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 동지, 그리고 선생 (14)

by 윤석구

[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 동무, 동지, 그리고 선생 (14)


김명옥 씨 하면 시큰둥...김명옥 동무하면 '싱글벙글'


선생의 뜻, 이념이나 계급과 관계없이 상대방을 존중하는 의미


남측 윤 차장 선생(좌) vs 북측 윤 참사 선생(우) 그는 개점식날 축하아치에 개성공업지구가 아닌 개성공단 우리은행으로 표기했다고 엄청 골탕을 먹였다.



개성공단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이름 뒤에 붙는 호칭만큼 흥미로운 것도 없었다.
우리은행 개성공단지점 북측 출신 여직원 최초 입행자, 공식적 직함은 '행원 김명옥'이다. 서울 같으면 입행과 동시에 가장 말단인 주임이라고 호칭한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연수를 받은 것도 아니고, 군대 말로 하면 병적카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김명옥 행원'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했다.


'김명옥 씨'라고 하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어쩌다 그렇게 부르면 시큰둥한 표정이다. 그런데 '김명옥 동무'라고 하면? 어! 얼굴이 환해진다.


아하!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던가. 우리은행보다 먼저 문을 오픈한 현대아산이나 개성공단 관리위원회 직원들도 북측 직원을 '김 동무' 또는 '박 선생'으로 부르는 것이 점점 늘어가고 있었다. 대세를 따르는 것이 현명하겠다 싶어, 사무실 내에서는 '명옥 동무'로 호칭하는 것이 편했다.


북측 관리자들과 대화할 때는 더욱 미묘했다. '강 참사'라고 부르기엔 나이가 몇 살인지도 모르겠고, 상호주의에 입각해서 '강 참사 선생'으로 정착시켜 갔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호칭이 부드럽고 정겹게 느껴졌다.


기업에서도 '법인장 선생', '지사장 선생' 등으로 부르는 것이 눈에 띄었다. 처음엔 어색해서 혀가 꼬일 뻔했지만, 차츰 입에 붙으면서 자연스러워졌다. 마치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기분이었다.



문득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심양에서 한의학을 공부하신 조부님은 긴급환자들을 찾아 정성껏 침을 놓고 한약을 제공하셨다. 그래서 작고하실 때 부여군민들이 '용운 윤선생 덕병 선행비(龍雲 尹先生 德炳 善行碑)'를 세워드렸고, 고향 주변에서는 지금도 '용운 선생 후손'이라고 불린다. 어려서부터 '선생(先生)'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았다.

부여 군민들이 기증한 조부 龍雲 선생 선행비


남북분단 70년 동안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우리. 학교 선생님 외에는 '동무', '동지', '선생' 같은 단어가 흔하지 않은 대한민국 문화에서 자란 우리가, 북측 사람들과 어떻게 마음을 나누어야 할까?


그 해답이 바로 이런 작은 배려에서 시작되는 것 같았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 개성공단 발전의 지름길이 아닐까 싶었다.
호칭들의 사전적 의미만을 찾아보니 더욱 흥미로웠다. '동무'는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호칭으로 '사상과 뜻을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동등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부를 때 사용한다. '동지(同志)'는 '동무'보다 격이 높은 호칭으로, 당원이나 간부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연장자에게 존경의 의미를 담아 사용한다.


그런데 '선생'은?
이념이나 계급과 관계없이 상대방을 존중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선생'이라는 호칭이 개성공단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대한민국 對 조선, 남한對북한, 남측對북측(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