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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희 Jun 19. 2024

할 수 있는 게 줄어드는 이놈의 나이

부모님과 함께 소노벨 비발디파크에 갔다.

출발하기 며칠 전 부모님을 위한 첫 래시가드를 구입했다.

"이 디자인은 어때? 이거랑 이거 중에 골라봐 봐."

"이게 이쁘긴 한데.. 하루 입자고 뭘 그걸 사냐."

"사놓으면 바다에 가서 입고 계곡에 가서 입고 나물 캐러 갈 때도 입으면 되지." 하며 재빠르게 주문 버튼 눌렀다.

래시가드가 배송된 날, 엄마와 아빠는 사이즈가 잘 맞는 거 같다며 착용샷까지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주셨다.

이렇게 좋아할 거면서 왜 그러는 거야. 어른들의 화법은~ 참~알다가도 모르겠다.


 엄마는 수영을 30년 넘게 하셨다. 젊을 때는 친구들하고 바다 수영도 가고 그랬는데 이제는 안전한 센터에서만 수영하신다.

내 기억 속 엄마아빠는 도전 정신이 있는 분들인데 자꾸 가라앉는 것 같아 짠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워터파크를 한 번도 안 가봤다는 엄마아빠의 말을 듣고 올해는 산, 바다, 계곡이 아닌 워터파크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오션월드에 입장하자마자 야외로 야외 풀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뭐니뭐니 해도 워터슬라이드는 꼭 타야한다.

빨간색은 벌써 대기시간이 너무 길어서 그나마 짧은 파란색에 줄을 섰다. 앞으로 차근차근 오르고 있을 때였다.

직원이 부모님을 보더니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엄마가 당황한 듯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 놀란 눈을 한 내가 물었다

"혹시 이거 나이제한이 있어요?"

속으로 '설마설마 나이제한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왜 물어보지?' 하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니요. 나이제한 없어요."라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단!  65세 이상 되시는 분들은 서류에 싸인 하나 해주셔야 해요." 하며 안쪽에서 클립보드에 고정된 서류를 가져왔다.

정신이 없어서 잘 읽어보지도 못했지만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기면 업체에서는 책임지지 않을 거야~' 머 이런 내용이었다.

시설 이용하려면 서명해야만 했기에 쓰라는 거 쓰고 사인하라는 곳에 사인했다.

그러고 나서 부모님 손목에 띠를 둘러주었다.  손목 띠는 '나 서류에 사인했어요~두번 묻지 마세요.'하는 표식이다.

튜브 타는 유수풀에 들어갈 때도 나이를 물어보길래 당당하게 팔을 쭉 펴서 손목띠를 보여줬더니 "네 들어가세요" 했다.


처음, 직원이 서류에 사인하라고 할 때, 부모님 앞에서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사인하면 되지~"라며 웃었다.

하지만 '이거 이렇게 위험한 건가? 내가 부모님한테 위험한 행동을 권하는 건가?' 하며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아빠 앞이라서 티를 못 냈지만 내 속은 너덜너덜 했다는 사실은 눈치 못 채셨겠지?


더 충격적인 일은 다음날 일어났다.

선선한 바람맞으며 소노벨 안에 있는 곤돌라는 타고 양떼목장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 선명하게 보이는 루지!

"어! 우리 루지타자!"

"그게 먼데?"

"저기 보이는 저거. 무동력이라서 그냥 방향키만 조절하면 되는 거야. 출발 전에 어떻게 어떻게 하라고 다 알려줘~ 초등학생들도 혼자 타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

신이 난 나는 투스텝으로 매표소까지 뛰어갔다. 그리곤 매표소 앞에서 딱 굳어버렸다.

65세 이상 탑승불가

어제 워터슬라이드는 양반이었네. 루지 아예 타지도 못하잖아?!


나이가 들수록 강제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줄어드는구나.

야속한 나이는 안 먹고 싶어도 강제적으로 매년 한살씩 먹어야 한다.  하루라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더 많이 모시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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