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 통일금융가족 북측직원 김명옥 동무의 請 (21)
TV 방송을 꺼달라는 목소리는 단호했다. 이어서 하는 말이 더욱 놀라웠다.
왜 이리도 좁은 20평 공간에서도 남과 북이 따로 따로 고민을 해야 하는지
"이산가족, 남북 분단의 현실이 남의 일이 아니었다"
"동유럽 중 국가가 망한 나라가 있는데 어느 나라인 줄 아세요?"
김명옥 동무는 계속해서 자신의 불편함을 토로했다. 우리 공화국 관련 남측 TV 보도 내용은 물론, 남측의 각종 사건사고, 젊은 남녀의 애정 행위 등 이상한 장면들 때문에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더 중요한 것은 문화가 한 번 개방되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회주의입니다."
그녀는 눈은 보고 귀는 들으라고 화면을 아무리 안 보려 해도 고개를 숙이다가도 힐끔 고개가 돌아가 정말 곤란하다며, YTN 같은 방송이 매시간 같은 내용을 연달아 보도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어쨌든 지금부터 저 없는 점심시간 12시경이나 저녁 퇴근 후 8시에 보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김 동무, 한 가지 물어봅시다. 북측에서는 명옥 동무만 한 결혼 적령기 남녀들이 서로 사귀고 연애하고 결혼 안 합니까?"
"윤 차장 선생님. 물론 우리 젊은 사람들도 당연히 만나지요. 하지만 남측처럼 대놓고 하지는 않지요. 말 돌리지 마시고 다른 말씀 하지 마시요."
'대놓고 안 하면 어떻게 합니까?'라는 반문이 입에 맴돌았지만, 그녀의 주장에 나름 이해가 되었다.
얼굴 한 번 보지 않은 부부가 된 옛 어르신들처럼 백여 일을 함께 생활했다. 김명옥 북측 행원이 우리은행 개성공단 지점의 한 직원이 될 때부터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많은 생각을 해보았지만, 작심하고 대놓고 요청하는 상황에서는 헛기침만 서너 번 할 뿐이었다.
TV를 꺼달라는 사유를 거침없이 주장하는 24살 처녀. 외부 세상과 단절된 그들의 문화, 오직 당과 수령의 말씀에 따라 지금까지 배우며 성장했을 김명옥 동무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함을 두 눈으로 똑바로 보았다. 이런저런 사연을 말하며 단호히 TV를 꺼달라는 요청에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 당황한 것은 오히려 나 자신이었다.
"앗 김 동무, 그렇겠군요. 그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래요. 지금 당장 내가 끄겠다, 앞으로 켜지 않겠다 등의 답변을 할 수는 없지만, 명옥 동무가 어려워하는 점을 충분히 이해했고요.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요, 지금 답변 주세요. 윤 선생님은 맺고 끊음과 결론이 분명하시잖아요. 그런 모습 제가 선생님과 남측 은행에 근무하면서 느낀 진짜 멋진 모습이었거든요. 제 입장 생각해 주세요. 꼭 부탁드립니다."
생각보다 더 완고했다. 어찌 보면 서울 갔으면 신나게 데이트할 대학교 4학년 생의 모습인데, 북측의 근로자가 무방비 상태로 남측 문화를 모두 간접으로 접하고 있으니 얼마나 감당하기 어려웠을까.
북한 인구 2천5백만여 명 중 유일하게 대한민국의 속살을 여과 없이 다 보고 느낀 김명옥 행원. 그녀는 행운아인지 불행아인지, 염려스러운 마음이 점점 깊어진다.
어떤 방법이 좋을까? TV를 켜지 않겠다 남측 뉴스 시청 않겠다 할 수도 없다. 은행은 주가, 환율, 금리 등 금융시장 동향이 생명이기에 반드시 TV 뉴스가 필요하다고 그동안 이야기해 왔지만, 보고 듣지 않아도 익숙함에서 멀어져서 그렇지 불편하긴 해도 견딜 수도 있지 아닐까?
왜 이리도 좁은 20평 공간에서도 남과 북이 따로따로 고민을 해야 하는지. 이산가족, 남북 분단의 현실이 남의 일이 아니었다.
국내에서 지점을 방문하신 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체제 문제, 문화 문제, 개성공단 남북 협력 사업의 순항 예상 등이 대두되는데, 명옥 동무가 들을까 봐 목소리도 작아지는 이 슬픔, 이 환경이 점점 싫어진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주말이 편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