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개성공단 업무 과정의 시행착오들 (24)

by 윤석구

[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 업무 정착 과정의 시행착오들 (24)


잔액 관리 방식에서 때로 의견 차이..조율 과정에서 스트레스
개성공단에서 은행 업무를 개척해가는 과정의 성장통이라 느껴


2005년 봄, 개성공단 우리은행 지점은 어느 정도 업무가 안정되어 가는 듯했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울 본사 영업부 Depo A/C라 할 수 있는 지점 명의 잔액과 지점의 재무상태표(B/S)상 예금 잔액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은행 업무에서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사안이었기에 담당 안열 차장과 함께 수정 작업을 논의했지만, 처리가 지연되어 안타까움을 느꼈다.


또 다른 문제는 관리위원회 소속 직원의 대출 처리 과정에서 송금 처리 중 내부 전산 조작 문제로 입금이 중복 처리된 사례였다. 본사 전산부와 7번의 협의 끝에 재무상태표를 정정할 수 있었지만, 이러한 상황의 근본 원인은 개성공단의 특수한 통신 환경 때문이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지점장 또한 업무 처리의 미흡함을 지적해 야속한 마음이 없지 않았고, 어디에 하소연한들 허공 속 메아리처럼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은행 업무에서는 단 1원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았다. 지금은 전산 시스템 발달로 창구 직원들의 시재금을 개인별로 관리할 수 있지만, 종합 온라인 시스템이 개발되기 전 은행에 입행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당시에는 창구 직원 20여 명이 영업하고 본출납 직원이 합산하여 시재금을 정리했다. 잔액이 맞지 않으면 모든 직원이 남아서 마지막 1원까지 찾아 맞추는 것이 일상이었다. 밤 10시 전에 퇴근하는 것은 한 달에 두세 번에 불과했다. 그 시절 선배들로부터 들은 무용담 중에는 대형 지점에서 미혼 남녀 직원 두 명이 대형 금고에서 돈을 찾다가 다른 직원들이 문을 잠그고 퇴근해 버려서, 나중에 그 두 직원이 결혼까지 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었다.


개성공단은 이러한 독특한 상황들을 안고 있었다. 우리은행 본사와 모든 해외 지점은 온라인 네트워크로 실시간 회계 처리가 연동되었지만, DMZ 군사분계선이라는 특수한 지역 여건상 개성공단만은 예외였다. 전용선 설치를 지속적으로 건의했지만 은행만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개성공단 지점 자체 전산 시스템으로 당일 업무를 마감하는 데 만족해야만 했다.


가장 답답했던 점은 본사 영업부 예금 계좌와 개성공단 지점 예치액 간의 불일치가 주기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국내 기업의 송금과 개성 현지의 팩스 통지 간 송금 내역서 팩스 송수신상의 시간적 차이가 주된 원인이었지만, 은행원으로서 이러한 상황을 그저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아직은 본격적인 송금이 많지 않고 독도처럼 작은 지점이지만, 엄연히 은행의 한 점포로서 모든 업무가 정확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구성원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외환 업무 처리나 잔액 관리 방식에서 때로 의견 차이가 생기기도 했고, 이러한 조율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었다.


만약 서울이었다면 본점 검사부에서 수시로 모니터링하여 불현듯 해당 지점을 방문해 시정 조치하고 벌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 미연결에 따른 확인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개성공단 방문은 3주 전 북측 초청장과 출·입경 신고라는 복잡한 절차가 필요했다. 웃으며 검사부 출현도 안 된다고 자위했지만, 근본적인 은행원의 자세와 책임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이러한 물리적 제약이 심리적으로도 영향을 미쳐, 자유와 비자유의 경계선에서 펜스 안 동물들처럼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런데도 이 모든 것이 개성공단에서 은행 업무를 개척해가는 과정의 성장통이라 여기며, 동료들과 함께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늘 답답하다고 호소하는 동료 안 차장의 가슴속에 점점 쌓여가는 분노를 어떻게 다독여 주어야 할까.


다음 주말 본사 영업부 당좌 계정 대사와 연초 업무 계획의 ID카드 설치 관련 부서, 금융결제원 방문 사전 협의 등 출장 계획에 아직 5일이나 남았지만, 벌써 꿈이 부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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