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왜 [재밌는 생각]
나는 프랑스로 어학연수와 워킹홀리데이를 가기 위해 준비 중이다.
그래서 요즘 틈틈이 불어를 공부하고 있다.
어느 날, 불어의 ‘왜?’에 해당하는 pourquoi를 접하다가 생각이 깊어지는 순간이 있었다.
가만히 보니 pourquoi는 pour + quoi로 이루어져 있었다.
pour는 영어의 for,
quoi는 what에 해당한다.
직역하면 ‘무엇을 위해(for what)’, 혹은 ‘무엇 때문에’ 정도로 느껴졌다.
우리는 보통 왜라는 질문을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라는 의미로도 쓴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엔 그냥 동의어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이 둘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었다.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라고 물을 때,
질문의 방향이 눈에 보이는 이유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 내가 진짜 느끼는 감정 쪽으로 꺾이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이성은 감정을 합리화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나도 이 생각에 꽤 동의하는 편이다.
감정이 먼저 간다.
그리고 이미 결정된 감정을 실행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이성이 나중에 이유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내 삶을 돌아봤을 때는 그랬다.
그렇다면 우리의 많은 행동은
결국 감정이라는 핵심과,
그 감정을 지지하고 포장하는 이성적인 이유가 함께 엮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선 예시를 다시 가져와 보자.
나는 허전함과 공허함이라는 핵심 감정 위에
“보상이 필요해, 이 정도면 뭐 하나쯤 먹어도 되지”라는 생각을 덮어씌웠다.
“보상이 없다.”
“일주일간 고생했다.”
“오늘은 좀 힘들었다.”
이런 말들은 이성적으로 들리는 이유들이다.
반면,
“해방감을 느끼고 싶다.”
“즐거움을 허가해주고 싶다.”
“허전하고 공허한 마음을 채우고 싶다.”(나의 경우 음식이 보상회로와 강하게 연결되어있다)
이쪽은 핵심 감정에 더 가깝다.
아주 단순화하면, 이렇게 나눌 수 있다.
핵심 감정(감정),
그 감정을 채우거나 정당화하기 위해 붙이는 이유(이성).
정교하게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려면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pourquoi,
즉 “무엇 때문에 / 무엇을 위해”라는 질문법이 도움이 되었다.
내 경험상, 그냥 “왜?”라고 물을 때는
너무 넓은 그물망이 한꺼번에 펼쳐진다.
상황 설명, 남 탓, 환경, 조건, 습관, 과거 사건, 여러 감정…
모든 것이 뒤섞여서 걸려 올라온다.
반면 이렇게 물어보면 느낌이 다르다.
“아, 내가 뭐 때문에 이렇게 하고 있지?”
“내가 뭘 위해 이걸 붙들고 있지?”
질문의 방향이 바깥이 아니라,
내 쪽으로, 내 욕망과 감정 쪽으로 향한다.
내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려 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약간의 틱을 가지고 있었다.
이 틱은 내가 불안해지거나 압박을 받을 때 심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불안하다”는 감정을 잘 자각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비교적 최근까지도,
틱 증상이 심해졌을 때 도대체 왜 그런지 감을 잡지 못하곤 했다.
어느 날 그런 일이 있었다.
틱이 심해지던 날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불안할 이유도,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도 없는 날이었다.
기분 좋은 휴일이었고,
늦게 일어나 근처 카페에 가서 책도 읽고, 맛있는 디저트도 먹으며
나만의 시간을 보내려는 계획이었다.
실제로 몇 주 동안 그렇게 지내는 게 “나의 새로운 주말 루틴”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유독 틱 증상이 심했다.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집에서 나가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이러지? 왜 이러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순간 짜증이 폭발하듯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아, 뭐 때문에 이러냐고!”
그런데 그 순간,
마치 누가 내 질문에 답이라도 해주듯
내 안에서 한 문장이 튀어나왔다.
“아, 할 게 너무 많다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 문장을 곱씹었다.
“할 게 너무 많다”는 말은,
감정을 둘러싼 이성의 문장이었다.
그 아래에는
압박감, 답답함, 스트레스 같은 핵심 감정이 있었다.
나는 내 시간을 “즐긴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주말을 생산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날 내가 하려던 일들을 떠올려보니 이랬다.
씻고 버스를 타고,
집중이 잘 될 것 같은 카페에 가서 공부를 하고,
책을 조금 읽고,
비전 보드를 만들고,
언어 공부를 좀 하고…
맛있는 디저트와 함께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건 내게 너무 많은 할 일이었고, 내 템포와 맞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며 바쁘게 살다가
에너지를 다 소모해 번아웃이 온 적이 있다.
3개월 동안 정말 시체처럼 지낸 끝에야 깨달았다.
나는 많은 활동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 아니며,
아무리 많아도 프로젝트는 한 번에 두 개가 내 맥시멈이라는 것.
그런데 쉬는 날조차
“생산적인 나만의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또 하나의 프로젝트 꾸러미를 들고 있었던 셈이다.
그날 나는 가방을 열고, 안에 있는 것을 전부 꺼냈다.
책 한 권만 남겨두고 말이다.
“오늘은 그냥 이 책만 조금 읽고, 편하게 쉬다 오자.”
그렇게 마음을 바꾼 뒤, 카페에서 책을 읽는 동안
틱 증상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제안해보고 싶다.
가끔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다.
“내가 뭐 때문에 이러고 있지?”
“내가 무엇을 위해 이걸 하려고 하지?”
문장은 상황에 맞게 만들면 된다.
내가 뭐 때문에 이렇게 화를 내지?
내가 무엇을 위해 이 관계를 붙들고 있지?
내가 뭐 때문에 이 일을 계속 붙잡고 있지?
그렇게 물어보면,
너무 넓게 펼쳐진 ‘왜’라는 그물 대신,
핵심 감정 쪽을 향하는 낚싯대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러면 감정을 감싼 이유를 발견하게 되거나,
운이 좋다면 바로 그 밑바닥에 있는 핵심 감정에 닿을 수도 있다.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지금의 나를 조금 더 정확히 이해하고,
조금 더 나와 잘 맞는 선택을 해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