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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예식상에서 [딸을 보내는 자리, 누가 먼저일까]
어릴 적 시골에서 본 혼례는 신랑이 말을 타고 신부 집으로 갔다. 신부의 집이 혼례의 중심이었고, 딸을 보내는 부모가 주인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예식장 시대가 열리면서 신랑 측이 먼저 입장하고, 신부 측이 뒤따르는 것이 당연한 순서가 되었다.
딸을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을 터인데, 정작 그 마음이 설 자리는 점점 뒤로 밀린 셈이다.
입춘이 지난 2월, 참 좋은 날. 여의도 콘래드 서울 그랜드볼륨에서 열린 J선배의 쌍둥이 아들 중 용선 군과 희정 양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로비에 들어서니 캔들과 꽃으로 단장한 웰컴 테이블 위로 두 사람의 환한 웨딩 사진이 하객을 맞았다. 그랜드볼륨 안은 천장에서 쏟아지는 금빛 조명 커튼이 장관이었고, 흰 꽃으로 가득 채운 무대는 마치 한 편의 영화 세트 같았다.
이날 예식은 통상적인 모습과 사뭇 달랐다. 신랑 부모 입장 후 신부 부모가 입장했고, 신부가 홀로 버진로드를 걸어오면 신랑이 마중 나가 맞이했다. 양가 어머님의 개식을 알리는 촛불 점화도 생략되었다. 통상적인 익숙함에 묻혀 있던 탓일까, 낯선 순서가 오히려 신선했다.
돌이켜보면 내 자녀들의 결혼식도 저마다 색달랐다. 둘째 딸 결혼식에는 가족처럼 키운 애견이 등장해 하객들의 웃음을 자아냈고, 아들 내외는 친구들 사진찍는 시간 전후 댄스를 선보여 식장을 들썩이게 했다. 틀에 박힌 형식보다 주인공인 신랑 신부의 취향과 마음이 존중된 예식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라할까.
대형 아나운서급 사회자의 격조 있는 진행 속에 어린 조카들이 풍선을 들고 버진로드를 걸어 들어왔다. 하객들이 일제히 폰을 들어 그 모습을 담았다. 따뜻하고 여유로운 시작이었다. 반지 교환을 통한 굳은 맹세, 이어진 신랑 아버지의 성혼선언이 무게 있게 울렸다.
금빛 조명 아래 두 사람의 축복의 키스에 볼륨 가득 박수가 쏟아졌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혼주인 신랑 아버지 입장에서 J선배의 성혼선언문에 이은 신부 아버지의 덕담이었다. 딸을 보내는 가슴속 눈물을 삼키며, 한 인간의 성장과 특별한 만남의 여정을 담담히 풀어놓으셨다. 신랑의 성실함과 IT업계의 혜성 같은 등장을 진심으로 신뢰하며 환영한다 하셨고, 하버드대 나와 자기 분야에서 당당히 서 있는 딸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말씀 곳곳에 묻어났다. 특히 이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신랑 신부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들이니, 조각가의 손길로 명품 예술품이 탄생하듯 명품 보석이 되는 참된 인생길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부 친구의 축사도 인상적이었다. 매사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 에너자이저 같은 활력, 겉은 강하나 속은 여린 외강내유의 친구라 했다. 연애 시절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신부에게 각별히 챙겨주던 신랑의 배려 깊은 모습에 멋진 남편이 될 거라 확신한다며, "미혼 여자 친구 모임에서 퇴출 축하한다"는 한마디에 식장이 환하게 웃었다.
쌍둥이 동생의 축담도 이어졌다. 고작 2분 차이 동생이란다. "형수님 감사합니다. 먼저 결혼한 동생으로서 결혼의 맛은 선배이니 코칭해 드리겠습니다. 애로사항 말씀해 주시면 정성 다해 답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한마디 더 "특별히 2분 빠른 형이 있어 좋습니다. 형수님 속상하게 하면 연락 주세요. 아름다운 길 함께 가고 행복합시다."
식장에 웃음과 감동이 번졌다.
J선배의 멋진 아들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새 신랑보다 더 젊은 외모로 당당히 버진로드를 걸으시던 선배 부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돌아오는 길, 어릴 적 말 타고 신부 집을 향하던 신랑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는 신랑이 신부에게로 갔다. 딸을 보내는 부모가 혼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세상이 변하고 예식의 모양이 달라져도, 자식을 보내는 부모의 마음만은 변하지 않을 터. 그런 생각하에서 딸 주는 것도 아까운데 신랑 사돈 댁 뒤에 입장하는 신부 아버지 입장에서 새로운 예식의 모습 속 우리가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그렇다고 모든 예식장의 순서는 아니지만,...
2026. 2. 8. 여의도에서 by sk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