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산티아고 5

피레네 산맥을 넘어

by 정만철

드디어 산티아고 순례길의 첫날이 밝았다. 마음속에서는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설레는 마음이 있었는지 아침 5시에 잠에서 깨어났다. 다른 순례자들을 깨울까 봐 조심조심 몸을 움직여 5시 30분에 침대를 나왔다. 알베르게 주인이 준비해 준 빵과 과일, 스푸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6시 50분에 알베르게를 나왔다. 순례길을 출발하기 전에 몸을 비우라는 뜻인지 프랑스에 도착해 처음으로 장에서 신호가 왔다. 그런데 그 신호가 꽤나 과격하다. 뱃속에서는 우르르 쾅쾅 마치 천둥을 치는 듯했다. 알베르게를 이미 나왔기 때문에 다시 돌아갈 수가 없어 순례자마을 중간에 있는 공공화장실로 달려갔다. 하지만 미리 와서 자리를 잡고 있던 옆 칸 사람의 인기척에 그만 배변기가 쏙 들어가고 말았다. '아아 이를 어쩌지!!!' 일단 한국에서 가져온 지사제를 한 알 먹어보기로 했다.


순례자마을에서 카미노 데 산티아고로 나가는 출구는 성벽과 이어진 성당의 옆에 있었다. 작은 성문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까? 그 문을 나서는데 갑자기 마음이 요동을 쳤다.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무덤덤하게 순례길의 첫발을 내딛을 줄 알았는데 울컥한 마음이 올라와 순간 당황스러웠다. '이건 뭐지?' 아마도 끝까지 걸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 그리고 긴 시간 동안 동경처럼 생각하던 바로 그 산티아고길에 내 발을 딛고 서 있다는 비현실감이 내 마음을 흔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성문을 나와 앞서가는 순례자들을 따라 거리를 걷다 보니 본격적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이 시작되는 지점이 나왔다. 그곳에서 만난 콜롬비아계 미국인 아주머니인 루즈라는 분에게 기념사진을 부탁했고, 나도 그녀에게 사진을 찍어주었다. 쾌활한 성격의 그녀는 걷는 도중 계속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론세스바예스까지 함께 걷게 되었다.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는 27km로 피레네산맥을 넘어야 한다. 피레네산맥을 넘는 길은 나폴레옹 루트와 발카를로스 루트가 있다. 나폴레옹 루트는 발카를로스 루트보다 거리는 짧지만 경사가 급하고 험해서 봄부터 가을까지만 올라갈 수 있고, 날씨가 좋지 않거나 겨울철에는 발카를로스 루트를 이용한다고 한다. 이번에는 대부분의 순례자들과 함께 나폴레옹 루트를 따라 올라가는 것으로 했다. 두 시간 정도 걸었을까? 앞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연세가 지긋한 여성분이 걷고 계셨다. 내 걸음이 빨라 그분을 추월하게 되었는데, 인사를 건네며 마주친 얼굴이 선함 그 자체다.

"산티아고 길은 처음이세요?"

"네 처음입니다."

"전 4년 전에 한번 걷고 이번이 두 번째예요"

"아아 네에 그러세요? 부럽습니다. 하하. 근데 인상이 참 좋으세요!"

"아이고 저보다 인상이 더 좋으신데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너무 많은 말을 거는 것도 좋지 않겠다 싶기도 하고, 혼자서 걷는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예의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는 먼저 가 보겠습니다. 조심해서 걸으시고요."라고 인사를 하고 앞서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두 번째 산티아고는 어떤 느낌일까? 걸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이겠지? 나도 이 길을 다시 올 수 있을까?' 등등의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데 큰 나무 밑동에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붙어있다. 달팽이 머리가 아래를 향하고 있었는데, '혹시 이 달팽이가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렇다면 이 달팽이는 엄청난 일을 한 셈일 것이다. 언뜻 스치는 생각에 내 모습이 누군가에겐 이 달팽이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겠구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그 달팽이를 닮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달팽이 생각에 푹 빠져있는데 체구가 작은 아저씨 한분이 나를 추월해 가며 "부엔 까미노"라고 인사를 건넸다. 솔직히 처음에는 뭐라고 했는지 몰랐다. 분명히 동양인인데 얼굴을 보니 한국사람은 아닌 듯해서 영어로 인사를 하고,

"죄송하지만 좀 전에 뭐라고 하셨어요?라고 영어로 묻자

"Buen Camino!"

