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천지 21세기에서 20세기의 생활로 (10)

by 윤석구

[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 '대명천지 21세기에서 20세기의 생활로' (10)


- 전기와 통신, 그리고 희망의 불빛... 한국전력 정귀동 지사장 개성 발령
- 나이팅게일의 정신처럼 적군이라도 천사의 마음을 베풀어


한국전력 정귀동 지사장과 장동진 팀장 등이 군사분계선 북측지역 전신주 설치공사를 하고 있다.


KT 정연광 지사장과 조현선 팀장, 그리고 한국전력 정귀동 지사장과 장동진 팀장 등 준공공기관 직원들이 개성공단으로 발령 후 현지상황 확인 겸해 먼저 개점한 사랑방 같은 우리 지점을 찾아와 인사를 나누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북한 땅에 전화선이 연결되고 전깃불이 환히 밝혀질 생각을 하니, 오늘 당장이라도 그 모습이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대한민국에 전깃불이 처음 밝혀진 곳은 고종이 기거했던 경복궁 건청궁으로, 1887년 3월의 일이었다. 또한 북한의 수풍발전소에서 생산된 수력발전 전력을 우리 남한까지 공급받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1948년 남한 정부의 총선에 대한 앙갚음이라 할까,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그러한 전력공급.
그런데 지금 개성공단 초기에는 전화선조차 없어서 2km 떨어진 현대아산 사무소까지 가서 환율을 팩스로 받아야 했고, 발전기 두 대로 12시간씩 교대하여 전깃불을 밝히는 상황이었다.


1월 25일이 지나, 한전 실무직원이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어제 한전 전신주가 들어왔는데, 오늘 처음으로 남북 간 군사분계선 경계 입구 북측 땅에 전신주 1본을 설치했습니다. 한전 입장에서는 근 57년 만에 역으로 대한민국 전기를 북한에 공급한다는 측면에서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온다고 합니다."


맞다. 그 심정을 왜 모르겠는가.
한전 본사 남북전력협력실 사업총괄팀 박영수 과장과 오채창 씨가 방문하여 전기요금 징수에 대해 자문을 구해왔다.
향후 전기가 실질적으로 개통되어 공급될 때 공단 내에서 어떤 방법으로 요금을 징수해야 할지, 한전은 그동안 해외에 전기를 수출한 경험이 없어 모든 것이 원화 표시로 되어 있는데, 이곳 개성공단은 회계도 달러이고 유통되는 화폐도 달러인바, 한전 자체 전산 회계 프로그램을 어떻게 변경하여 이곳에 적용해야 할지 난감한 상태라고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전했다.
개성공업지구법과 하위 규정상 달러로 각종 세금 및 공과금이 징수되고, 소위 원화나 북한 화폐는 통용 취급한다는 조항이 없기에 어렵더라도 전기 개통 전에 달러 거래로 준비해야 할 것이고, 고지서를 기업에 전달하면 각 입주 기업들은 우리은행 본인 기업 계좌에서 인출하여 한전 개성지사 계좌로 입금하면 말 그대로 수작업 계좌이체 방식으로 원만히 처리할 수 있음을 전달하고, 이왕 개통되는 전기 가장 신속히 밝은 세상에 살고 싶다고 전했다.
격주간 서울로 출경·입경하는 개성공단 주 진입로길 남북 통로에 전신주가 하나둘 늘어감을 보며 개통이 그리 멀지 않음을 느꼈다.


그런 와중에 부산의료지원단 소속 'Green Doctor'의 간이 병원이 우리 지점과 벽을 맞대고 의사 한 분과 간호사 한 분, 행정지원을 맡은 조희억 부장이 자원봉사 개념의 응급조치 수준 의료 서비스를 개시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심야에 긴급히 병원 문을 두드려 열었더니 개성 시내 어느 고위층이라는 사람이 연탄가스로 중독되어 가스 제거 의료기를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주었는데, 나중에 돌려받은 호스를 확인하니 까맣게 타 있더라는 후일담을 쉬쉬하는 상태에서 조 부장에게서 들었다.


그린닥터스 운영의 임시 간이 병원을 찾는 환자의 치료 범위는 또 어디까지인지, 국내에서 파견된 현지법인 주재원인지, 그럼에도 나이팅게일의 정신처럼 적군이라도 응급치료의 천사의 마음을 베풀어야 할지.


임시 병원 또한 가능한 북측 병원이 공단에 입소하여 남북합동병원 운영 모델로 발전한다면 좋으련만.
한 가지 한 가지 생소하고 예상해보지 않은, 경험해보지 않은 일들이 대명천지 21세기에서 20세기의 생활로 돌아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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