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거의 브레인. 아르민에게 배우다

결정한다는 건 [애니에서 배우다]

by 서 희

뒤에 가서 "이렇게 해야 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간단해.
– 아르민 알레르토,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中


이 대사를 본 순간, 나는 바로 노트를 꺼냈다. 애니는 일시정지되었고, 내 머릿속의 다른 생각들 역시 멈췄다. 오로지 이 한 문장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인생을 ‘과정’과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 둘에 대해서도 언젠가 따로 다뤄볼 예정이다.) 그리고 이 대사는, 내게 그 생각을 다른 언어로 다시 들려주는 말처럼 느껴졌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가 내 방식대로 해석한 것일지라도.


작중에서 아르민과 동료들은 엘빈 단장의 작전에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에 따른 불안이 커져 가며,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던 때였다. 그때 아르민이 말한다.


결과를 안 뒤에 선택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어.
뒤에 가서 "이렇게 해야 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간단해.
하지만 선택하기 전에 결과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잖아?

저 거인의 정체는 누구인가. 몇 명 있는가. 뭘 할 수 있는가.
무얼 알고 있나. 무엇이 밝혀졌는가.

모른다고. 언제나 모르는 것 투성이야.
하지만 시간은 흘러가고, 멈춰서 있어 주지 않아.

결과를 모르는데, 선택할 시간은 반드시 찾아와.


이 짧은 독백은, 사실 삶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처럼 들린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과 미래에 대한 예측을 바탕으로 삶을 그려 나간다. 매 순간이 선택이고, 선택에는 늘 책임이 따른다. 책임, 즉 행동은 언제나 현재에서만 일어난다. 그래서 많은 가르침이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라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과정을 결정이라고 본다)

현재는 순식간에 과거가 되고, 우리가 상상하던 미래는 어느새 눈앞의 현재가 된다. 그 현재마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내리고, 그 선택에는 다시 책임이 따라붙는다. 선택과 책임의 순환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 삶이다. 우리는 미래의 결과를 알지 못한다. 다만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향해,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 움직일 뿐이다.


니체는 몇 번이고 돌아오더라도 긍정할 수 있는 삶을 이야기한다. 과거와 현재는 느슨하게든, 강하게든 서로 얽혀 있다고 본다.

나에게 이 말은, 선택과 결과의 결부됨과 그로 인한 고통과 기쁨 모두를 긍정하는 태도로 비쳤다.


그래서 아르민의 말은 내게 아주 니체적으로 들렸다.

“결과를 알고 나서 과거의 선택을 탓하는 것은 쉽지만, 우리에게 그 순간의 선택은 결국 그때의 최선이다.”라는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엘빈 단장은 그 모든 책임을 떠안고서도 그 순간 자신이 믿는 최선의 선택을 내린 것이다. 설령 그 결과가 전멸일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다행히도 전멸까지 가는 선택을 할 일은 없다. 그렇기에 ‘이렇게 했어야 했다’라는 생각이 들 때, 그것을 나 자신과 남을 탓하는 재료로 삼기보다는 다음 선택을 위한 피드백으로만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인생은 계속 진행되는 과정이고, 우리가 말하는 ‘결과’는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새로운 과정의 일부가 된다. 멈춰 선 지점이라고 믿었던 곳이, 사실은 또 다른 출발점이었던 것처럼 드러나곤 한다.


그래서 나는, 선택에 대해 끝없이 후회하며 자신과 타인을 탓하는 시간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동사’로 보는 태도, 삶을 진행형으로 보는 태도는 우리를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반대로 삶을 어떤 ‘명사’의 상태로 정의하고 마침표를 찍어버리는 태도는 우리를 그 자리에 묶어둔다.


살아 있는 존재에게 완전히 멈춰 있다는 것은, 어쩌면 죽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과를 모르는 채로 찾아오는 선택의 순간마다, 그 순간의 나에게 진심인 선택을 하고, 나중에 돌아봤을 때 그 선택을 “그때의 나에겐 최선이었다”라고 인정해주는 것. 그리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매 순간 선택인 우리의 삶을 계속 책임져가는 결정의 태도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