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중구로 출근한다.

by 윤석구


[다시, 중구로 출근한다] <좌충우돌 인생2막 90호. 2026.3.26>



목련 만발 터지는 축복 속, 백수 3년 3일 만에 물론 시외이사 직은 있었지만 다시 넥타이를 맨다. 서울 중구를 벗어나지 못할 운명인가 보다.


사회생활의 첫발은 숭례문 태평로 삼성본관이었다. 군 복무를 마친 후 서울역 앞 봉래동, 서소문, 을지로의 일선 영업점을 누비며 중구 땅에 깊게 뿌리를 내렸다. 대리 승진하며 반드시 지방을 다녀와야 한다는 인사 지침으로 1년 반 김포로 나갔던 시간을 제외하고, 소공동 한일은행 본점, 회현동 우리은행 본부, 명동의 우리종합금융 시절까지. 도합 중구에서만 22년 5개월. 군 복무와 북한 개성공단, 대전충청 2년 등을 빼면 내 사회생활의 3분의 2 이상이 이곳 서울시 중구 태평로·을지로·소공로의 길목마다 땀방울로 새겨져 있다.


그 긴 세월이 내게 남긴 보물은 단골 맛집들이다. 주로 중구 일대이지만, 발길 닿는 곳마다 정이 쌓인 집들이다.


첫째는 남대문 시장 안 막내회집이다. 주인장의 성실함과 농촌스러운 인정미가 뚝뚝 묻어나는 곳이다. 가끔 안부 전화가 먼저 온다. "백수일 텐데 지나가다 들러서 광어회 한 점에 미역국, 소주 석 잔만 마시고 가라"는 그 투박한 정이 눈물겹게 고맙다.


둘째는 동대문 초당집이다. 살짝 삭힌 홍어와 싱싱한 민어회가 일품이지만, 이 집이 각별한 건 그 이름 때문이다. 본당(本堂) 입문에 실패한 낙방생들이 푸념을 털어놓다가 "아예 우리끼리 당을 만들자" 하여 지은 모임 이름 草黨이 바로 이 집 이름 초당(草堂)의 그 근원이다. 낙방의 쓴잔을 나누던 그 시절의 애착이 서려 있다.


셋째는 명동 퍼시픽호텔 뒤편 골목 안 삼미옥이다. 청국장과 간장게장이 일품인 이곳은 80년대 영화관 뒷골목 정취가 여전하다. 초임 지점장 시절 펀드와 적금 가입 부탁에 선뜻 두 가지 상품을 들어주며 직원들 앞에서 내 기를 세워주었던 은인의 집이다. 주인장은 바뀌었어도 내 마음은 여전히 일편단심이다.


넷째는 광화문 곰솔집이다. 무순에 곱게 삭은 쌈장, 살짝 데친 시래기는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깊은 맛이다. 돌아보니 단골집이 중구 언저리에만 있는 건 아니지만, 내 미각의 지도가 내가 걸어온 직장 지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삼일빌딩 맞은편 SIGNATURE TOWER


병오년(2026년) 3월 20일, 좌충우돌 인생 2막 3년 3일 만에 새 명함이 생겼다. 다시 넥타이를 매고 출근할 곳이 생긴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곳이었다. 그간 금융경력답게 그 연의 2금융권 회사였다.


따지고 보면 공기업 공모에 서너 차례 도전했지만 임시주총 상정 되었다는 소식 후 밤새 뒤바꾼곳도, 복수 후보에까지 올랐으나 역시 마지막에서 미끄러진 경험도 있었다.


야마가 살짝 돌 뻔했다. 야마()가 돌면 지축이 흔들리는 법이니. "두 번 다시 공모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절로 나왔다. 그랬기에 이번 인연이 더욱 각별하다. 하늘이 때를 알고 내려준 단감은 아닐지.


설레는 첫 출근길, 광화문 광장 앞 하차 후 청계천 광통교 아래에서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격했다. 눈부신 햇살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커다란 황금 바위가 나를 반기는 게 아닌가. 덥석 그 금덩이를 들어 올리는 모션속에 호탕하게 웃어보았다. 버들피리 새순 돋는 춘삼월 봄날, 대지가 내게 건네는 축복이자 앞으로 펼쳐질 나날에 대한 길조 라 생각하니 발걸음이 가벼웠다.


점심에는 직원들과 함께 진짜 맛집 이남장으로 향했다. 새 사무실에서 불과 117m, 30년 전 실적 압박에 시달리던 행원 시절 나를 구해준 곳이다.


그 시절 본사 마케팅부서는 예금 즉 수신 확대 독려로 일선 직원들을 들볶았다. 인사고과에 반영되니 유치를 못하면 마이너스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카드를 꺼내 들고 떠올린 곳이 딱 하나, 이남장 사장님이었다.


삼행시로 운을 뗐다.
"이, 세상 최고로 아름다우신 사장님,
남, 자보다 더 장하고 훌륭하신 사장님,
장, 래 미래 꿈나무 소인한테 적금 한 것만 적선해주세요. 250만 원 3년 불입하면 1억 됩니다!"


사장님의 대답은 기대를 훌쩍 넘었다.
"미래 은행장감 Y계장님, 겨우 250만 원이요? 펀드도 맞추고, 6개월 2억, 1년 3억짜리 정기예금까지 확 다 해줄게요!"


앗싸. 호박덩어리가 넝쿨째 굴러들어온 것이다. 천사 중의 천사셨다. 1995년 삼풍백화점 참사 당시, 소방관과 구조대원, 자원봉사자들에게 조건 없이 국밥을 내어주셨던 그 사장님의 인품은 지금도 식당 벽에 걸린 1995년 9월 6일 자 감사 표창장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물론 종종 이남장의 설렁탕 맛을 보았지만
30년 만에 다시 마주한 이남장의 그 국물은 세월을 비껴간 듯 더욱 깊고 진하고 묵직했다. 국수 사리까리 추가하며 고인이 되신 그 회장님 생각 벽에 걸린 그 표창장을 바라보니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졌다. 수육에 소주잔이 간절했지만, 새 명함의 무게를 생각하며 기분 좋게 그 유혹을 참아냈다.
대신 그 시절 사장님이 건네주셨던 뜨거운 격려를 한 그릇 가득 비워냈다.



다시, 서울시내 한복판 아니 대한민국의 중심 서울시 중구로 출근한다. 익숙한 거리를 걷고, 깊은 정과 사연들을 되새기며, 황금 같은 기회를 품에 안는 것. 신세졌던 추억이 서린 맛집들, 다시 넥타이를 매는 동안 한두 번은 신세 갚으러 갈 생각이다.


좌충우돌 인생 2막, 다시 동여맨 넥타이 그 첫걸음에 황금덩어리 가득하길 소망한다.


2026년 3월 20일, 병오년 첫 출근날에
청계천에서 by skyoon


Ps. 남대문 막내회집도..

남대문 150m 인근 막내회집 김선자 사장님의 그 고운정 늘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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