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산티아고 7

미루나무

by 정만철

밤새 잠을 설쳤다. 어젯밤에 일기를 쓰고 이것저것 정리를 하느라 12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는데, 바로 옆 침대에서 주무시던 한국 분이 코를 너무 심하게 골아 잠들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어제 길에서 만난 미국 여성이 같은 방을 쓰게 되었는데,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다며 신경질을 내고 왔다 갔다 하는 통에 신경이 쓰여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게다가 방이 덥다며 내 침대 머리맡의 창문을 활짝 열어 놓는 바람에 찬바람이 들어와 추워서 침낭을 끌어 덮고 억지로 추위를 참아야 했다. 잠깐 잠이 들었다가 4시 반에 깼는데, 잠을 잔 것이 아니라 계속 가수면 상태에 있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한국에서 오신 분은 부부가 함께 오셨는데, 아침에 일어나 아내 분이 미안하다며 어쩔 줄 몰라했다.

알베르게는 공립과 사립으로 구분되는데, 공립은 대부분 가톨릭교회나 지역의 기관에서 운영을 한다. 공립은 숙박비가 저렴하고, 밥을 직접 해 먹을 수 있는 주방이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어떤 곳은 한 방에 침상이 100개가 넘는 곳도 있어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에 사립은 숙박비는 좀 비싼 편이지만, 한 방에 소수의 인원만 받기 때문에 친한 사람들과 함께 묵을 수 있고, 샤워와 세탁 등이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사립 알베르게에서는 순례자들을 위한 커뮤니티 디너와 조식을 제공해 주는 곳도 있어 순례자들이 서로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알베르게는 일부 사립 알베르게를 제외하고는 거의 남녀 구분 없이 함께 이용을 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샤워를 하러 샤워실에 들어갔는데 옆 샤워부스에서 여성이 샤워를 하고 있어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다. 어제 묵은 방은 2층침대가 4개가 있는 방으로 8명이 정원이었는데, 어제는 남자 넷에 여자 둘, 6명이 함께 잠을 잤다. 길을 걸으면서 이층 침대 위층에 여성이 잠을 자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렇다 보니 알베르게에서는 서로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더욱더 필요하다.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다 보니 다른 사람의 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6시까지는 조심조심 움직인다. 6시가 되면 방에 불을 켜도 누구 하나 불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깰까 봐 5시까지 침대에 누워있다가 살금살금 화장실로 가서 세수와 양치를 했다. 6시가 되니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일어나 짐을 싸기 시작했다. 미국 여성은 밤에 잠을 완전히 설쳤다고 입이 한 발은 나왔다. 나한테 괜찮았냐고 묻길래 그냥 잘 잤다고 답해주었다. 짐을 싸면서 여벌로 가져온 새 치약과 칫솔을 알베르게에 두고 오기로 했다. 배낭에서 꺼내기 쉬운 곳에 넣어 두고 필요할 때 바로 꺼내 쓰려고 했지만 그동안 아예 꺼내보지도 않은 것이 치약과 칫솔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짐을 줄이는 연습을 해 간다. 인생에 있어서도 쓸모없는 직책과 직위들을 털어버리고 가볍게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아침식사는 생략하고 6시 45분에 다음 목적지인 팜플로나를 향해 길을 나섰다. 나뿐만 아니라 오늘은 아침 일찍 길을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 나바라주의 주도인 팜플로나가 이 지역에서는 가장 큰 도시이다 보니 일찍 도착해서 장도 보고 도시를 관광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수비리에서 팜플로나까지의 거리는 21km이다. 길도 버라이어티 하다. 나무가 울창한 숲길을 걷다가 갑자기 강을 만나고, 채석장 같은 곳에서는 계단도 오르내린다. 광활하게 펼쳐진 밀밭을 지나다 보면 어느새인가 예쁜 마을이 나온다. 주변에서 들리는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에 몸과 마음이 평화롭다. 가능하면 아무 방해를 받지 않고 혼자 걷고 싶어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도 짧은 인사만 나눴다.

