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산티아고 6

나만의 속도

by 정만철

스페인은 저녁 10시가 가까워도 하늘이 훤하게 밝다.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라도 일찍 잠자라에 들었더니 새벽 5시쯤 눈이 떠졌다. 주위를 둘어보니 아직 일어난 사람이 없다. 일찍부터 부산을 떨면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칠 것 같아 6시까지 스마트폰을 보며 누워있었다. 6시 경이되자 하나둘씩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침대에서 나와 간단하게 세수와 양치를 하고, 어제처럼 급하게 화장실을 찾는 일이 없도록 미리 볼 일도 봤다.


짐을 완전히 챙겨서 호스텔 정원으로 나왔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사진도 찍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는 마을이라기보다는 순례자를 위한 숙박시설과 호텔이 모여 있는 곳이다. 어젯밤에 묵은 순례자 호스텔과 호텔, 그리고 성당이 하나의 건물로 이어져있는데, 성당에 가 보지 못해 아침에 잠깐 둘러보기로 했다. 성당과 붙어 있으니 순례자 숙소인 호스텔과 호텔이 수도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은 어제저녁에 구입한 5유로짜리 식권을 가지고 호텔 식당에서 먹었다. 식빵 1조각에 치즈와 햄, 오렌지주스, 그리고 커피와 브라우니 한 조각이 나왔다. 이번이 첫 번째가 아닌 사람들이 아침식사에 대해 불평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난번에는 이렇지 않았다'는 둥, '예전에는 가성비가 좋았다'는 둥, 누군가는 "기대한 것과 완전히 달라"라는 푸념도 했다. 하지만 나는 '한 끼 때우는 건데 이 정도면 어떠랴' 생각하고 감사히 먹고 나왔다. 특히 아침에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조식을 할 때까지는 좀 쌀쌀해서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는데 출발을 하려니 바람막이를 벗어도 될 정도로 기온이 좀 올랐다. 7시 반에 알베르게를 나와 초입에 있는 순례길 안내판을 보니 론세스바예스부터 오늘의 목적지인 수비리(Zubiri)까지는 20.7km이다. 약간의 산길이 있었지만, 어제 걸어온 길에 비하면 훨씬 수월한 구간이다. 론세스바예스를 출발해서 3, 40분을 걸으니 부르게떼(Burguete)라는 작은 마을이 나왔다. 이곳은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송어낚시를 하며 쉬기 위해 네 번을 찾아왔고, 그의 대표작인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 헤밍웨이가 묵었던 호텔에는 아직도 그의 발자취가 남아있다고 한다. 마을을 통과하는 도로는 그리 넓지 않았지만, 길 옆으로 늘어선 건물들의 창가에 걸려 있는 화분과, 건물 사이사이에 있는 작은 정원이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불금을 즐긴 젊은 청년들인지 아침 9시가 다 되었는데도 술에 취해 거리를 비틀거리고 있었다. 순례자들이 지나가면 큰 소리로 인사인지 야유인지를 보내기도 했다. 마을 중간쯤에 있는 성당 바로 옆에 술집이 있는데, 술집 마당에 천막까지 치고 밤새 술을 즐겼던 모양이다.


부르게떼 마을의 끝자락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고, 그 위로 오래되어 보이는 나무다리가 있다. 다리를 지나자 길 옆으로 목장들이 보였고, 길에는 작고 까만 고양이가 지나가는 순례객들에게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내 앞으로 몇 명의 순례자들-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와 그녀의 아빠, 그리고 미국에서 왔다는 덩치가 내 두 배는 되어 보이는 여성-이 보였는데, 이들도 고양이와 장난을 치다가 길을 떠나는 것이 보였다. 그 고양이는 내가 지나가자 얼른 나에게 다가왔다. 나 역시 갈 길이 바빠 잠깐 사진을 찍어주고 턱 밑을 쓰다듬어주다가 길을 재촉했다.


부르게떼에서 얼마 가지 않아 에스삐날(Espinal)이라는 마을을 지나다가 어제 만났던 이영희 선생님을 만났다. 한국에서 온 수현, 나린과 함께 걷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또 뵙네요. 아침 일찍 출발하셨나 봐요?" 내가 물었다.

"전 걸음이 느려서 아침에 좀 일찍 출발했어요. 5시 반쯤!" 그러면서 "수현 씨하고 나린씨는 먼저 가요. 나 때문에 너무 늦을 것 같아요."라며 두 청년들을 먼저 보냈다.

