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프랑스길 출발지인 생장까지
파리에서 생장까지는 기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Montparnasse역에서 아침 7시 8분 출발하는 기차를 예매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전혀 가보지 못한 길을 가려니 약간 긴장을 했던 모양이다. 잠을 거의 설치고 결국 4시 반에 일어났다. 같은 방에서 자고 있는 다른 여행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조심 옷을 챙겨 입고 짐을 싸서 5시 30분에 숙소를 나왔다. 파리에서의 첫 아침, 부슬부슬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Rosa Parks역에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꽤 분주했다. Rosa Parks역에서 Paris Montparnasse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는데 좀 복잡했다. 우선 Rosa Parks역에서 RER E라인으로 Gare du Nord역으로 간 다음 몇 분을 걸어 Magenta역으로 갔다. Maagenta역에서 M4라인으로 환승해 Montparnasse Bienvenue역에서 내리고, 5분 정도를 걸으면 TGV를 탈 수 있는 Paris Montparnasse역이 나온다. 아침에 너무 일찍 서둘렀는지 시계를 보니 6시 30분도 안되었다. 출발하는 기차의 플랫폼을 알려주는 전광판에는 내가 탈 기차는 없다. 아직 플랫폼 배정이 안된 모양이었다.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에 간단하게 커피 한잔 마시려고 카페를 찾다 보니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빵집이 보였다. 에펠탑이 세워진 1889년에 창업했다는 PAUL이라는 가게였다. 커피와 바게트 샌드위치를 주문했는데, 왜 사람들이 아침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바욘(Baynne)으로 가는 기차는 출발시간이 다 되어서야 4번 플랫폼에서 출발한다는 안내가 전광판에 떴다. Montparnasse역에는 플랫폼이 거의 20개는 되었는데, 너무 빠듯하게 알려줘 기차까지 거의 뛰어가야 했다. 한국에서 기차표를 예약하고 QR코드를 스마트폰에 저장해 두었는데 출입구에서 QR이 읽히지 않아 순간 당황했다. 혹시 기차를 못 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역무원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 줘서 무사히 기차를 탈 수 있었다. TGV는 2층으로 되어있는데, 난 2층 자리로 예약을 했다. 자리를 찾아 내 좌석에 앉으니 갑자기 몸이 뜨거워져 입고 있던 바람막이를 벗어버렸다. 무사히 기차를 탔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밤새 잠을 못자서였는지 모르겠지만, 기차가 출발하는 것도 모르고 잠이 들었다.
중간중간 잠에서 깨어 창밖을 보니 광활하게 펼쳐진 밀밭이 인상적이다. 가끔은 대규모의 태양광 발전소와 시원하게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도 보여 반가웠다. 프랑스는 국내 소비전력의 70%를 원자력발전으로 충당하고 있다고 하지만, 태양광이나 풍력발전도 꽤 확대되고 있는 모양이다. 파리를 출발할 때 추적추적 비가 내렸는데, 와인으로 유명한 보르도에 도착하니 간간이 구름 사이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기차가 보르도역에 정차를 했더니 꽤 많은 승객들이 타고 내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침 오늘이 와인축제의 첫날이었단다. 보르도에서 바욘으로 오는 길은 경치가 참 아름다웠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들판에 고사리가 지천이었다. 아마도 한국 같았으면 남아남지 않았겠지!
바욘역에는 예정시간보다 30분이 지난 11시 37분에 도착했다. 예정대로였다면 바욘에서 1시간 반 정도 시내 구경을 할 생각이었지만 기차가 연착을 하는 바람에 1시간 정도밖에 시간이 없었다. 잠깐 역 밖에 나가 근처에 있는 강변까지 걸었다. 강물의 수위가 높게 불어 있었고, 물 색깔도 황토색인 걸 보니 최근에 비가 많이 온 듯했다. 역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역 광장 앞에 있는 약국에 들렀다. 우선 선크림을 사야 했다. 선크림과 로션 등은 가능하면 현지에서 구입하려고 한국에서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선크림을 고르다 실수로 스마트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깨끗했던 액정 보호필름 한 귀퉁이가 깨져 가루가 되었다. 이번 여행 시작 전에 액땜했다 생각하고 계산을 하고 나와 역으로 돌아왔다.
바욘역에서 출발하는 생장 피에 드 포르(Saint Jean Pied de Port, 생장)행 열차는 1칸 짜리였다. 마치 일본의 시골을 달리던 1량짜리 관광열차와 비슷하다. 생장으로 오는 길 내내 아름다운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터널이나 민가가 모여 있는 마을을 지날 때면 경적을 울리는데 그 소리가 귀에 못이 박힐 정도다. 열차 안은 절반 정도가 찼는데 대부분은 순례자인 듯 배낭을 가지고 있었고, 일 때문에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듯한 지역 사람들도 서너 명 보였다. 열차는 1시간 20분 정도를 달려 2시 반쯤 생장에 도착했다. 역에서 순례자 사무소로 가는 길은 무조건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기로 했다. 한국 순례자들도 몇 명 보였지만 먼저 아는 척을 하지는 않았다.