Akerreta라는 마을 초입에 도착하니 한창 물이 올라 진녹색이 된 미루나무가 몇 그루 서 있었다. 나에게 미루나무는 아주 특별한 나무이다. 가장 좋아하는 나무이기도 해서 한 때는 온갖 SNS의 닉네임을 '미루나무'로 했던 적도 있다. 어렸을 때 집에서 가까운 밭둑에 미루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봄에 나온 가녀린 새잎도 좋았지만, 한 여름 뭉게구름 아래에서 작은 바람에도 팔랑거리는 반짝반짝 빛나는 이파리가 너무 좋았다. 바람이 휙 불 때마다 잎들이 내는 사락사락 거리는 소리가 나에게 깊은 평온을 주었다. 미루나무를 끌어안고 나무에 귀를 대고 있으면, 툭툭 가지 부딪히는 소리와 파도소리 같은 시원한 소리가 들리곤 했다. 내게 있어서 그 두 그루의 미루나무는 둘도 없는 친구였고 목을 길게 뒤로 젖혀야 볼 수 있는 하늘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던 어느 날 - 국민학교 5, 6학년 때라고 기억하는데 - 아버지가 미루나무들을 베어버렸다. 잘려나간 미루나무의 밑동을 보고 얼마나 분하고 슬퍼했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아버지는 베어온 미루나무를 어른 팔뚝 길이 만큼씩 잘라 담장 밑에 늘어놓고 매일 같이 물을 주며 정성을 다했다. 신기하게도 우리 식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느타리버섯이 자라났는데, 미루나무를 잃은 슬픔보다 매일매일 느타리버섯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즐거운 일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마트에서 장을 보다 느타리버섯을 보면 그때의 미루나무가 생각나곤 한다. 또 한 가지, 미루나무는 단풍이 참 아름답다. 노랗게 물든 단풍이 햇빛에 반짝이면 눈이 부실 정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거의 사라져 버려 아쉽지만 이렇게 외국에서라도 미루나무를 보면 너무 반갑고 좋다.


강을 따라 신길을 걷다 보니 갑자기 오래된 돌다리가 나타났고, 다리 건너편 왼쪽으로 카페가 하나 있는데 벌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Zuriain이라는 마을이다. 마을로 들어오기 직전에 이영희 선생님을 만나서 함께 자리를 잡았다. 아침 9시쯤 되었는데 아침을 안 먹어서 그런지 출출해서 간단히 요기를 하기로 했다. 난 우선 오렌지주스와 시금치오믈릿을 주문했다. 이영희 선생님도 아침을 안 드셨다며 오믈릿을 주문하셨다. 아직까지 스페인 음식을 많이 먹어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먹어본 것들은 모두 심플하고 맛이 좋았다. 오믈릿도 마찬가지다. 양도 많아 오믈릿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배가 부르다. 손님들의 대부분이 순례자들이라서 그런지 가격도 저렴하다. 오렌지주스와 오믈렛이 각각 2유로, 여기에 커피를 한잔 해도 도시에서의 한 끼 식사비보다 싸다. 이 카페의 직원인지 주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분 한 분이 일을 하는데, 내 인생에서 가장 일 잘하는 서양인이었다. 거의 대부분은 커피 한잔을 시켜도 한참이 걸리는데 이 카페는 달랐다. 손을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혼자서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리고, 접시에 음식을 담고, 계산을 하면서도 밀리는 일이 없었다. 우리나라였다면 '생활의 달인'급이다.

9시 반쯤 카페를 나와 산길을 걷다 보니 아주 오래된 약수터가 나왔다. 졸졸 흐르는 물도 아주 시원해 세수를 하니 더위가 싹 달아나는 것 같았다. 좀 더 걸으니 이번에는 광활한 밀밭이 나타났다. 바람에 일렁이는 밀들은 곧 수확을 해도 될 정도로 바싹 말라 있었다. 푸릇하게 설익은 밀을 손바닥으로 비벼 껍질을 까고, 후후 불어 껍질을 날려 알곡만 모아 이영희 선생님에게 드렸더니 신기한 표정으로 입에 털어 넣으셨다.

"쫄깃쫄깃하고 달달한 게 너무 맛있어요. 이런 건 처음 먹어봐요."

"그쵸! 너무 맛있죠! 그런데 잘 익은 밀을 한 움큼 입에 넣고 계속 씹으면 껌같이 돼요."

"아아 그래요? 나중에 한번 해 봐야겠네요."