수현과 나린은 "그럼 조심해서 오세요. 또 뵈어요."라며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앞서서 걸었다. 웃는 모습이 참 예쁜 청년들이다.


"오늘 어디까지 가세요?" 내가 먼저 물었다.

"수비리까지 가 보려고 해요."

"아아 잘 됐네요. 저도 오늘은 수비리까지 가려고 합니다."

어제는 처음 만나 개인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 생각해서 서로 참았던 것도 있었지만, 오늘은 각자 살아온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길 오게 되셨어요?" 이영희 선생님께서 먼저 물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는데, 시간이 좀 많이 남아서 갑자기 오게 되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어제 묻고 싶었지만 참았던 질문을 했다. "그런데 두 번째 산티아고는 어떤 느낌이세요?"

"4년 전에 다녀간 이후로 언젠가는 꼭 다시 오리라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나름 매주 주말에는 관악산에도 오르면서 준비도 했고요. 여기에 오니 지난번 걸었던 그 길이 그대로 생각이 나네요."

천천히 길을 걸으며 자기소개 같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나는 홍성에 가게 된 이유와 홍성에서 출마를 했던 일, 전공이 유기농업이라서 먹거리에 관심이 많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이영희 선생님은 용인정신병원에서 오랜 기간 동안 내과의사로 근무를 했고, 지금은 은퇴를 해서 분당에 살고 계신다고 했다. 젊은 시절 가톨릭 단체에 헌신할 것을 서원한 이후, 줄곧 가톨릭 차원에서의 사회운동에 매진해 오고 있단다.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도시개발이 되면서 쫓겨난 도시빈민운동을 시작으로 외국인 노동자문제, 이주여성문제, 빈곤계층의 청소년문제, 그리고 최근에는 사회양극화문제와 청년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영희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Bizkarreta-Gerendiain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10시 40분이었다. "좀 이르지만 여기서 점심을 먹고 갈까요?" 이영희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네, 좋습니다." El Dragón Peregrino라는 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데 한 한국인 여성이 이영희 선생님께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벌써 여기까지 오셨어요?" 두 분은 이미 아는 사이인 듯했다. 깡마른 체형에 화장기 없는 얼굴, 질끈 묶은 머리. 언뜻 보아도 오랜 기간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 같았다. 나도 인사를 건네고 그분이 먼저 앉아 있던 테이블에 합석을 했다. 11년 전에 제주로 내려가 단독주택을 리모델링해 게스트하우스를 하다가 작년에 다른 사람에게 임대를 하고 1년 동안 세계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남미를 여행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며칠 전 이곳으로 왔단다. 나는 점심으로 바게트빵에 치즈를 넣은 샌드위치와 즉석에서 착즙해 주는 오렌지주스를 먹었다. 스페인의 오렌지주스는 너무 신선하고 맛있어서 거의 매일 한 잔씩 의무와 같이 마셨던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카페에서 2km 정도 떨어진 Lintzoain라는 마을까지는 셋이서 걸었는데, 카페에서 만난 여성분은 다리가 아파 이곳에서 묵는다고 해서 이영희 선생님과 둘이 걷게 되었다. 그나마 오르막길이 나오면서 이영희 선생님도 천천히 가겠다며 먼저 가라고 해서 나도 앞서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속도가 있다.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일도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그 속도를 과하게 높이면 무리하게 되고 결국 사고가 나고 탈이 나게 마련이다. 산티아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각자의 속도로 걷는다. 걸음이 느린 사람은 출발 시간을 앞당겨 새벽 일찍 길을 나서기도 하고, 걸음이 빠른 사람은 천천히 출발하거나 긴 거리를 가기도 한다. 앞서가는 사람을 따라가려고 애쓰지 않는다.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은 똑같기 때문이다.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속도를 강요할 수 없다. 그저 묵묵히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지켜보면 그만이다. 이영희 선생님과도 마찬가지이다. 굳이 내가 누군가의 옆에서 함께 걸어야 할 필요도 없으니까.


