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특별한 놀이터, 장마 속 어린시절 이야기

비오는 날 가장 떠오르는 장면

by 정담

생활에 쫓겨 돌아볼 틈 없었는데
문득 어린 시절의 어느 장면이 떠올라
나를 웃게 한다.


나는 딸만 셋인 집의 둘째였다.


엄마는 세 아이의 하교 시간을 모두 챙길 수 없어
아침마다 날씨 예보를 확인하며
우리에게 스스로 우산을 챙기게 했다.


갑작스러운 비에는 잠시 피했다가
그치면 오라 하셨다.


그래서 나는 비 오는 날이
그리 반갑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우산을 들고
교실 앞이나 건물 앞에 서서 기다리곤 했는데,
나는 언제나 혼자이거나 친구와 함께였다.


친구 엄마가 데리러 오는 모습이 무척 부러웠다.


그게 마치 ‘사랑받는 증표’처럼 보였고
나는 그걸 받지 못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나에게만 오지 않은게 아니었지만
어린 마음에는 그러했다.



그런 어느 여름날,
서울임에도 불구하고 빗물이 넘쳐
학교 운동장이 작은 수영장이 되어버렸다.


당시 국민학교였던 학교는
우리를 서둘러 귀가시켰고,
며칠 동안 학교에 갈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살던 집은 가락시장 옆
5층짜리 작은 아파트였다.


부엌 옆에는 지하 쓰레기장으로 연결된
작은 투입구가 있었는데,


계속되는 비와 하수구 범람으로
지하가 차오르더니
결국 1층 계단 밑까지 물이 가득 찼다.


우리 집은 3층이라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1층에 살던 아주머니는
집 안까지 물이 들어올까 노심초사하고 계셨다.



지금 생각하면 큰 재난이었지만,
당시 나는 달랐다.


동네 아이들과 함께
물에 잠긴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가
주차장 앞을 거닐고,


물 위를 헤엄치며 마냥 즐거워했다.


헬리콥터가 머리 위를 날며 뉴스를 보도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감전사 소식이 전해졌지만
어린 나에겐 그저 특별한 놀이터일 뿐이었다.


지하에서 쥐가 대피하듯 올라왔다가
우리가 꺅 소리를 지르자
도망도 못 가고 얼어 있던 모습.


지금 생각하면 똥물 속에서 논 것이고
피부에도 좋지 않았을 텐데,
그때는 그저 신나고 웃겼다.


엄마는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감전사,
피부병 이야기에 속을 끓이셨을 테지만,
나는 엄마를 걱정시키는 장난꾸러기 딸이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자연스레 엄마 생각이 났다.


국민학교 시절의 엉뚱한 추억 속에도
늘 엄마가 있었다.


그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엄마의 목소리는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비가 와 몸이 쑤셔
약을 먹고 낮 내내 주무셨다 했다.


나는 어린 날의 추억에 젖어 전화를 했는데,
엄마의 이야기에 문득 현실로 돌아왔다.



그래, 이제 아프실 나이시지.


비 오는 날이면 관절이 쑤시고,
몸이 무거워지는 나이.


평생 출산과 육아,
가정을 위해 본인을 뒤로 미루며 살아오신 엄마.


여자는 그렇게
조금씩 사그라드는 꽃처럼
세월 앞에 져 간다.


내가 엄마의 엄마였다면,

다른 무엇보다 스스로를 더 사랑하고

위하라고 조언했을 텐데.


하지만 나는 엄마의 딸일 뿐이고,
딸 셋 중 가장 먼저 결혼해
엄마와 가장 가까운 삶을 살고 있기에
그 마음을 조금 더 헤아릴 뿐이다.


그러다 보면
나 역시 엄마를 닮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도,
피할 수 없이 닮아가는 모습이 참 아이러니하다.



어릴 적 웃지 못할 추억 속에도,
오늘 이 순간에도,
엄마는 늘 내 곁에 계신다.


그리고 나는 바란다.


훗날 이 기억을 다시 꺼내어 웃을 수 있는
그 순간까지도,
엄마가 계속 함께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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