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 꽁꽁 마음마저 얼어붙은 한겨울, 북녘에서 하나님 말씀 위로받으며 (12)
- 몇 달 후, 이번 주 '가로목', 그다음 주에 '세로목'의 강대상에 십자가가 설치되었다.
우리은행 개성공단지점과 벽을 사이로 Green Doctors 임시병원에서 행정지원부장으로 계셨던 조희억 부장님과의 만남은 낯선 북한 땅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나에게 큰 울림이었다. 한마디로 개성공단에서의 뜻밖의 만남이었다.
당시 조희억 부장님은 현재 경상남도 김해 쌍봉교회와 광대현교회의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시고 갑장이었다. 나는 그분이 어떤 사연으로 개성공단에 오게 되었는지 묻지 않았지만, 꾸준한 사역과 선교 활동을 통해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페이스북 근황을 보니 지금은 군부대를 방문하여 사역하시고, 최근에는 캄보디아까지 다녀오시며 해외 선교까지 하시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천사 같은 분이라는 고마운 마음을 갖고 지금도 종종 안부를 나눈다.
개성공단 부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린닥터스 임시병원 내에서 병원 간호사와 주재원 중 몇몇 기독교 신자들이 수요일 저녁마다 기도 모임을 갖는다는 소식을 은밀하게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희억 부장님이 개성공단 북한 참사 특유의 말투를 빗대어 이렇게 권유했다.
"우리은행 윤 차장 선생, 종교 없습니까? 하루하루 이곳 생활에 견디기 어렵다고 하는데, 이참에 하나님 한번 믿으시지요?"
그러며 A4 한 장을 내밀었다. 매주 수요일 기도 등 목회 순서 목록이었다. 깜짝 놀란 가슴을 쓰다듬으며 "어떻게 이곳에서?" 하고 묻는 나에게 목사님은 이렇게 답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뜻이지요. 일단 다음 주 수요일 저녁 병원 안에서 함께 기도하시지요. 하나님께 기도하시면 마음이 한결 편해질 것입니다."
나는 보안을 고려해 지점 안에 김명옥 북한 직원이 있음을 윙크로 알리며 다음 기회에 참석하겠다고 말을 돌렸다. 하지만 다음 주 수요일, 결국 조희억 부장님의 손에 이끌려 병원 내 원 테이블 의자에 앉아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그다음 주말 근무 시, 구급차(남한에선 앰뷸런스라고 한다)를 타고 약 1km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어 가던 신원에벤에셀 개성법인 신축공장 주재원 숙소였다. 마룻바닥에 뺑 둘러앉은 임시로 마련된 예배당에서 나는 난생처음 북한 땅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교회를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준다고 해서 가본 적이 있고, 사촌형수님 권고로 서초동 사랑의 교회 부흥회에 서너 번 간 적이 있었다. 어머님 생전에 놀이터 삼아 다니셨던 집 근처 교회에 두 번, 그리고 아이들 지애, 지은, 여민이를 어려서 주일날 교회에 가도록 권고하고 자동차로 데려다주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 교회를 가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북한 땅 신원에벤에셀 신축공장 바닥에 앉아 조희억 부장님의 설교 말씀을 들으며 현실의 고달픔에 위로받으니,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설교 말씀을 들으니 한결 위로가 되었다.
당시 조희옥 님은 명목상 병원 행정지원부장이었지만, 본래는 목사였다. 이를 일정 시간이 흐른 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부름으로 개성공단에 사역차 부임하신 것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먼저 불안감이 앞섰다.
종교가 없는 북녘땅 개성공단에서 공장 설치보다 예배 모습이 먼저 부각된다면, 과연 북한 당국 및 이곳에 파견된 참사들이 이를 그대로 보고 있을까? 위태로운 마음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뭔가 터질 것만 같은 느낌은 북한에는 종교가 없다는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내 주를 가까이하려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십자가 찬송가 한 소절을 따라 부르고, 각자 돌아가면서 참석한 15명의 인사 소개도 있었다.
인간의 마음은 모두 똑같은 것일까? 임시 예배를 진행하시는 부장님께 나는 이곳 생활 자체가 경계가 딱 정해져 있어 짜증과 울분과 허무와 갈등으로 가득하다고 토로했다. 그 어느 것 하나 편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저만 그런가요?"
목사님과 일행들 모두 "저도 그랬어요, 저도 똑같은 마음이랍니다"라고 답했다. 하나님을 믿는 분이시니 나보다는 나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인간의 마음은 인간이기에 모두 똑같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다. 환경의 비자유가 인간을 지배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날 조희옥 목사님(명목상 행정지원부장)의 설교 말씀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는 그분의 설교를 손으로 직접 메모하며 적었다. 20년이 지난 오늘, 이렇게 기억의 글로 쓸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증오, 가시덤불, 오해, 미움, 과거... 그리고 어떤 사유에 의해 과거를 알았다 해도 그것은 과거이니, 그러한 모든 것을 용서하십시오. 늘 기쁨의 감사를 가지십시오."
목사님은 이어서 말씀하셨다.
"물론 남과 북이 분단된 현실 속에서 그린닥터스 병원을 통해 복음을 전하려는 마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런 거창한 뜻보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려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관계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마음을 다독이려 합니다."
"우리는 지금 마음 깊은 곳에서 말할 수 없는 외로움과 답답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때로는 거칠고 척박한 환경에서, 서로에 대한 경계심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요. 고향 생각이 날 때면 옛날 영화를 보며 그리움을 달래곤 합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다음과 같은 고백으로 설교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하나님, 제가 선택한 길입니다. 이 길이 비록 가시밭길이고 가로막은 철조망과 비자유의 길이라 하더라도 기쁨으로, 감사의 마음으로 지내겠습니다. 항상 감사하며 지내겠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지내겠습니다. 나와 관련되는 모든 분께 근심 없이 축복을 주도록 기도드리고 지내겠습니다."
참으로 예지적임을 느꼈다. 이 환경이 이렇게 나를 만들었다. 개성 땅에 있는 동안 격주로 서울에 나가지 않는 날, 기회가 되는 대로 두 손 모아 기도 올리겠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2005년 1월 30일, 개성의 봄을 기다리며 나는 조희옥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얼어붙었던 마음에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그의 설교는 단순히 종교적인 메시지를 넘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감사와 기쁨을 잃지 않는 삶의 태도를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 달 후, 이번 주 가로목, 그다음 주에 세로목의 강대상에 십자가가 설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