"그게 무슨 뜻이에요?"

" 좋은 길 되세요!라고 길을 걷는 사람에게 축복을 기원하는 말이에요."

아무래도 발음이 일본 사람인 듯해서

"혹시 일본 분이세요"라고 묻자

"네 일본 이바라기에서 왔어요."라고 하신다.

이 분 역시 이번이 두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이라고 했다. 이름은 묻지 않았지만 올해 74세란다. 첫 번째는 파리에서부터 걸어 생장을 지나 산티아고까지 갔다고 했다. 이번에는 프랑스 베젤레(Vezelay)에서부터 걷기 시작해 이미 30일을 걸어오셨다고 한다. 전혀 나이를 느낄 수 없을 만큼 건강하고 다부지다. 나도 74세에 저렇게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부럽고 존경스럽다.

"이제 막 순례길을 시작한 사람인지, 계속해서 걷고 있는 사람인지는 신발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지금 막 출발하는 사람의 신발은 아주 깨끗하답니다." 역시 이것도 길을 걸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지혜일 것이다.


뱃속이 부글부글 난리가 났다. 이제 화장실에 좀 가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는데 멀리 안갯속으로 산장이 보인다. 오리손산장이다. 산장 앞 데크에는 이미 꽤 많은 순례자들이 앉아서 간단한 음식과 차를 마시고 있었다. 화장실 앞에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길게 줄을 서 있다. 나도 줄을 서서 기다리다 순서가 되어 화장실에 들어갔다.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든 말든 시원하게 속을 비웠다. 몸무게가 3kg은 빠진 것처럼 몸이 가벼웠다. 산장에서 커피 한 잔을 주문해 마시고 있는데, 어제 알베르게에서 만난 여학생들과 일본 아저씨가 도착했다. 아침에 사진을 찍어준 루즈씨와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페루 출신의 셀레스타씨도 이곳에서 다시 만나 함께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고, 혹시 몰라 지사제를 한 알 더 먹고 오리손 산장을 출발했다.


아침에 생장을 출발할 때는 무거운 먹구름이 하늘을 덮었고, 오리손까지는 안개가 자욱해 날씨가 선선한 편이었다. 오리손 산장 앞에서는 거의 100미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끼어서 제대로 경치를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산장을 나서니 갑자기 안개가 걷히고 파란 하늘이 보이면서 피레네산맥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정말 장관이다. 드넓은 초록의 초지에는 양과 소와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고, 소 목에 걸린 방울소리가 귀를 맑게 해 주었다.


산 중턱에 푸드트럭이 한 대 서 있고 많은 순례자들이 그 앞에서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나는 어제 산 사과와 바나나를 간식으로 싸와서 순례자들 중간에 끼어 함께 간식을 먹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웨일스 청년 게일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한국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요. e-sports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데 한국이 워낙 강해서 이길 수가 없어요."

"그래요? 난 그쪽은 잘 몰라서...."

"요즘 농장 시뮬레이션 게임이 있는데 재미있어요. 이 게임도 한국이 엄청 세요. 꼭 한번 해 보세요."

그러겠다고 하고 자리를 일어섰다. 약간은 불량해 보이지만, 심성이 착한 청년이라는 걸 금방 느낄 수 있었다.


피레네산맥을 넘기 위해서 반드시 지나야 하는 곳이 해발 1410미터의 레푀데르 언덕(Col de Lepoeder)이다. 이곳에는 오후 1시 40분경에 도착했는데, 조형물을 배경으로 순례자들 여러 명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내가 그냥 지나치려고 하니까 독일에서 온 커플이 나를 불러 세웠다.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고 가요."

혼자 걸으니 기념사진 찍기가 어려워 풍경사진이나 찍으면서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렇게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그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또 보자고 인사를 했다.

내리막길은 올라오던 풍경과는 많이 달랐다. 올라오는 길이 드넓은 초원으로 눈이 시원했다면, 내려가는 길은 고목들이 울창한 숲길이라 몸이 시원했다. 순례자들도 거의 없어 한동안 혼자서 그 길을 걷기도 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길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얼마 전 TV에서 피레네산맥에서 방목하는 돼지에 대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도토리나무 아래서 돼지들이 도토리를 주워 먹고, 코로 땅을 헤집던 딱 그 풍경이었다. 간간히 울타리도 쳐져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여기서도 돼지를 방목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돼지 새끼 한 마리 볼 수 없었다.


