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땅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맞으며(19)

by 윤석구

[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 PD수첩 방영과 북한 땅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맞으며 (19)


현대아산의 설날 차례상, 통일냄비 생산 장면, Family Mart, SJ테크의 북한근로자 컴퓨터 교육 등 북한 직원들 일상 소개



개점 100일이 지나면서 전기가 들어오고 시범단지 주도로 가로등 불 아래 산책도 하며 여유가 생긴 때였다. 서울의 빡빡한 일상과 비교하면 퇴근 후 갈 곳이 없기에 시간적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마침 2월 중순, MBC PD수첩이 개성 시내와 개성공단을 찾아와 촬영한 내용이 방영되었다.


이즈음 개성공단에서 즐겨 보던 드라마는 '영웅시대'였다. 약 30년 전 정주영 회장이 경부고속도로 건설 현장을 지휘하는 장면이 방영되었는데, 마치 회장님이 살아계셔서 이곳을 지휘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개성공단 또한 회장님의 부친이 소 한 마리 판돈으로 고향 통천에서 시작된 것이 계기였다. 그리고 회장님은 몇십 년 후 1001마리 소 떼를 몰고 판문점을 거쳐 북측에 전달하면서 남북 경제협력사업이 시작된 것이었다.


하늘나라에서 이곳의 성공적인 발전을 지켜보고 계시리라 생각하며 PD수첩을 시청했다.


PD는 촬영 시 우리 지점과 북측 근로자 업무 모습도 스케치했다. 지점의 KPI 목표 계약서에 우리은행 개성공단지점 홍보 강화도 주요 점수인 만큼, 연초 첫날 경향신문 보도에 이어 중요한 역할 중 하나였다. 내용이 어떻게 방영될지 무척 궁금했다. 드디어 방영 시간, 눈을 크게 뜨고 시청했다. 20년이 지난 그날의 시청 소감을 일기장에서 발췌한다.


우리은행 개성공단지점


"드디어 PD수첩 '개성을 가다'가 시작되었다. 현대아산의 설날 차례상, 통일냄비 생산 장면, Family Mart, SJ테크의 북측 근로자 컴퓨터 교육 등 북측 직원들까지 우리의 일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우리은행 간판이 먼저 보이고 환율 표시와 함께 내 얼굴도 나온다. PD는 이곳에 은행이 있다는 것과 북측 근로자와 함께 영업하는 모습이 참으로 신기하다고 멘트한다."


TV는 김명옥 행원 얼굴과 왼쪽 가슴 위 김일성 주석 휘장을 클로즈업했다. 평소 함께 근무하는 명옥 동무가 대한민국 MBC PD수첩 방송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북측 직원의 역할 질문에 "현재는 환전 위주지만, 기업 및 주재원이 증가하면 외환수출입 및 대출업무도 직무를 부여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TV 속 내 말솜씨가 어눌했지만, 자랑스러운 우리은행 로고와 간판이 선명하게 비춰 애행심의 홍보는 확실히 된 것 같았다.


공단 전체 모습은 황량한 벌판이지만,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 개성 시내 설 풍경 및 민속마을 식사 등 4박 5일간 깊이 있게 촬영했다고 생각되었다. 나름 개성공단을 매개로 남북관계의 경제협력개선 의도가 커 보였지만, 그런데도 조심스러운 생각이지만 "남측 CIQ에서 10분이면 도착한다"는 아나운서 멘트는 북측 군인의 인원 점검, 북측 세관원의 검색 등을 고려하면 다소 과장된 표현인 듯했다.


가장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등 공단 발전 방향에 대한 질문에 "뭐니 뭐니 해도 전기 개통에 이어 은행의 경우 특히 온라인 전용선과 인터넷이 수반된 통신이 급선무입니다"라는 답변이 어느 정도나 반영될지 궁금했다.


TV를 통한 북녘땅 내 모습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출입·경의 어려움과 북한 핵무기 문제로 어수선한 시기에 PD수첩 그날의 방송 프로그램이 긴장 완화와 개성공단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랬다. 은행 로고와 북측 직원과 함께 근무하는 작은 통일금융 공간, 두 번의 인터뷰로 홍보 효과는 충분했다. 2005년 지점 업무 계획 중 "우리은행 홍보 강화" 일차적 목표 한 가지는 완수한 셈이었다. 밤 12시 10분 PD수첩이 종영되면서 깊은 시름에 잠겼다.


대한민국 TV에 비친 북측 직원 김명옥 행원, 분명 북한의 보위부 등 평양에서 시청하고 평가할 터인데 특히 김 동무 신상에는 괜찮을지 걱정도 앞서는 마음뿐이었다. 창문 밖 저녁 무렵 이슬비가 눈송이로 변했다. 북한 땅에서 맞는 깊은 밤 하얀 눈, 착잡한 마음뿐이었다. 이 모두 내 탓인 것을...


필자 당시 현지 근무자

작가의 이전글도전과 용기로 군사분계선을 넘은 날들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