사실 나도 이야기만 들었지 진짜 그렇게 되는지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시도해 보고 성공하면 다시 이야기를 해 주리라 생각했다. 밀밭이 끈나갈 무렵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아스팔트길이 나왔다. 그리고 도로 옆에 공원 같은 쉼터가 있어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쉼터에는 급수대도 있어 다시 세수를 하고 물병에 물도 채웠다. 순례길은 아스팔트길을 건너 맞은편 산을 넘어가야 한다. 정상까지의 높이는 약 100여 미터쯤 되어 보이는데, 급경사의 사다리 같은 계단이 놓여있었다. 이영희 선생님은 정면으로 보이는 산길에 지레 겁을 먹었는지 조금만 더 쉬다 가겠다고 했다. 나는 먼저 출발해 산길을 올랐다. 산에 오르니 주변에 펼쳐진 황금색의 밀밭이 보인다.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밀밭을 지나 산길을 걷다가 멀리 도시가 보이고, 그 도시로 들어가는 다리가 보였다. Trinity Bridge로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돌다리이다. 다리를 건너서부터는 도시가 시작되었다. 팜플로나로 들어가는 도중에 Burlada라는 지역을 지나는데 마침 주일미사를 드리는 성당이 있어 잠깐 들어갔다. 미사가 거의 끝나가고 있어 짧은 기도를 드리고 나왔다. 도시의 포장된 도로는 산길이나 들길보다 훨씬 더 뜨겁다. 해가 머리 위에 있어 더위를 피할 건물의 그림자도 찾기 어려웠다. 더위도 피하고 음료수라도 한 병 사 마시려고 마트에 들어갔는데 아이스크림이 눈에 띄었다. 종류가 여러 가지 있었지만 수박바를 하나 집어 들었다. 생각보다 아이스크림 가격은 비쌌지만, 잠시나마 뜨거워진 몸을 시원하게 식혀주는 감동적인 맛이었다.

팜플로나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가 지날 무렵이었다. 그래도 예상보다는 일찍 도착했다. 팜플로나는 성벽의 도시다. 견고한 성곽으로 둘러싸여 밖에서 보면 요새와 같은데 막상 성문을 지나니 별천지와 같다. 우선 오늘 묵을 숙소를 찾아야 했다. 어제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현지에서 소개를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관광안내소로 갔다. 가능하면 시내 중심가와 가까운 곳으로 추천을 해 달라고 했더니 'Albergue Jesus y Maria'가 제일 좋단다. 체크인을 하고 우선 땀에 절은 몸부터 씻었다. 이 알베르게는 세탁기가 무료란다. 어제 빨래를 못해 비닐봉지에 담아왔는데 한꺼번에 세탁기를 돌렸다. 건조기도 있지만 2시가 되어도 햇볕이 뜨거워 정원에 있는 빨랫줄에 널었다. 건조한 데다 밤 10시가 넘어도 해가 지지 않으니 앞으로도 빨래는 걱정이 없어 보였다.


팜플로나에 빨리 도착을 하려고 무리를 했는지 오른쪽 아킬레스건과 고관절 통증이 심하다. 아침에 출발할 때 준비운동이라도 좀 하고 출발할 걸 그랬나 후회가 되기도 했다. 아킬레스건의 통증은 좀 심해서 막판에는 걷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한쪽 발에 힘을 주고 걸어서 그랬는지 양쪽 새끼발가락에는 물집도 잡혔다. 스프레이파스라도 사려고 약국을 찾았지만 일요일이라 그런지 근처 약국은 모두 문을 닫았다. 알베르게 직원에게 물어보니 광장을 지나 버스터미널 쪽으로 가면 문을 연 곳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해서 가 봤지만, 역시나 문을 닫았다. 알베르게로 돌아오는 길에 늦은 점심이라도 먹을까 했는데 너무 힘이 들어서인지 아무것도 당기는 게 없었다. 카스티요 광장(Plaza del Castillo)으로 들어가는 모퉁이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어 들어갔더니 요거트 아이스크림이 눈에 띈다.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광장으로 나와 건물 그늘에 앉아 광장을 바라보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일요일 낮이라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다.

오늘 묵을 알베르게에서는 요리를 할 수 있다고 해서 숙소 가까운 마트 - 카르푸 익스프레스 -에 가서 감자와 토마토, 납작 복숭아, 소금 등을 샀다. 그리고 카르푸 옆에는 중국마트도 있었는데 들어가 보니 한국 컵라면이 있어 하나를 사서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저녁으로 컵라면이나 먹을까 해서 주방을 갔더니 한국에서 오신 부부가 밥을 하고 계셨다.