내리막길을 거의 다 내려왔나 싶었는데 작은 시냇물이 졸졸 흐른다. 물이 맑고 시원했다. 땀에 젖은 얼굴도 씻고 손수건에 물을 적시면서 앞을 보니 길 끝에 요새 같은 건물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사는 마을은 아닌 듯하고, 수도원인가?' 갑자기 나타난 건물이 확 다가왔다. 론세스바예스다. 도착 시간은 오후 3시 10분. 안내소에 가서 알베르게와 론세스바예스에 대한 소개를 받고 공립 알베르게로 갔다. 알베르게는 규모가 엄청 컸다. 한 층에만 침대가 100개는 되는 것 같았다. 사무실에는 이미 여러 명의 순례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리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 크레덴시알과 여권을 주고 침대를 배정받았다. 245번. 그리고 저녁과 다음날 아침 식권까지. 침대 옆에 배낭만 내려놓고 바로 Casa Sabina라는 알베르게 근처의 바(Bar)로 갔다. 시원한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싶었다. 우선 그란데 사이즈로 한 잔을 시켜 첫 모금에 절반 이상을 들이켰다. 종일 걷고 난 후의 갈증을 날려버리는 그 시원한 청량감이 너무 좋다.


맥주를 마시는데 미국 청년 둘이서 합석을 하게 되었다. 보스턴에서 온 제이슨과 매튜였다. 이들은 올 8월에 칼리지를 졸업하는데, 이미 직장이 결정이 되었다고 한다. 스마트폰 렌즈를 만드는 회사에 취업을 했는데, 직장에 출근하기 전에 친구끼리 산티아고를 걷고 싶었단다. 제이슨이 갑자기 나에게 질문을 한다.

"산티아고 길은 왜 오게 되었어요?"

"음(뭐라고 대답하지?).. 올 2월에 직장을 그만두고 시간이 많아졌어요. 시간이 있을 때 오고 싶었던 산티아고에 와야겠다 생각했지요."

"무슨 일을 하셨는데요?"

"지난 2월까지 대학에서 일했어요."

"아니 그 좋은 직업을 왜 그만두셨어요?"

"한국은 저출산으로 학생들이 줄어서 앞으로 대학이 많이 어려워질 거예요. 그래서 미리 다른 일을 하려고 그만둔 거예요. 아마 몇 년 안에 문 닫는 대학이 많아질 거예요."

"한국사람들은 왜 아기를 안 낳는데요?"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리고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결혼도 안 하려고 해요. 제이슨하고 매튜는 어때요? 결혼하고 싶어요?"

제이슨이 대답했다. "저는 저희 삼촌처럼 결혼하면 아이를 다섯은 낳을 거예요. 아직 여자친구는 없지만 꼭 결혼은 할 거예요."

그랬더니 매튜가 옆에서 하는 말이 가관이다.

"전 결혼하면 아이를 150명은 낳을 거예요. 부인도 많이 얻고요."라며 웃는다.

"매튜. 그럼 매튜는 유타주에 가서 살아야 할걸요."라고 농담을 하니 어떻게 알았냐며 박장대소를 한다.

"안 그래도 그 종교에 들어갈까 생각도 해 봤어요."라고 해서 절대 그러지 말라고 했다.

즐겁게 맥주를 마시고 두 청년들과 헤어졌다.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알베르게에서 구입한 식권으로 알베르게 옆에 있는 호스텔에서 커뮤니티 디너를 하게 되었다.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한국인 부부와 튀르키예에서 오신 여성분이 함께했다. 애피타이저로 파스타가 나오고, 메인디쉬는 송어요리였다. 테이블 당 와인 한 병씩이 나왔는데, 나와 함께 앉은 분들이 전혀 술을 못해 내가 다 마셨다. 하루의 피로가 싹 풀린다. 2층 침대 위층에 프랑스 아저씨 두 분이 계시다. 무슨 즐거운 일이 있는지 밤새도록 소곤소곤 이야기를 한다. 걸은 거리만큼이나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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