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 會者定離, 안 차장을 보내며(29)
"자유 대한민국 땅 자유로 길을 달려 그리운 가정의 품으로"
특별한 땅에서의 인사이동...본인 신청에 따른 귀국이라 마음이 무거워
개성공단지점 초기 직원들, 좌로부터 북측 김명옥 행원, 안열차장, 김기홍지점장, 필자
지난 3년 전부터 대각국사 의천이 출가해 35년간 주석하며 한국 천태종을 개창한 유서 깊은 고찰인 개성 영통사 복원에 혼신을 다하시는 무원스님이 관리위원회 숙소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우리 지점에 오셨다.
스님이 오시면 반가웠다. 향후 관광 가능성이 높은 박연폭포, 영통사 등 개성과 관련된 분을 우리 지점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셨다 한다. 풍채도 좋으시고 인상도 좋으셨다.
정중히 합장의 예를 갖추고 따뜻한 인삼차로 대접했다. 그때는 영통사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수개월 후 복원식이 대대적으로 거행되었다. 무원 스님은 천태종 본사인 구인사에서 북측과의 문화접촉을 통한 동질감 회복을 위해 복원사업에 깊게 참여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영통사는 29칸으로 불국사보다도 더 큰 절이라는 말씀도 해주셨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무원 스님이 다녀가시고 얼마 후 동료 안 차장의 귀국 송별회를 가졌다.
만남에는 반드시 헤어짐이 따른다.
부처님은 회자정리가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라 하셨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진리를 받아들임으로써 현재에 충실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하셨다.
어찌 하여 북녘땅에서 함께 근무하게 되었을까. 개성공단 우리은행 지점 초대 개설 인원으로 발령받아 통일금융의 역군이 되라고 부처님이 맺어주셨던 것일까.
회자정리, 처음 가졌던 꿈을 달성하지 못하고 떠나지만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는 가르침처럼, 그리운 가정의 품으로 향하는 동료 안 차장을 지점장과 북측 참사의 안내로 봉동관에서 송별했다.
안쓰러운 마음 더 보듬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으로 북측 명주 들쭉술에 개성소주,대동강맥주를 섞어 마시며 서울에서 다시 만나자고 손가락을 걸었다. 봉동관 봉사직원의 '다시 만나요' 기타 반주를 뒤로하고, 아쉬운 마음에 컨테이너 숙소에 돌아와 잠이 오지 않을 때 한 모금씩 마시는 비상용 냉장고 보관 발렌타인을 꺼내 석 잔을 더 따라주었다.
그 순간 배고프다며 컵 라면을 끓이는 안 차장의 순진한 면이 정겨웠다.
이 특별한 땅에서의 인사이동 그것도 본인 신청에 따른 귀국이라 마음이 더욱 무거웠다. 사방이 펜스로 둘러싸인 작은 섬 같은 이곳에서, 주말이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컨테이너 숙소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뿐인 답답함을 늘 긴장 속에서 지내야 하는 이 환경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동료의 선택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임을 이해했다. 더 깊이 공감하고 위로해주지 못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이제 혼자 남겨진 이 먼 땅에서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다음 날 떠나는 동료 안주머니에 이별의 편지 한 통을 넣어주었다.
'개성공업지구를 떠나는 안 차장 선생께!'
"今日 我行跡 遂作後人程.
오늘 내가 가는 발자취는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느니라. 서산대사로 일컬어지는 선시 중 한 부분입니다.
안 차장과의 이별을 참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안 차장의 발걸음은 가슴속 깊이 남아 있을 것이고 개성공단 발전의 원동력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그 추운 겨울날 먼저 들어와 흙먼지에 밥알을 삼키며 점포를 만들고, 그 어려운 통신환경 속에서 전산 프로그램을 다루며 눈치코치 다 보며 지나온 지난 140여 일.
이 땅에서 하루하루 인내의 연속시간들 다행히 잘 버텨내고 떠나는 안 차장께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선생이 견뎌내야 했던 무게를 더 깊이 헤아리지 못한 저 자신을 미워합니다. 더 따뜻하게 감싸 안아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좋지 않았던 감정은 모두 송악산에 묻고 좋은 감정만 간직하고 가볍게 출발하시길, 나도 언제 서울로 소환될지 모르지만, 아쉬웠던 서글픔들 국내에서 흠뻑 취해봅시다.
건강을 염려하며 가끔은 이곳 지점에도 전화 주시고요.
끝으로 김명옥 동무가 가끔 콧노래로 부르는 심장 속에 남는 사람 그 노래 가사가 선생의 발걸음에 잘 맞는 소절인 듯해 한 줄 덧붙입니다.
'인생의 길에 상봉과 이별 그 얼마나 많으랴'
그렇지요. 작년 9월 23일 상봉과 오늘 4월 14일 이별, 아프고 쓰라렸던 마음 남은 것 있다면 임진강에도 다 던져버리시고."
그렇게, 그렇게 동료 안 차장은 자유 대한민국 땅 자유로 길을 달려 그리운 가정의 품으로 돌아갔다.
나는 개성공단에 혼자 남아, 동료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그가 견뎌낸 시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슴에 안고 또 다른 하루(2005.04.14)를 맞는다.
초대 우리은행 개성공단지점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 안 차장 선생, 그 어려운 길을 함께 걸어준 것만으로도 고마웠소. 수고 많았소./윤석구 한국열린사이버대 특임교수(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