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남북금융협력사업 (6)
"가장 나를 짓눌렀던 것은 외국환 거래 문제였다" 서울에선 내국환, 군사분계선 넘으면 외국환... 기묘한 상황
개성공단 우리은행 지점 개점 소식은 우리 국민 모두에게 북한이 그리 멀지 않은 곳이며, 우리가 막연히 상상하던 '뿔 달린'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중요한 계기였다. 국내 투자 기업들이 개성공단 입주를 신청할 때 우리은행의 존재가 분명 안심이 되었을 것이다.
15개 시범 단지 중 통일 냄비를 첫 생산하겠다던 'South North Korea'에서 작명한 소노코쿠진웨어, 유압용 씰 관련 에스제이테크 유창근 회장이 밤낮없이 공장 라인 설치에 박차를 가하던 모습, 시계를 만드는 로만손 김기문 회장의 협동화 공장 등이 그 기대감을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금융의 생명은 금리, 환율, 주가와 같은 실시간 시장 정보인데, 개성공단은 국내처럼 인터넷 연결은커녕 전화선조차 없었다. 심지어 전기가 없어 12시간씩 발전기 두 대로 사무실과 숙박시설인 컨테이너 바닥 열선에 전기를 공급하며 추운 한겨울 난방을 해결해야 했다.
노트북에 은행 업무 프로그램을 설치해 부분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중에도 잦은 고장이 발생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발전기 교체에 따른 전기 차단 및 공급의 충격이 원인이었다.
업무 또한 개점휴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영업점 내 환율 고시를 위해 본사 국제부에서 현대아산 개성사무소에 넣어준 팩스를 받아 하루 한 번 고시하는 방식으로 대체했다. 주재원들의 환전 등 은행 업무 수요가 많지 않았기에, 개점 준비 과정에서 미처 마련하지 못했던 규정을 보완하고 현지 사정에 맞는 복무 지침 등 정확한 업무 처리 기준을 갖추는 데 중점을 두었다.
가장 나를 짓눌렀던 것은 외국환 거래 문제였다.
국외지점으로 인가받은 개성공단 지점은 외국환거래법에 따라 업무 처리가 되어야 했다. 문제는 특히 송금 업무에서 불거졌다. 일반적으로 개성공단 현지 법인과 국내 모기업 간 임가공비 등 해외 송금의 경우, 예치환은행(depo bank)이 송금된 자금을 클리어(clear)하여 국가 간 결제를 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개성공단은 전산망은커녕 전화선도 없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통상 해외의 경우 송금 수취은행과 코레스 계약(은행 간 업무 대행 계약)에 따라 송금 자금을 수수하는데, 실제로는 국내 모기업의 송금 자금이 거래 은행에서 내국환으로 전금 되고 현송 회사를 거쳐 현금 달러로 수수되고 있었다. 마치 같은 집 안에서 돈을 건네는데, 방을 하나 넘는 순간 갑자기 국제 송금 규정이 적용되는 격이었다.
외국환거래법상 남북 금융에 관한 지침에도 명쾌한 처리 규정이 없었다.
서울 본사의 모기업 송금 자금을 개성공단 지점으로 반입하면서, 서울에서는 내국환, 군사분계선을 넘으면서부터는 외국환 거래처럼 되는 기묘한 상황이었다. 개점 한 달이 되어가면서 의문은 점점 쌓여갔다.
어떻게 업무 처리를 해야 하나?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북한 개성공단과의 금융거래. 이 생각 저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