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에
설날 고향집 삼의당 마루에 앉아...<좌충우돌 인생2막 85호. 2026.2.19>
딸에겐 ‘도리’ 며느리에겐 ‘휴식’… 이 이중적인 마음
명절이 다가오면 설렘보다 불안이 앞선다. 휴대폰 화면에 딸과 아들의 메시지 알림이 뜰 때마다 혹여 ‘이번 설에도 해외 갑니다’라는 소식일까 가슴이 철렁한다.
명절 풍경은 이미 변했다. 제사와 성묘가 있던 자리를 공항의 긴 줄과 해외 휴양지가 채운 지 오래다.
출가한 둘째 딸의 연락을 먼저 받았다. 시댁에는 일주일 먼저 가서 인사를 드릴 테니, 명절 당일에는 해외여행을 갈 수 있게 공항에서 차를 좀 맡아달라는 부탁이었다. 미리 만나 손주 녀석 재롱도 보고 세뱃돈도 챙겨주었지만, 돌아서는 마음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사돈댁 어르신들은 어쩌고 또 해외란 말이냐". 참다못해 “시집갔으면 기본 도리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뿔난 이모티콘과 함께 훈계 섞인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곧이어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아들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아빠, 저희 이번 설에 해외 갑니다.” 조상님 산소에 성묘 가자고 전화를 하려던 참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 손가락은 마음과 다르게 움직였다. “그래, 좋은 계획이구나. 직장 다니느라 고생하는 며느리 푹 쉬다 오렴.”
딸에게는 엄격한 유교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며느리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시아버지를 자처하는 이 이중적인 태도.
사돈댁에 죄인 된 기분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쿨한 시부모’ 소리를 듣고 싶어 전전긍긍하는 이 모순된 감정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꽃우물 공원을 걸으며 차가운 겨울 공기에 마음을 식혀본다. 전통의 가치와 변화하는 시대의 실리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모두 ‘낀 세대’로서 고군분투 중이다.
내 딸이 남의 집 귀한 며느리임을 알면서도, 내 집 며느리가 혹여나 서운함을 느낄까 눈치를 보는 이 마음은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이번 설에도 공항은 붐비고 집안은 적막할지 모른다. 하지만 변화하는 시대 흐름 속에서 서운함보다는 서로의 휴식을 빌려주는 것이 이 시대의 새로운 도리가 아닐까.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빈 하늘을 바라보며 자문해 본다. “이 이중적인 마음, 저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2026.2.14 인천공항에서 귀가길 일기장을
2월 18일 오후 2시 선영에서 성묘를 마치고,
250년된 고향집 삼의당 마루에 앉아
일본에서 두바이에서 가족 톡방에 보낸 아이들 사진을 검색하고
백마강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