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북한 땅 개성공단을 향한 첫걸음 (3)

by 윤석구

[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 미지의 북한 땅 개성공단을 향한 첫걸음 (3)


"우리은행, 우리 민족끼리, 우리끼리 그렇게 잘해봅시다"


도라산전망대 판문점 부근 지형도


1953년 한국전쟁 휴전 협정으로 설정된 군사분계선(MDL)은 남북한을 물리적으로 가르는 중요한 경계이다. 남북 각각 2km 내외에 설정된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을 따라, 2004년 10월 28일 오전 10시 개성공단으로 향하던 버스는 자랑스러운 국군 호송 지프차의 호위를 받으며 MDL 인근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국군 지프차는 경의선 출입국사무소 인근 부대로 돌아갔고, 이제 경험 많은 버스 기사가 직접 MDL을 통과했다.


눈 깜짝할 찰나, 소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 불리는 북한 땅, 미지의 세계로 들어섰다. 그저 TV로만 보던 북한 땅을 직접 마주한 것이다. 사방을 둘러보니 우측 2시 방향, 판문점에서 그리 멀지 않아 보이는 곳에 100여 미터 높이의 대한민국 태극기가 드높이 펄럭이고 있었다. 순간, 이곳이 과연 대한민국인가 싶어 허벅지를 꼬집는 사이, 태극기와 비슷한 높이에서 인공기가 저 멀리 펄럭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민족, 같은 선조, 같은 땅임에도 불과 1~2km 사이에 철책이라는 선으로 땅이 갈리고,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가 마주 보며 경쟁하듯 펄럭이고 있는 현실을 그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너무도 경직된 긴장 속에서 두 국기를 바라보며 버스는 북방한계선을 막 지나 멈춰 섰다. 이내 북한 군인 두 명이 버스로 올랐다.
북한 땅에서의 첫 경험은 잊을 수 없는 긴장의 순간이었다.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마르고 다부진 체격의 전형적인 북한 군인은 권총이 있는 듯 오른쪽 호주머니를 툭툭 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 버스 중간까지 들어왔다. 그는 개성공단 방문객인 버스 탑승인원수를 확인하고 차량 내부를 위아래로 살폈다. 순간 머리끝이 쭈뼛 서고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긴장 탓에 준비해 간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7~8분여 더 북쪽으로 향하던 버스는 다시 정차했고, 가방을 들고 컨테이너로 만든 임시 출입사무소(북측 CIQ)를 통과하며 북한 세관원의 검색을 받았다. 특히 신문 등 이상한 물건이 있는지 가방 구석구석을 꼼꼼히 확인하는 모습에서 묘한 불쾌감이 들었지만, 그들의 업무 수행으로 이해했다.
이렇게 겹겹의 검색을 받아야 하는 곳이 내가 근무할 지역이라는 의문 속에서, 5분여 더 이동하자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 건물과 부속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개성공단 개발을 이끌어갈 초기 시설물로,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 건물을 중심으로 은행, 임시 병원, 편의점 및 강당과 식당, 숙소 등 스티로폼 패널로 만든 임시 건물인 가건물들이 조성되어 있었다. 또 한 번 정나미가 뚝뚝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개성공단 실질 운영을 위해 한 달 먼저 진출하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 직원들이 따뜻하게 맞이해 주어 한결 마음이 놓였다.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는 대한민국 국회에 해당하는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공포한 법률에 의거해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과 연계하여 운영되는 개성공단 개발 총괄 관리 기관이다. 농림부 차관을 역임하신 김동근 위원장님이 맡으셨고, 통일부, 국정원, 토지공사, 수출입은행, 현대아산 등 다양한 기관에서 파견된 직원들이 국제적 최고 공단이자 통일 평화 공존의 상징인 개성공단의 선구자라는 사명감으로 함께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허허벌판 산을 깎고 논을 메워 조성한 초기 100만 평 개발 중 시범단지 2만 8천 평, 15개 기업을 우선 입주시키기 위한 공장 건축 조감도의 지형 위에 대형 포클레인이 먼지를 날리며 평탄 작업을 하는 현장은 세 번째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통일 금융의 선구자로 도전하고 용기를 냈지만, 군사분계선을 통과해 북한 땅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의 느낌은 처참했다. 더구나 지점을 만들 앞산은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이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최고의 은행, 북한 진출 첫 은행의 선발자로서의 사명감이 있었다. 이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은행 영업점을 만들고 자본주의의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할 막중한 임무가 내 어깨를 짓눌렀다. 비록 임시 스티로폼 패널 건물이지만 혼신을 다할 각오를 다지며, 북한과 개성공단 개발 협약을 맺고 한국토지공사와 공동으로 100만 평 개발의 주역인 공단 북쪽 야산 언덕에 있는 현대아산 사무실을 방문해 실무진과 간단히 수인사를 나누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현대아산 임시 식당에서 북측 직원이 만든 점심으로 허기를 달랬지만, 밥이 넘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긴장한 채 물 한 모금 더 마시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비록 허허벌판의 다이내믹한 공단 토지 조성과 임시 건물이었지만, 자유대한민국 최고(最古)인 우리은행의 진면목을 보여줄 영업점 인테리어를 어떻게 해야 할지 스케치하며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개성공단에 들어올 때와 반대로 북측 세관 검사를 다시 받았다. 들어올 때 신상을 확인했던 북한 세관원이 다시 만나자 반갑다는 듯 인사를 건넸다.


"그래 윤 선생, 우리은행이 공업지구에 들어오신다고 했지요? 그 참 정말로 반갑고 이름 한 번 좋습니다. 남측 은행이지만 우리가 들어있는 우리은행, 우리 민족끼리, 우리끼리 그렇게 잘해봅시다."


가방 검색을 워낙 호되게 당해 "그래 잘해봅시다"라는 눈인사 겸 미소로 다음을 기약하고, 버스는 북한 군인 선차의 에스코트 속에 북방한계선과 군사분계선을 뒤로하며 맞이하러 나온 우리 국군 칸보이 안내하에 도라산 우리 측 출입사무소에 도착했다.


공기가 달랐다. 자유 대한민국, 자유가 무엇인지, 자유의 소중함을 불과 5시간 북녘땅에 체류하면서 절실히 느꼈다. 아아!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머릿속이 복잡했다. 시간이 흐르면 맑아질까. 임진강 강물은 말이 없다.


다음은 우리은행 개성공단지점 정식 개점식 행사로 이어진다.


※ 딩시 우리은행 개성공단지점 개설준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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