笠岩(입암)의 새벽이 빚은 1,040번의 옥돌, 108

1040호 토요편지 20주년 기념 헌사

by 윤석구

[笠岩(입암)의 새벽이 빚은 1,040번의 옥돌, 108번의 열반으로 피어나다]

​- 1040호 토요편지 20주년 기념 헌사 -

​어제 라페스타 경성레코드의 낮은 조명 아래 모인 77명의 영혼은 단순한 축하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20년이라는 긴 세월, 박영희라는 한 거목(巨木)이 뿌려놓은 인문학의 향기를 맡고 모여든 이 시대의 가장 맑은 지성들이었습니다. 성장인문학을 사랑하는 선남선녀들의 눈빛 속에서, 우리는 한 스승을 향한 최애(最愛)의 진심이 어떻게 격조 높은 풍경이 되는지를 목격했습니다.


​동국대학교 필동 교정에서의 8년, 그리고 일산 캠퍼스에서의 또 다른 12년.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한결같은 온도로 인문학의 촛불을 밝힌 것은 인간의 의지를 넘어선, 가히 신성(神聖)에 닿아 있는 집념이었습니다. 어제 우리가 확인한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정신처럼, 미치지 않고서는 도달할 수 없는 그 길을 교수님은 묵묵히 걸어오셨습니다.

​이에, 성장인문학 토요편지 1,040호라는 전무후무한 금자탑을 쌓아 올리시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정제한 108편의 시집 『둘, 그리고 하나 더』를 정성껏 펴내신 이 경이로운 성취를 진심으로 경하(慶賀) 드립니다.

​고향 입암(笠岩)의 언덕에서 불어오는 영험한 정기 속에서, 그리고 새벽녘 호수공원을 거닐며 퍼득이는 영감을 붙잡으려 교수님은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우셨을까요. 일필휘지(一筆揮之)로 내려간 문장조차 독자의 카톡에 닿기 전까지 수만 번 깎이고 씻겨 나갔습니다. 1,040호라는 숫자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전송 버튼을 누른 후 밀려오는 후회와 연민조차 희열로 승화시킨 20년의 고결한 약속이자 인문학적 고행의 산물입니다.

​이번에 엄선된 108가지의 시와 그 곁을 지키는 정성스러운 습작노트는 박영희 교수님만이 걸어온 인생의 주옥같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녹아든 결정체입니다. 골프공이 운명처럼 빨려 들어가야 하는 108mm의 좁은 구멍처럼, 교수님은 생의 번뜩이는 깨달음을 그토록 예리한 시의 문장 속에 갈무리하셨습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108 번뇌가 곧 열반(涅槃)으로 가는 길이듯, 엄선된 108편의 시어들은 이제 우리 삶의 허기를 채워주는 영혼의 만찬이 될 것입니다.
​특히 시집 곳곳에 녹아 있는 가려운 등을 긁어주는 그 다정한 고백들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우리는 짐작합니다. 10대 가수 출신의 품격 있는 예술가이자 교수님의 가장 가까운 반려이신 선우혜경 여사님의 따스한 손길은, 토요편지가 1,040번의 기적을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등불이었습니다. 두 분이 서로를 향해 쏟으시는 그 지극한 헌신과 사랑이 마치 하나의 악보처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느낍니다. 부디 그 깊은 속정(情)과 하늘이 맺어준 연(緣)을 잘 받드셔서, 앞으로도 행복의 날개를 훨훨 펼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하늘나라에 가기 전까지 멈추지 않겠다는 그 시퍼런 다짐, 최고의 기록보다 끝까지 가는 마음을 보여주고 싶다 하신 장수의 기개 앞에서 우리는 다시금 옷깃을 여밉니다. 이제 1,040호의 편지는 108편의 시가 되어 천사의 날개를 달고 세상으로 퍼져 나갑니다. 10년 후의 1,560호를 지나, 교수님의 편지가 108년의 역사가 되는 그날까지, 우리는 그 옥돌 같은 문장들을 가슴에 품고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빛을 만들어내는 연습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좋은 글이란, 한순간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이미 낯익은 것이기 때문에 만나면 그렇게 반가운 것입니다. 어쩜 내 마음과 생각을 이렇게 속 시원하게 표현했을까? 하는 글을 읽게 될 때 감동은 배가됩니다. 이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따뜻한 햇살이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해밀 조미하 작가의 이 고백처럼, 교수님의 1,040통의 편지는 저희에게 늘 속 시원한 반가움이었고 따뜻한 햇살이었습니다. 20년의 위대한 여정, 그 깊은 헌신에 다시 한번 깊은 존경과 경하의 마음을 올립니다.

​2025년 12월 21일. 꽃우물에서
교수님의 애제자 skyoon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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