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 "젊은 남자와 여자 입맞춤 애정 행위 등 이상한 장면 때문에 당황" (20)
은행 객장 및 공공시설 웬만한 곳은 거의 설치되어 있듯 우리은행 개성공단지점 사무실에도 고객용 PDP TV가 설치되어 있었다.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는 고객의 기다림과 지루함을 위한 목적이 클 것으로 생각되지만, 개성공단에서의 TV 뉴스는 어찌 보면 유사시 긴급으로 개성을 탈출해야 할 최긴급의 정보소통망 역할이 더 크게 작용함을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더욱 크게 느끼기 시작했다.
서울에서야 신문, 방송, 카톡, 인터넷으로 PC 화면만 켜놓으면 실시간으로 속보 뉴스가 팍팍 튀어나오지 않는가? 정보가 넘쳐 주체를 못하는 환경에서 생활한 우리 주재원들인데, 이곳에서는 건물 외부에 설치한 접시 안테나에 의존된 TV 뉴스뿐이었다.
따지고 보면 스팟스팟 뉴스 속에 특히나 남북 관련 뉴스는 귀를 더 쫑긋 세웠다. 출근하여 제일 먼저 on 스위치를 켜는 것도 YTN 뉴스였고, 어찌 보면 가장 가깝고 소중한 친구가 되어버렸다. 그러한 TV 뉴스로 위안을 삼고 있는데, 김명옥 동무가 인상을 쓰면서도 매우 고민 끝에 청을 했다. 제안이자 부탁이자 요청이었다.
"윤 차장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네 말씀하세요. 업무 잘 안되는 일 있어요, 아니면 무슨 일 있나요."
"저는 윤 차장 선생님한테 많은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늘 여러 가지 가르쳐주심에 항상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출퇴근 버스 기사와 관리위원회 남측 관리자 선생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는데, 평소 총화(대화)를 하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가 이러한 말을 윤 차장 선생님께 드리는 것은 모두 이해하여 주시리라 믿고 한 말씀 올립니다."
아마도 어떤 일이 벌어지기 전에 논의 협의 보고 즉 북측 말로 총화를 하자는 깊은 뜻이 있음을 느꼈다.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네요. 얼른 말씀하세요."
"왜 우리 은행 지점에 관리위원회 소속 북측 노력(근로자)들이 오지 않는 이유 아세요? 사진기사, 버스기사, 전화교환원 장미씨, 패밀리마트 봉사원인 은심, 복순씨들 말이에요."
"글쎄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요. 우리은행 지점의 주요 고객은 이곳 남측 기업과 주재원들인데 북측 근로자들이 남측처럼 통장으로 월급이 입금되어 인출하러 오는 것도 아니고 또한 우리 지점의 업무 대상과 범위도 설명 드린 것 같은데 그분들이 여기 와서 업무 볼일 있나요?"
일부러 어떤 말을 할지 에둘러 기선을 제압했다.
"남측 기업과 주재원들이 고객인 줄은 다 알지요. 하지만 가끔은 이웃집 마실 갈 일도 있잖아요. 에고, 무슨 말을 못하겠네요. 우리 측 노력들이 남측 은행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와 다르게 자본주의 은행 업무에 대해 궁금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솔직히 저 혼자 있잖아요."
"맞아요. 그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가요, 돌리지 말고 말해 보세요."
"며칠 전 MBC 방송 촬영할 때도 PD 선생이 함께 촬영에 응해달라고 할 때, 선생님이 저한테 요청도 하셔서 솔직히 윤 차장 선생님 체면 때문에 응했는데 무척 당황했어요. 제가 드리고 싶은 요지는 저를 조금 생각해주신다면 근무시간 중에 TV를 꺼주세요? 강력히 부탁드립니다."
TV 방송을 꺼달라는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리고 이어서 하는 말이,
"동유럽 중 국가가 망한 나라가 있는데 어느 나라인 줄 아세요?"
"글쎄, 잘 모르겠네요. 어느 나라죠?"
"다 잘 아시면서, 그건 그렇고 제가 TV 속에 나오는 민망한 장면 때문에 얼마나 많이 속으로 당황한 줄 아세요?"
"우리 공화국과 관련된 특히 남측 TV 보도 내용, 그리고 남측은 왜 그렇게 사건 사고는 많은지, 특히 젊은 남자와 여자 입맞춤 애정 행위 등 이상한 장면 때문에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문화가 한번 개방되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회주의입니다."
"TV 내용 중 좋지 않은 장면도, 보기 민망한 장면도 정말 말도 못하고 곤란해 죽겠어요. YTN인가 그건 또 왜 매시간마다 똑같은 보도, 지금부터 저 없는 점심 시간인 12시경이나 저녁 퇴근 후 8시에 보셔도 되지 않습네까?"
"한 가지 물어봅시다. 북측에서는 명옥 동무 만한 결혼 적령기 남녀들이 서로 사귀고 연애하고 결혼 안합니까?"
너무도 단호한 그의 TV 꺼달라는 요구에 일단은 화제를 살짝 돌렸다.
"윤 차장 선생님. 물론 우리 젊은 사람들도 당연히 만나지요. 하지만 남측처럼 대놓고 하지는 않지요. 말 돌리지 마시고 다른 말씀 하지 마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