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었던 발라드

by 김소희

나는 참 성실하다.

꾸준하고 무던하고 밝다.

나는 머리가 좋지는 않은 것 같다.

한번 들으면 이해가 되지 않고 두세 번 들으면 간신히 알지만 금방 까먹는다.

아마도 그래서 성실한가 보다.


지난주에 상하수도 공학과 작업환경관리 출석수업을 하고 과제를 받아왔다.

이번 달 초에 세운 계획으로는 출석수업 전에 중간과제물을 끝내는 게 목표였는데.. 으.. 실패다.

제출 시간이 일주일로 정해져 있는 중간 과제물을 먼저 마쳤다.

급한 불을 끄고 추석 연휴 전에 과제물을 끝내려 무지성으로 노력 중이다.

평일 일정 몇 개를 취소했음에도 좀처럼 과제물에 속도가 붙지 않아 내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영어 학원에서 선생님이 "요즘 영어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냐." 영어로 물었다.

난 이렇게 알아듣고 더듬더듬 영어로 대답했다.

선생님의 얼굴빛이 밝지 않았다. 내 대답이 엉망이라서 그런 거라 생각했다.

내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준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국말로 말했다.

"내 말은 요즘 어떤 일을 하냐는 거였어."

뒤에 아까 했던 영어를 다시 말해줬는데 너~~~ 무 간단한 문장이었다.

말 그대로 왕초보를 위한 문장일듯하다.

나는 이해했다며 다시 대답을 하고 쏼라쏼라 영어 수업을 마쳤다.


집에 오는 길에 원어민 선생님의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어떻게 그걸 못 알아 들었지?

어떻게 그걸 못 알아 들었지?

어떻게.....


3년 전 인가..

아이가 하는 화상영어 수업이 재미있어 보였다.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반년 정도 하다 실천에 옮겼다.

레벨테스트를 마치고 선생님이 배정되었다. 첫 수업시간에 I like와 I don't like를 배웠다.

'이게 진짜 내 영어 위치구나!'

욕심내지 않았지만 잘하고는 싶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의욕은 가득하다!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오프라인 영어힉원을 등록했다.

매일 문제집도 풀고, 시간 날 때마다 영어 유튜브도 챙겨 본다.

그 결과!!!!!!

간단한 질문도 못 알아듣고 있다. 아직도!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지려 했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현관문을 열 때까지 심호흡을 했다.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랄까.. 아마 요즘 힘들었던 게 한꺼번에 밀려온 게 아닌가 싶다.

금단 현상처럼 끊었던 그게 생각났다.

영어 유튜브에게 자리를 비켜준 그것.

지금 이 기분을 달래줄 바로 그것.

발라드!

멜론을 켜고 발라드 TOP100에서 전체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분들 목소리에 둘러싸여 하염없이 울었다.


입에서 맴도는 노래가 있는데 아무 노력해도 제목도 가수도 떠오르지 않았다.

가수가 두 글자 이름이었던 거 같다.

수오? 검색해 보니 아니다.

수호? 이분도 아니네. 서호, 서오 다 해봤는데 아니다.

너무 답답하고 그 노래가 너무 듣고 싶어 폭풍검색을 했다. 알아내고 말았다.

주호- 내가 아니라도

한때, 이 노래가 너무 좋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는데 머릿속에서 이렇게 지워지다니.

그리고 나는 이런 머리로 공부를 하겠다고 덤비고 있으니!

어이가 없고 진짜 안쓰러웠다.

용량 부족인지 모터 불량인지 모르겠는데 사는 날까지 내가 고생 좀 해야겠다.


나의 머리가 고퀄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더 열심히 해야지 뭐.

어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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