서 6명이 잔다는 것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내일부터 묵어야 하는 순례자 숙소인 알베르게보다야 낫겠다는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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