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외국인이 서 있었다. 하하하 멋쩍은 웃음과 함께 고개를 숙이며 "하이"라고 했다.
방송에서 영어로 멋지게 말하는 모습은 '멋있지만 나는 할 수 없는'그런 먼 나라 이야기였다.
3년 전인가, 아이가 원어민 화상영어를 시작했다. 수업하는 방 앞을 지나면 선생님과 아이의 수업 소리는 고스란히 들렸다. 그 소리에 왜 내가 설레는지 나도 저 대화에 참여하고 싶었다.
아이가 하는 원어민 화상영어수업을 보며 자극받은 나는 영어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외국 맥도널드 갔을 때 원하는 햄버거를 먹을 수는 있어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럴 일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우선 시작이라도 해보자 했다.
화상수업을 시작한 첫날이었다.
와... 진짜 입이 안 떨어졌다. 그냥 우물우물하며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꿀 먹은 벙어리가 이런 모습인가 싶었고 그게 나였다.
처음 만난 선생님이 (이름이 잘 생각이 안 나지만) 참 친절했다.
I like.. 아이 라이크.. I don't like.. 아이 돈 라이크..
처음에는 '뭐야 나 이 정도는 아닌데.. 너무 낮게 시작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그게 나한테 맞는 레벨이었다. 선생님이 정확했다! 땡큐.
내가 수업시간을 변경해야 하는 일이 생겼고 가능하면 지금 선생님을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업체에서는 그건 어려울 것 같다고 했고, 몇 개월 동안 정이 들었던 선생님과는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끝이 나나 싶었다.
그런데 그녀에게서 쪽지가 왔다.
[사실은 내가 몇 달 전에 사직서를 냈어요. 새로운 수업을 받지 배정받지 않아서 소희는 이곳에서 남은 유일한 학생이었어요. I won't say goodbye to you, maybe in the future we could meet again. Who knows.. ]
선생님의 쪽지를 번역할 수 있는 실력이 아니었던 나는 구글 번역기의 힘을 빌려 그녀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일이 영어를 공부를 위한 자극제가 되기도 했다.
그 후로 만난 선생님도 좋은 분들이었고 지금은 Mishel과 정기적으로 화상대화를 한다.
15분, 수업시작 전에는 매번 하기 싫고, 도망가고 싶고, 긴장된다. 나름 복습도 하지만 봐도 봐도 모르겠다.
또 다른 언어를 배우는 건 참으로 어렵다.
우연히 가까운 문화센터에 원어민 수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초급반 0명
중급반 0명 -> 레벨테스트 필수
작은 희망을 품어보았다. '나름 1년 정도 영어 공부했으니 혹시 중급에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믿고 끝도 없이 레벨테스트를 신청했다.
11월 0일 0시에 3층 영어교실에서 레벨테스트가 있습니다.
나름 예상문제를 뽑아 거울을 앞에서 면접인 양 대답도 해보았다.
비장한 각오로 영어교실 앞에 서서 '똑똑똑'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눈앞에 외국인이 서 있었다. 하하하 멋쩍은 웃음과 함께 고개를 숙이며 "하이"라고 했다.
선생님이 몇 가지 질문을 왔고 나는 더듬더듬했다. 나름 대답을 잘한 것 같기도 했다.
(정확히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한 대답도 기억은 안 난다.)
선생님은 마지막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웨얼 두 유 립?"
립? 리브? 떠나? 갑자기 어딜 떠나, 나 어디로 떠나냐고?
당황한 나는 얼굴뿐 아니라 귀 끝까지 빨개졌고 생각은 멈추었고 귀는 막혔다.
"오.. 아이 돈 언덜스탠드."
나는 보았다. 선생님의 고개가 미세하게 가로로 젓는 모습을.
친절한 선생님은 초급을 들으라는 이야기를 좋게 돌려 말해주셨지만 난 그것도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했다.
나를 위해 (한국말을 못하는) 선생님이 더듬더듬 "초급에서 시작하면 언제든 중급으로 올라갈 수 있어"라고 했다. 교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나의 모습에 찐으로 헛웃음이 났다. 난 나를 너무 몰랐다.
집에 와서 아이에게 물었다.
"웨얼 두유 리브가 뭐야?"
"어디 사냐고- where do you live?"
그래? 왜 live가 라이브가 아니고 리브냐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