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부조화의 현실과 동료애, '花樣年華' (26)

by 윤석구

[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 인지부조화의 현실과 동료애, 그리고 '花樣年華' 아니 '華樣蓮花' (26)


스트레스로 입술이 터지고, 제한된 활동 반경에 답답함에 동료는 복귀
분단 현실과 통일 의지 사이에서 균형 잡으며 살아간 특별한 시간

DMZ을 경계료 마주보고 있는 태극기와 인공기
도라산전망대에 설치된 DMZ


개성공단에 선적으로 입점한 우리은행, 개성공단 발전 및 향후 전개될 개성관광객의 원활한 출입 지원을 위한 현대아산, 향후 개성공단과 북한의 개혁개방 시 다른 은행들의 입점 등 금융결제시장의 먼 미래를 내다보고 참여를 희망하는 금융결제원, 선진화된 남측 경의선 및 동해선 출입사무소의 이미그레이션과 실질적인 방문객들을 위한 통일부까지.
지금 와서 생각하면 김포공항이던 인천공항이던 바이오 인증 출입의 여권 사진을 단말기에 대면 자동으로 검색대 문이 열리는 가장 기초 수준의 방식이라 할까. 하여튼 출입사무소의 직원이 일일이 확인하는 절차 종이 방문증에서 다기능 카드의 상당히 진보된 출입 프로세스 개선만큼은 확실하다는 생각이었다.


참여기관 모두의 공통적이고 생산적인 개성공단 발전을 위한 측면에서 금융의 선구자로 역할에 한 발걸음씩 나아가는 생각이 있음에 고마운 마음을 간직했다.


짧은 출장의 성과를 안고, 다시 일터인 DMZ를 넘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하지만 서울 출장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보니, 함께 이곳에 온 동료 차장의 모습이 예전 같지 않았다. 그 밝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현지 생활에 점점 지쳐가는 것이 보였다.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인지부조화랄까. 남북경제협력이라는 숭고한 목적을 위해 일한다는 신념과 실제로는 극도로 제한된 환경에서 고립되어 있다는 현실 사이의 모순. 이 간극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평소보다 목소리가 높아지고, 전화통화에서도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워했다. 심지어 스트레스로 입술이 터지는 신체적 증상까지 나타났다. 제한된 활동반경 안에서의 답답함이 이런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동료의 모습을 지켜보며 깊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사람이 이런 상태가 된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특수한 환경이 만들어낸 구조적 한계였다.


남북경제협력이라는 대의명분 앞에서 현장 사람들의 현실적 어려움은 종종 간과되기 쉽다. 하지만 그 명분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개개인이 겪는 심리적 갈등 또한 중요한 문제였다. 결국 동료는 스스로 본국 귀국을 신청했다. 그의 선택을 탓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건강한 결정을 내린 것이라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개성공단에서의 나 자신의 1188일은 단순한 근무 기간이 아니었다. 분단 현실과 통일 의지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살아간 특별한 시간이었다. 그 모든 경험이 12년간 이어진 남북경제협력 개성공단의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각자 다른 길을 택했지만, 우리는 모두 그 시절을 함께 견뎠다.


그는 6개월, 나는 3년 1개월. 어찌 보면 그 시간이 내 삶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아니 '화양연화(華樣蓮花)'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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