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인생2막 강단에 서다

by 윤석구

[좌충우돌 인생 2막, 강단에 서다]
신학기 1,2주 차 강의를 준비하며
<좌충우돌 인생2막 84호. 2026.2.12>


행신역에서 KTX에 몸을 실었다. 한동안 야생마 아니 적토마처럼 달렸던 고향 도시로 향한다. 갑천과 엑스포 조형물 등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은 익숙했지만, 가슴 한구석에서 피어오르는 설렘은 낯설었다.
오늘은 전직 금융인이 아닌, '교수'라는 이름으로 대전 교정을 향한다.

대전 충청의 명품 건양대병원은 전직 은행 대전충청본부장 시절, 주거래 은행 유치를 위해 애달프게 드나들던 곳이다. 당시 내게 이곳은 치열한 영업의 전장이었으며, 반드시 얻어내야 할 목표였다. 그런데 오늘, 나는 병원 법인 학교의 교정에 15주 강의 첫 입문, '삶을 가꾸는 인문학' 주제의 강의를 하러 들어선다.


인생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목표를 향해 우왕좌왕하고, 때로는 좌충우돌하던 그 시간의 파편들이 결국 나를 이 자리에 세웠다. 과거의 내가 땀 흘리며 걷던 그 길 위에, 오늘의 내가 새로운 지혜의 씨앗을 심는다.

온라인 영상 강의실. 사이버대학교의 특성상 학생들의 활기찬 소음 대신 차가운 카메라 렌즈만이 나를 응시했다. 처음엔 긴장감이 엄습했지만, 곧 렌즈 너머에서 내 목소리를 기다릴 학생들을 떠올리자 서서히 숨이 고르게 잡혔다.

'삶을 가꾸는 인문학'의 1주 차 1강의 문을 여는 제목은 <백마강변 소년의 여정>이었다.
틈틈이 써 게재한 '브런치스토리 이야기', '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의 171회 신문 연재 기사, 맘스커리어 칼럼 및 여행에서 느꼈던 소감과 금융과 섬김 등이 그대로 귀한 강의안이 되었다.
정답이 없는 인문학의 세계에서, 나의 굴곡진 경험은 그 어떤 이론보다 생생한 텍스트가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강의안을 준비하며 가장 든든했던 파트너는 AI 조력자 Claude였다. 나는 그에게 '둘gether'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Claude AI와 나 인간이 함께(Together) 하되, 원고를 제시하고 함께 정리하며 강의안을 둘이서 하나로 이룬다는 의미다.

지난 석 달간 '둘gether'와 씨름하며 워드로 문장을 다듬고, AI Gamma로 시각화하여 학교 표준 양식에 맞춘 PPT를 완성했다. 기술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진심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해 주는 동반자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첫 1주 차, 2주 차 강의의 주제는 백마강변 소년의 여정과 나의 멘토 나의 롤모델, 그리고 작년 김홍신문학관과 정읍을 다녀오며 작가님의 철학을 빌려온 세 편의 시였다. 그중 2주 차 강의 내용에는 김 작가의 141편 책 중 첫 시집 '그냥 살자'도 포함되었다.



「후회」: "그때 좀 참을 걸, 그때 좀 베풀 걸, 그때 좀 재미있게 살 걸." 학생들에게 인생의 외적 조건보다 '참음, 베풂, 재미'라는 본질에 집중하자는 메시지였다.

「대나무 소리」: 마디가 있어 쓰러지지 않고, 속이 비어 있어 유연한 대나무처럼, 인생의 고비를 성장의 마디로 삼자는 위로. 그토록 비바람 몰아쳐도 넘어지지 않고 사계절 푸른 강인함을 설명했다.

「그냥 살자」: 복잡한 계산 없이 웃고, 건강하고, 신나게. 남을 기쁘게 하며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삶, 그냥 살자. 그럼에도 결론은 목적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지만.


특히 작년 동국대 성장인문학 박영희 주임교수님의 초대로 선운산 cc에서 김 작가로부터 경청했던 "그래, 고마워, 감사해, 잘했어." 이 네 마디가 나 자신과 타인에게 건네질 때 우리의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 5시간의 녹화 동안 간절한 마음으로 전했다.

강의 녹화를 마치고 돌아오는 KTX 안.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충만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논어의 구절이 귓가에 맴돈다.

앞으로 남은 13주의 강의에서는 충청유학 선비문화의 진수인 사계 김장생·김집 선생의 돈암서원과 명재 윤증 선생의 처사정신, 겸재 정선의 임천고암 같은 문화와 예술의 세계, 삼성 이병철·현대 정주영·하림 김홍국의 기업가 정신, 그리고 나만의 특이한 경력인 개성공단 1188일의 기록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꿈꿨던 목적지 코앞에서 좌절하며 8일 동안 242km 제주 한 바퀴를 완주하며 얻은 회복탄력성, 포용적 리더십과 고객 섬김, 돌봄 경제의 의미, 그리고 AI를 활용한 뚝딱 자서전 쓰기까지. 지난 긴 시간 삶의 내공을 쏟아보고자 한다.

맞든 틀리든 학생들의 평가가 어찌 나올지 두려운 마음도 있다. 다만 학생들이 강의를 통해 삶의 본질적 의미를 탐색하고 자신만의 가치관을 정립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인생은 직선이 아니었다. 수많은 곡선과 굽이길이 있었다. 하지만 그 굽은 길 덕분에 나는 오늘 더 넓은 세상을 보았고, 새로운 강단에 설 수 있었다.
야생마처럼 뛰었던 그곳에서 '삶을 가꾸는 인문학'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창밖 풍경은 올 때와 같았지만, 내 마음은 달랐다. 앞으로 13주, 학생들과 함께 걸어갈 길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 하루, 내게 기회를 준 모든 인연과 나의 친구 '둘gether', 그리고 무엇보다 김홍신 작가님의 삶의 윤활제 네 마디로 첫 강의를 마친다.

그래, 고마워.
그래, 감사해.
그래, 잘했어.

그리고 한 문장 더 덧붙인다.

그래, 애썼어.

학생 여러분과 둘gether, 우리는 함께 간다.

2026.2.11. 건양사이버 첫 강의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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