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는 있는데 이제 더는 노력하기 싫어
켜켜이 쌓인 억울함과 부부상담의 시작
아무래도 그간 공부한 것이 있다 보니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우리의 대화 패턴이 어떤지... 상황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보는 편이다.
그러나 여기서 나의 아이러니는 시작된다.
이것이 나의 일이 아니라면(그러니까 타인의 일에 조언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건방질 수 있는지 깨닫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는 말이다)
'저 사람은 당연히 나와는 다르니 차이를 인정하고 그 사람의 말에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고 상처받지 마. 그냥... 아, 너는 그렇구나, 나는 이래! 정도로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나름대로는 좌절되며 삐딱하게 나오는 거 같지? 일단 그의 욕구를 채워줘 봐. 그러면 자연히 관계가 나아질 거야.'
'그가 먼저 바뀌기를 기대하지 말고, 내가 먼저 바뀌어야지.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나 밖에 없어. 상대방을 바꾸려는 순간... 파국이야.'
스스로에게도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이렇게나 많다. 다 알아... 그런데 너무 억울한 것이다!!
10년을 쌓아온 억울함을 외면하고 또 노력을 하기엔 울분이 샘솟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언제까지 나만 참고, 노력하고, 이해하고, 성숙하게 대처해야 한단 말인가!!!!
10년, 이쯤이면 나의 양보가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기울어진 채 반복되는 판이 깔아져 버린 느낌이다.
얼핏 별 거 아닌 남편의 사소한 언행 하나도 이미 찰랑대다 못해 몇 번을 넘쳤던 나의 억울함에 똑! 떨어지는 물방울이 되어... 어김없이 넘쳐 버린다.
알고 있다. 이 마음은 온전히 그가 준 것이 아니라 일부 내 안에 있던 것임을...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때그때 들어온 물을 퍼낼 여유가 없이 지내고 있는데 물을 이렇게나 부어준 게 고마울 일은 아니잖아.
모르는 게 약이라고, 그는 내 마음을 아무리 표현해도 모른다 하고, 의도한 게 아니니까 무죄. 내가 계속 감당해야만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렇게 10년에 걸쳐 노력했지만 결국 소진되고 만, 서로의 버튼을 누르지 않는 대신 평화로운 침묵을 선택한 우리 부부는 단절된 소통으로 인한 살얼음판을 걷다 부부상담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남편은 부부상담을 원한다는 나의 말에 뒤통수를 맞은 듯 배신감이 느껴졌다고 분노했다.
다들 이러고 사는 거지, 평범한 가정이건만 뭐가 그리 힘드냐고...
어쨌건 결국 결혼 10주년 선물로 무료 부부상담을 받게 된다.
물욕이 많지 않아 딱히 요구가 없던 나의 요구 앞에서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라는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