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 주재원 섬김의 마음, 무산된 독서실 꿈 (23)
급여(노력비) 지급 방식을 둘러싼 갈등
공단 내 현지기업 준공이 늘면서 북한 근로자들 또한 점점 증가하는 상황에서 매우 예민한 문제인 북한 근로자의 임금 지급 방법이 핵심 안건으로 부각되었다. 개성공단 진출 현지기업들과 당장 우리 지점에도 근무하고 있는 북한 근로자의 임금(월급), 소위 그들이 말하는 '노력비'를 당연히 해당 기업이 개개인별로 지급함이 타당하고, 일 잘하는 직원에게는 성과에 따라 성과급과 야근 시 야근수당 등을 지급함은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북측 관계자들은 일괄로 근로자 인원수 곱하기 개인당 월 60여 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을 총액으로 기업 급여 담당자로부터 한 번에 북측 관리자 본인들이 수령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는 단순한 관리 방식의 차이를 넘어 체제 유지에 대한 북측의 근본적 우려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북한 당국이 개별 기업의 개인별 성과급 지급 방식을 허용할 경우, 사회주의 통제 배급 체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개성공단을 총괄 관리하는 북측 기관인 중앙특구개발총국이 우리 신원에벤에셀을 비롯한 현지 기업으로부터 받은 임금에서 사회보험료(15%)와 사회문화시책비(30%)를 소위 사회주의 국가시책 운영기금으로 공제하고 쌀, 밀가루, 채소 등의 상품공급권과 일부 현금을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북측 방식은 단순한 관리 편의가 아니라 사회주의 체제 유지를 위한 필수적 장치였던 것이다.
만약 개별 기업이 직접 근로자에게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한다면, 이는 국가 통제 하의 평등 배급 원칙을 훼손하고 자본주의적 경쟁 논리가 스며들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북한으로서는 경제적 실익과 체제 안정성 사이에서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딜레마 속에서 관리위원회 및 북측 총국 관리자 간 의견충돌이 이어지며 2월 달 급여는 주지도 받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던 중 관리위원회 고위급 임원이 박사학위 논문 연구용 목적의 책을 소지하고 개성공단에 들어가던 중 북측에서는 '금서 소지자'라는 이름으로 북측 세관에서 적발되어 즉시 추방되었고, 또 다른 간부 또한 임금 지불 방식 협상에 따른 앙금인지 그 깊은 속사정은 모르겠지만 북측이 체류증명서라 할 수 있는 초청장 연장을 해주지 않아 개성공단 사무실로 출경하지 못하고 서울에서 대기하는 매우 민감한 일이 발생했다.
유감스럽게도 불똥이 튀었다.
은행장의 전폭적인 성원과 나의 열정 어린 독서실 설치 의지와는 다르게 급여 지급 문제와 책 반입에 따른 북측 당국의 강한 조치 등으로 공단의 분위기가 급속히 냉각되는 모습을 보며 지점장도 '몸 조심하자', 또한 당시 국제부장도 '어수선한 시기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어 문제 생기는 것보다 조용히 있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는지 그다지 호응이 없어 책 반입 겸 독서실 설치는 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어갔다.
고위급 간부의 논문 연구 공부용 책이 이곳 입장에서는 차마 눈뜨고 용인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다소 이해도 되지만, 주말 책 읽고 독후감 쓰고 싶었던 그 작은 공간의 작은 소망이 물거품이 되기에 참으로 아쉬운 마음뿐이었다.
나 개인의 독서 욕심도 없지 않았지만, 개성공단에 은행원이나 기업 근로자를 떠나 먼저 들어온 전입자로서 경험하고 있는 주말의 환경과 상황에서 입주기업 주재원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보듬어주고 싶었던 포용의 마음이었다고 할까. 그 아쉬운 마음만은 지금도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다. 2005년 새싹이 막 오르기 시작하는 초봄날의 이야기다.
연재 글을 쓰면서 작은 독서실 설치 꿈을 달성하지 못한 당시의 아쉬움에 인공지능 AI한테 독서실 디자인을 부탁하니 뚝딱 멋진 그림을 보여준다. 지어본다. '개성공단 평화통일 독서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