"어서 오세요. 안 그래도 막 저녁 준비하고 있었는데 저희랑 저녁 같이하세요!" 부인께서 내게 말했다.

"저녁 먹으려고 컵라면 사 왔는데요."

"저희도 라면하고 밥 먹으려고 지금 끓이고 있었어요. 조금씩 나눠서 같이 먹어요."

"아 네에 그러면 제가 사 온 컵라면을 드릴게요."

오랜만에 신라면에 밥을 말아먹으니 제대로 된 집밥을 먹은 것처럼 든든했다.

감자는 삶아서 내일 아침에 먹을 생각이었는데 저녁을 먹는 동안에 삶아서 테이블에 꺼내 놓았다.

"이렇게 맛있는 감자는 처음 먹어봐요."부인께서 감자가 정말 맛있다고 한다.

"다행이네요. 저도 감자를 엄청 좋아해서요."

저녁을 먹고 빨래를 걷어서 침대에 가져다 두고 광장으로 나갔다. 낮에는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더니 저녁이 되자 광장이 북적인다. 헤밍웨이가 자주 찾았다는 카페 이루냐(Café Iruña)에 들러 헤밍웨이가 자주 앉았다는 자리에 앉아 맥주를 한잔하고 싶었다. 아쉽게 그 자리는 2층이라 올라가지 못했지만, 카페 앞 테라스에서 헤밍웨이의 시선으로 카스티요 광장을 바라보았다. 팜플로나는 투우로 유명한 곳이다. 헤밍웨이도 투우경기를 좋아해서 이곳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소몰이 축제인 산 페르민(San Fermin)을 묘사한 부분에 등장하는 카페가 바로 이루냐 카페이다. 예전에 '걸어서 세계 속으로'나 '세계 테마기행'과 같은 한국 TV에서도 투우경기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 나도 그 투우장에 한번 가 보고 싶어졌다. 기왕 가는 김에 산 페르민이 열리는 골목을 걸어보기로 했다. 중간중간에 기념품가게가 있었는데 판매하는 기념품의 대부분이 투우 관련 의상과 인형, 조각 등이었다. 하얀색과 빨간색의 기념품들이 정열적으로 보였다. 투우장 안에는 들어갈 수가 없어 경기장 밖을 한 바퀴 걷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스페인에 왔으니 하몽에 맥주 한 잔은 해야 할 것 같아 마땅한 곳을 찾고 있는데 골목 중간에 하몽 전문점이 눈에 띄었다. 그 가게의 천장에는 돼지 뒷다리 수십 개가 매달려 있었다. 바로 내가 찾던 그런 집이었다. 얼른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그 자리는 메인 메뉴를 하나 시켜야 하는 자리란다. 하몽 몇 조각에 맥주나 한 잔 하려고 했는데 오늘은 그날이 아닌가 보다.


저녁 10시가 넘었는데도 하늘은 밝다. 내일 아침에 먹을 감자와 토마토, 납작 복숭아는 준비를 해 놓았으니 오렌지 주스나 사들고 들어가기로 했다. 아까 카르푸에 갔을 때, 매장에서 오렌지를 직접 착즙해 주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다시 카르푸로 갔다. 세척된 오렌지를 착즙기 위에 부어 놓으면 한알씩 아래로 내려가 통 안에서 페어로 돌아가는 노란색 롤러에 물려 착즙이 되는데 정말 신선하고 맛있다. 500ml 한 병에 4유로로 가격도 저렴하다. 오늘은 긴 하루였다. 어제 잠을 못 잤으니 오늘은 아내가 챙겨준 수면유도제라도 먹고 자야겠다.

사람들은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 큰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는 듯하다. 이제 걷기 시작한 나에게도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는지를 묻는 사람들도 있다. 걷기를 통해서 뇌가 말랑말랑해지고 가슴에서 무언가가 올라오기 시작하는 기간이 15일이라고 한다. 15일 이상을 걸어야 그때부터 내적으로 변화가 시작된다는 말이다. 난 아직 3일밖에 걷지 않았다. 앞으로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길 옆으로 펼쳐진 자연과,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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