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십자가, 내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27)

by 윤석구

[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 개성공단에 십자가가?내 눈을(27)

종교의 자유가 없는 개성공단에 최초의 교회 생겨, 찬송가 부르고 예배 공간 마련 자체가 하나의 사건


그린닥터스 개성병원 행정부원장 조희억 목사가 신원에벤에셀 개성법인 공장 건물 내 설치한 예배당에서 설교를 하고 있다.


그린닥터스 개성병원 행정부원장 조희억 목사가 신원에벤에셀 개성법인 공장 건물 내 설치한 예배당에서 설교를 하고 있다.
출장 겸 사흘을 서울에서 보내고 다시 내 위치인 개성공단 사무실로 복귀했지만, 잇몸이 붓기 시작하면서 통증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밤에 거의 잠을 못 잘 정도로 심한 그 고통. 비상약을 준비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왜 잇몸이 붓고 아플까? 당연했다. 부자연스러운 공간에서 본인도 모르게 활동의 제약을 받는 환경에 따른 스트레스가 몸에서 스스로 반응을 일으킨 것이었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다. 자신이 선택해서 생긴 잇몸의 고통은 원망도 할 수 없다. 그 잇몸의 통증을 스스로 인내해야 했다.

솔개가 40년을 살면 부리가 구부러지고 발톱은 무뎌지며 깃털이 두꺼워져 날기조차 힘들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때 솔개는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아니면 고통스러운 변화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변화를 택한 솔개는 바위산으로 날아가 바위에 부리를 부딪쳐 부수고, 새 부리로 무뎌진 발톱을 뽑으며, 두꺼운 깃털까지 뽑아내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30년을 더 산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의 나이가 아닌가! 앞으로의 30년을 위한 고통스러운 변화의 시작이 이 잇몸의 통증이라면, 이곳 개성공단의 근무 환경이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감내 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임시병원 그린닥터스에 있는 아스피린 두 알을 먹고 잇몸이 가라앉기를 기도했다. 아침 식사를 물에 밥 말아 먹고 아무도 없는 지점에 들어가 믹스커피를 젓고 다시 찬물을 넣어 한 모금 마실 즈음, 그린닥터스 개성병원에서 사역하시는 조희억 행정부원장이 방을 노크했다.

"잇몸도 아프고 마음도 편치 않을 것이고 허전한 마음도 달랠 겸, 신원에벤에셀 공장 마루바닥 교회에 가자"고 또다시 손목을 잡는다.

조용한 주말 아침, 못 이기는 체하고 따라나섰다.

지난 연초 신원에벤에셀 주재원 숙소 방바닥에 쪼그려 앉아 찬송가를 부른 적이 있어, 실제로는 오늘이 두 번째 가는 날이다. 서울 집에서는 매주 주일이면 아이들 교회 가는 데 자동차 기사가 되어주곤 하여 십자가와 교회 건물이 그렇게 낯설지는 않지만, 오늘은 너무도 신기하고 정말로 대단한 생각이 들 정도로 북녘에서의 변모된, 아니 발전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원에벤에셀 숙사 방에 앉아 예배했던 수개월 전 모습


지난번처럼 방바닥에 쪼그려 앉아 기도하겠지 하고 신원에벤에셀 건물에 도착했는데, 아니 공장 건물 바닥은 에폭시로 말끔하게 단장되었고 약 200여 평 되는 내부 건물 중앙에 십자가가 설치되어 있고, 강대상과 의자 그리고 교인들이 앉아 기도할 수 있도록 철제 의자에 찬송가 책까지 말끔하게 준비되어 있지 않은가?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고, 언제 이렇게 훌륭한 예배당을 만들었는가? 감탄과 설렘이 교차 되어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어려운 환경의, 종교의 자유가 없는 이곳 북녘 개성공단 땅에 최초의 교회가 생겨 십자가가 설치되고 찬송가를 부르고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는 그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기에 너무도 흥분되고 가슴 벅차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나는 아직 종교를 가져야겠다는 어떤 신념 또는 확신이 없는 입장이지만, 이런 공간에서 마음의 의지를 할 수 있다는 그 자체와 북한의 주민에게 어떠한 루트이든지 간접적이라도 위로를 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그 자체에 감탄하고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 신원 에벤에설 황우승 법인장님, 작년 연말 처음 이곳에 오셨을 때 몇 명이 컨테이너 숙소에서 기도하시는 건 살짝 본 적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십자가를?"


윤석구 건영사이버대 교양학부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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