확실히 어제보다 경사가 크지 않아 걷기에는 수월한 길이었지만, 간간이 나오는 산길은 바위가 물과 세월에 깎여 공룡 등을 걷는 것 같았다. 까딱하면 발목을 다칠 수도 있을 것 같아 조심조심 돌부리를 피해 걸어야 했다. 낮에는 햇볕도 강하고 기온도 올라가 산길을 걷는 동안은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간간히 나무들이 터널을 만들어 주는 구간이 나오면 오아시스라도 만난 듯이 기뻤다. 산길을 걷는데 내 앞으로 덩치가 큰 남자가 큰 배낭을 메고 다리를 절며 조심조심 가고 있는 게 보였다. 어제와 오늘 산길을 걸으며 무릎에 무리가 온 모양이다. 내가 추월을 하며 "부엔 까미노(Buen Camino)"라고 인사를 하자 이 친구도 밝은 얼굴로 화답을 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에서 소셜마케팅과 이커머스 관련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25년 전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을 꼭 걷고 싶었는데, 그동안 가족들을 위해서 일만 하다가 시간을 내 이곳에 왔단다. 25년이나 산티아고를 동경하면서 살다가 하던 일을 접고 이렇게 이곳을 찾아올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아르헨티나는 사람도 좋고, 소고기, 와인, 해산물도 맛있어서 살기가 정말 좋은데 정치인만 별로라고 해서,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하니 크게 웃는다. 또 만나자고 인사를 하고 먼저 가려고 하는데 "너 혼자 왔어?"라고 그가 물었다. "아니 나는 많은 친구들하고 함께 이 길을 걷고 있어. 너도 그중의 하나야"라고 대답을 했다.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는지 그가 환하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산길을 걷는데 멀리서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가까이에 마을이 있다는 것일 테니 '아아 이제 다 왔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수비리에는 오후 3시쯤 도착했다. 알베르게를 미리 예약하지 않고 왔기 때문에 어디에서 묵어야 하나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알베르게 Zaldiko 정문 앞에 한국인 한 분이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알베르게 찾으세요? 여기가 위치도 좋고 깨끗해서 좋은데 여기에서 묵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 가면 침대도 있을 거예요."

"아 네에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카운터에 가서 여권을 제시하고 체크인을 했다. 물론 순례자여권에 스탬프 찍는 일도 빼먹지 않았다.

침대를 배정받고 일단 샤워를 했다. 옷을 갈아입고 마을 초입에 있는 카페로 달려갔다. 어제 만난 친구들이 벌써 맥주잔을 들고 앉아 있었고, 나도 그란데 사이즈의 맥주 한 잔을 들고 그들과 합석을 했다. 독일에서 온 시크프리트 형님과 프랑스에서 온 셀레스테(Skybule라는 뜻이란다)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페루 출신인 셀레스테는 현재 프랑스 니스에서 스페인어와 과학을 가르치는 교사인데 얼마 전 남편과 이혼을 하고 새 남자친구를 찾아서 왔단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요즘 한국 드라마에 빠져 울고 웃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일상이냐고 묻길래 "그냥 드라마는 드라마"라고 대답을 했더니 배꼽을 잡는다. 한국음식을 너무 좋아한다고 해서 내일 팜플로나에 가서 한국 식당이 있으면 같이 가자고 했다.


알베르게 바로 옆으로 작은 강이 흐르고 있는데, 많은 순례자와 동네 주민들이 강가에 누워 일광욕을 하거나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도 강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기도 하고, 강가 풀밭에 누워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잠깐 눈을 붙이기도 했다. 감자기 한 꼬마의 비명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한 아이가 가재를 잡았는데, 가재가 집게발로 아이의 손가락을 물어 달랑달랑 매달려 있는 모습이 우습다. 이런 여유와 평화로움이 너무 좋다. 나에게 산티아고 길은 어떤 것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새로운 인생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백수가 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는 기쁨도 오늘의 이 평화로움의 일부일 것이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는 가능하면 연락을 하지 않으려고 생장에서 현지 유심을 샀는데,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들어오면서 스마트폰이 먹통이 되었다. 오전에 수현을 만났을 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마침 한국에서 사 온 유심이 있는데 본인은 필요가 없다며 나에게 주었다. 'Buen Camino'라는 어플을 보면서 길을 찾거나, 알베르게 검색을 해야 하는 일이 많아서 유심이 없으면 좀 불편하다. 대도시인 팜플로냐에 가서 유심을 다시 구입하려고 했는데 다행히 수현에게서 받은 유심으로 20일 이상은 버틸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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