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 도전과 용기로 군사분계선을 넘은 날들 (18)
지난 100일간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허허벌판에 스티로폼 패널 건물을 세우고, 자본주의의 꽃인 은행 내부 인테리어는 서울의 초일류호텔보다 더 멋지게 만들자는 다짐으로 점포를 만들었다. 개점식 이틀 전에야 개점식 초대장을 북측으로부터 받으며 애간장을 녹였던 일, 개점행사 때 찬바람이 매서운 허허벌판에서 공교롭게도 같은 윤가인 북측 윤 참사와 '개성공단'이라는 대형 아치 글씨를 놓고 목소리 높여 대판 싸웠던 일, 전화가 없어 환율 자료를 받기 위해 3km 떨어진 현대아산 사무소에 하루 한 번씩 팩스를 받으러 다니던 일들이 떠올랐다.
개점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북측 관리자들인 참사들 6명과 봉동관에서 인삼주와 들쭉술, 소주 등 빈속에 40잔을 끝까지 지지 않으려고 받아 마시고 상대방들을 모두 주사(酒死)시켰지만 나 또한 3일간 죽다 살아난 일, 자가발전기로 인한 단전과 충격으로 노트북이 박살 나 자료가 몽땅 날아간 일도 있었다.
그보다 더 슬픈 것은 큰 공주 지애가 중국에서 곧바로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가면서 입국과 출국 때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격주에 집에 가면 "아빠 없는 주말은 너무 허전하니 매주 와서 함께 목욕탕 가면 안 되냐"던 막내아들의 그 말에 가슴이 미어졌던 일, 한 식구가 되었음에도 밥 한 번 함께 못 하는 북측 직원과의 아픈 사연들이 이곳 생활이었다.
특히 MDL을 통과해 북측 북방한계선에 도착하면 북측 군인의 버스 탑승과 인원 점검 시 그 무서운 눈매. 그럼에도 1월 6일이었던가, 소복이 내린 눈을 밟으며 고향 땅 하늘나라에서 잘 기도해주시고 계실 그분 엄마를 그리워하며 기도드렸던 순간들. 100일, 아니 1년은 더 된 것 같은 느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랬다. 도전과 용기, 희망과 젊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은 지 100일, 3개월 10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얼마나 힘들면, 그 얼마나 자유가 그립고, 핸드폰만 있다면 그리운 가족과 친구와 수다 떨면서 주말이면 등산 가고 산책하고 도서관 가고 맛집 가고 여행 가고 그 얼마나. 겉으로는 더 강인한 모습이지만 속으로는 더 아파하는 나도 그렇지만 점점 시들시들해지는 동료 안열 차장의 그 패기는 어디 갔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보는 사람 가슴도 무너져만 간다. 아무래도 오래가지 못할 것 같은 예감.
100일 기념식을 간단히 치르며 지난 100일간 영업성적을 살펴보니, 북측 직원 1명이 한 식구가 되었고 지난 2월 말까지 예금 35만 3천 달러, 환전 7만 8천 달러, 송금 12건 49만 7천 달러의 업무실적을 올렸다. 아직은 초라하고 밥 빌어먹는 신세지만, 수출입은행의 남북협력기금과 협조대출 협약 체결, 다기능 ID카드시스템 도입, 공금업무 수납시스템 도입을 추진해 입주 기업에게 더 나은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야심 찬 계획에 다시 힘이 솟는다.
지난해 연말 리빙아트, SJ테크 개성법인 공장 준공식에 이어 곧 부산의 신발제조기업 삼덕통상, 의류 제조기업 신원에벤에셀이 오픈식을 하며 피복전시회도 개최한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호롱불 아래서 엄마는 시보리를 짜고 아들은 새끼를 꼬던 10살 전후의 시절이 떠오른다. 하루 두 번 자가발전기 가동도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며, 전기 공급 오픈 단추를 누른 한전이 고마울 뿐이다.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