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녀봉 아래 그 관대한 홀과의 첫 경험

형님과 함께한 백마강 변 파크골프 입문기

by 윤석구

[옥녀봉 아래 그 관대한 홀과의 첫 경험]
* 형님과 함께한 백마강 변 파크골프 입문기

사내에게 처음이란 언제나 팽팽한 긴장감이다. 특히 그것이 아늑한 구멍을 정복해야 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골퍼들에게 108mm는 지독한 번뇌의 숫자다. 그 좁고 예민한 틈을 파고들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던가. 그런데 오늘 고향 백마강 변 옥녀봉 앞 파크골프장의 홀컵은 그보다 훨씬 크고 관대한 입을 벌린 채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고향집 반호정사에 들러 부모님 선영에 성묘를 마친 뒤였다. 모교 독후감 대회 시상식 전 한 시간 남짓한 자투리 시간 자상한 형님은 나를 백마강 변으로 이끄셨다. 형님은 내게 채를 쥐여주며 오늘 여기서 제대로 머리 한번 올려보자고 웃으셨다. 금세 허락될 것 같은 그 넉넉한 지름을 앞에 두고 나는 생애 첫 경험을 앞둔 소년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옥녀봉의 품은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형님은 노련한 숙련자답게 그 깊은 곳으로 공을 부드럽게 빨아들였으나 나의 첫 도전은 비참할 정도로 서툴렀다. 첫 홀의 굴욕적인 쪼루와 두 번째 샷의 외도는 마치 낯선 존재 앞에 선 입문자가 치르는 혹독한 통과의례 같았다. 구멍은 활짝 열려 있었으나 내 마음의 각도가 그 깊이를 감당하지 못해 자꾸만 겉돌았다.


초겨울 날씨였지만 첫 경험의 긴장감이 빚어낸 땀방울이 눈을 가릴 때쯤 다섯 번째 홀에서 첫 파의 순간이 찾아왔다. 비로소 나의 샷이 옥녀의 넉넉한 품에 육중하게 안긴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공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형님이 예비해 둔 노후의 안식처에 내가 비로소 발을 디딘 짜릿한 환희였다.


나인홀을 마칠 때쯤 형님은 첫 경험을 마친 동생의 어깨를 툭 치며 귀한 말씀을 건네셨다. 파크골프는 혼자 잘 치는 운동이 아니라 배우자와 함께 호흡하며 노후의 정을 나누는 길이라는 말씀이었다. 자투리 시간을 내어 입문을 권유하신 형님의 속 깊은 철학은 108mm의 집착에서 벗어나 인생의 더 넓고 관대한 즐거움을 알길 바라는 형님만의 은밀하고도 깊은 사랑이었다.
옥녀봉 아래서 형님께 머리를 올린 이 유쾌 상쾌 통쾌한 기운은 그대로 내 마음의 온기가 되었다.

이 따뜻한 기운을 안고 달려간 모교 독후감 시상식장 팽나무 언덕의 100주년 강당에 들어서니 45년 후배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나를 반겼다. 비로소 내가 오늘 해야 할 일이 선명해졌다. 형님께 받은 그 넉넉한 사랑을 이제는 후배들에게 전할 차례였다.

백마강의 강바람을 뚫고 달려온 산타 선배의 가방에는 상장보다 더 값진 인생의 즐거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을 171회에 걸쳐 세상에 전하고 이거 해봤어 정주영 회장님의 경영철학을 후학들과 나누는 지금 나는 오늘 인생 이막의 가장 황홀한 문을 열었다. 행주산성 아래 한강 변에도 이런 낙원이 생기길 소망하며...

2025년 12월 23일
옥녀봉 아래에서
울 언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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