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방향이 잡히려면

나는 무얼 더 소중히 여기나 [삶]

by 서 희

가치관은 지나간 경험 위에 세워지고, 다가올 경험에 의해 언제든 다시 수정된다. 허물고 다시 세우는 반복, 그게 삶이다. 그러니 내겐 다가올 경험과 사색할 여유만 있으면 된다.


육식위주의 식습관이 나을까, 채식위주의 식습관이 나을까. 한동안 나는 “더 나은 식습관”을 두고 머릿속에서만 씨름하고 있었다. 목적은 체중 감량이었다. 그때 자주 보던 유투브채널에 저속노화로 유명하신 정희원 선생님이 함께 출연한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지금 돌아보면, 그 영상이 나에게는 가치관이라는 숙제를 마칠 마지막 퍼즐 조각이었다.


사실 그 이전에도 힌트는 있었다. 대학 시절, 선택을 잘 못 하던 나에게 철학 교수님이 이렇게 조언해주신 적이 있다. “넌 가치관이라는 기준이 없으니까 선택을 못 하는 거야.” 너무 정론이라 바로 수긍했다. ‘맞아, 이제라도 가치관을 제대로 세워야겠다.’ 그렇게 다짐까지 했는데, 머리로만 알아들은 상태였다.


나는 여전히 우유부단했다. 선택의 순간마다 각 선택지가 주는 ‘장점’을 끝없이 비교만 했다.(나 나름대로 가치판단을 하는 중이었다)


어떤 것도 압도적으로 우세하지 않았고, 비교를 위해 끌어온 부차적인 가치들만 머릿속에서 꼬리를 물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그러다 그 ‘마지막 조각’이 되어준 영상을 보게 된 것이다.


영상 말미에 정희원 선생님과 서울대병원 완화의료를 담당하시는 유신혜 교수가 나눈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은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요지는 이랬다. 중증 환자라 해도 “수명을 1일이라도 더 연장하고 싶은지”,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떠나고 싶은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따라 치료 방향을 스스로 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정작 자신의 가치를 깊이 생각해본 사람이 드물다는 얘기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예전에 철학 교수님이 했던 말이 처음으로 ‘마음’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 나는 내가 추구할 가치들의 우선순위를 정해본 적이 없었구나. 그저 각 선택지가 주는 가치만을 저울질 하려했구나.’ 그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만의 가치관을 정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우선 ‘가치’라는 단어부터 다시 정의해보았다. 왠지 ‘가치’라고 하면 어린왕자에 나올 법한, 눈에 보이지 않는 고귀한 무엇이어야 할 것 같지 않은가. 검색과 AI의 도움을 빌려 살펴보니, 삶에서 말하는 가치는 결국 보이지 않는 쪽에 가까웠다. 보이는 것들의 이유를 끝까지 파고들면 마지막에는 늘 보이지 않는 것이 남기 때문이다.


드디어 “여러 가치들 사이의 우선순위”가 정해졌다. 그러자 나는 비로소 갈림길에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을 알게 되자 방향은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물론, 한 번 정한 가치관이 영원히 그대로일 필요는 없다. 새로운 경험과 인지가 들어올 때마다 나는 내 가치관을 조금씩 고쳐 쓴다. 내 가치의 우선순위를 알고, 그에 맞추어 살아보려 애쓰다가, 새로운 경험으로 다시 수정하는 과정. 그 반복이, 일상이 되는것. 그것이 단단한 삶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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