순례자 사무소에 도착하니 벌써 긴 줄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순례자 사무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설레면서도 환한 미소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내 차례가 거의 다 와가는데 나보다 대여섯 명 앞에 있던 20대로 보이는 젊은 한국인 청년이 "안녕하세요? 한국분이세요? 설명 같이 들으시겠어요?"라고 말을 걸었다. 나는 "제 앞에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먼저 하세요. 전 좀 기다릴게요."라고 했다. "아니요. 보니까 같은 나라 사람들이나 같이 온 사람들은 두 명씩 같이 안내를 받더라고요. 같이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고 한다. 내 앞에 줄은 선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자 선뜻 앞으로 가라고 웃으며 양보를 해 주었다. 그렇게 이름도 모르는 한국 청년과 같이 순례길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우리에게 순례길 코스와 구간별 난이도, 각 지점마다의 알베르게 정보 등에 대한 설명을 해 주신 자원봉사자 분은 꽤 열정적이었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내 마음에도 충분히 와닿았다. 순례자 여권인 끄레덴시알(Credencial)을 받자 설레는 첫 스탬프를 찍어주기도 했다. 첫 스탬프 찍는 모습을 기념으로 한 장 찍으라고 해서 사진도 한 장 찍었다.
함께 설명을 들은 청년이 물었다. "어떻게 여기에 오시게 되었어요?"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올 2월부로 하던 일 다 그만두고 백수가 되었어요. 시간이 많아서..."라고 농담을 섞어 대답을 했다. 나도 청년에게 어떻게 산티아고 길을 걸을 생각을 하게 되었냐고 묻자, 군대에 다녀와서 대학을 휴학하고 세계일주 중이란다. 부러웠다. 나도 20대 때 외국에 나갈 수만 있었다면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을 텐데...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 된 것은 1989년의 일이었다. 그것도 군대를 가지 않은 병역미필자는 제외였다. 1989년 4월에 입대해 1991년 7월에 제대를 하고, 1992년 3학년으로 복학을 했다. 1993년 대학 4학년 여름방학에 혼자서 일본으로 13일 정도 배낭여행을 다녀왔는데, 그게 우리 학과 동기들 사이에서는 첫 해외여행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자유롭게 세계일주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되었는가. 이 청년은 가능한 한 프랑스길의 일정을 앞당겨 빨리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다시 다른 나라로 출발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순례자 사무소에서 나와 바로 피레네산맥의 중간 지점인 오리손(Orisson)까지 간단다. 서로 순례길의 안전과 건강을 바라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나는 생장 시내의 메인도로 옆에 있는 La Vita e Bella라는 속소에 체크인을 하고 우선 심카드를 사러 쇼핑몰이 있는 곳으로 갔다. 프랑스까지는 로밍을 해 왔는데, 스페인으로 넘어가면 현지에서 심카드를 바꿔 사용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카르푸 앞에 있는 전자제품 가게에 갔다.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심카드를 달라고 했더니 프랑스 통신사의 심카드 하나를 추천해 줬다. 추천해 준 심카드를 끼웠는데도 전화 통화가 되지 않자 통신사에 전화를 하고, 인터넷으로 재등록을 하고.... 갑자기 주인장이 허둥대기 시작했다. 오는 손님들도 많았는데 바쁘다면서 아예 응대도 하지 않는다. 나와 마찬가지로 심카드를 사러 오신 대만 할아버지는 한참을 기다리다가 화가 단단히 나셔서 그냥 나가버렸다. 그 할아버지는 이번이 6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이라고 하던데, 그런 분을 화나게 만든 이 사장님은 더더욱 대단한 분인 셈이다. 우여곡절 끝에 전화가 개통은 되었지만, 데이터 사용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돈 먹는 하마를 한 마리 키우게 된 기분이었다. 심카드를 다시 살 수 있는 스페인 도시가 나오면 무조건 다시 바꾸리라 다짐했다. 나온 김에 카르푸에서 장을 봤다. 유기농사과 6개 한 팩, 유기농 바나나 5개 한 손, 토마토 3개, 맥주 2캔, 생수 3병을 샀는데 전부가 10유로이다. 싼 물가에 놀랐다.
사 온 과일과 맥주로 간단하게 저녁을 때웠다. 알베르게에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세탁기가 있어 그동안 밀린 빨래를 하면서 침대에 누워 순례길에 대한 정보들을 찾아봤다. 그리고 건조기로 빨래를 말리는 동안 동네산책을 했다. 생장에는 마을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성이 언덕 위에 있는데 그곳까지 올라가 보기로 했다. 맞은편 산비탈의 포도밭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고풍스러운 집들이 참 예뻤다. 그리고 마을 전체를 빨갛게 물들인 석양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울컥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저녁 9시 35분쯤 되니 해가 졌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1층 거실에 한국 여학생 둘이 앉아서 브라우니를 하나씩 먹고 있었다. 이번 순례길 절반을 나와 함께 걷게 된 수현과 나린이었다. 대학 졸업반인 둘은 취업하기 전에 꼭 이 길을 걷고 싶었다고 한다. 오늘 파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생장으로 오는 바람에 아무것도 못 먹고, 이제야 브라우니로 첫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고... 다음날 아침으로 먹으려고 했던 사과와 바나나, 토마토를 하나씩 나눠주며, 유기농이니까 맛있게 먹으라고 했다. 몇 번이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둘을 뒤로하고 침대로 왔다. 참 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