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선생 귀향길, 갓 쓰고 도포 입고] <좌충우돌 인생이막 91호 2026.4.2>
경상북도·안동시·도산서원이 주관하던 퇴계 귀향길 행사가 문화체육부로 격상되어, 제6회 행사가 지난 월요일 경복궁 만춘전에서 개최되었다. 서울 경복궁에서 안동 도산서원까지 270킬로미터, 약 700리를 14일간 걷는 순례길이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참가자 규모가 세 배 가까이 늘어 250여 명이 함께했다. 경북도는 이 길을 '동양의 산티아고'로 브랜드화하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문학적 문화콘텐츠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나도 그 250여 명 중 재현단의 한 사람으로 그 길에 섰다.
1569년 음력 3월, 퇴계 이황 선생은 경복궁 만춘전 앞에서 임금의 윤허를 받고 고향 안동으로 떠났다. 선조 임금과 조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역 발전과 후학 양성을 위해 내린 결단이었다. 지금의 금호역 아래인 두뭇개 나루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이튿날 아침 나룻배에 몸을 실어 봉은사에서 두 번째 밤을 묵었다. 그것이 선생의 마지막 귀향길이 되었다.
457년이 지나도록 그 긴 역사위에 그 길 위에 살짝 발을 내 딛었다. 작년 개최일 앞두고 산불로 인해 취소되어 더 큰 기대를 간직한채 이틋날 뜻밖의 만남이 있었다. 국제퇴계학회 이광호 교수님이셨다. 다가가 인사를 드렸다.
"명재 선생 종원으로 Y 아무개라 합니다."
교수님께서 반색하시며 두 분 사이, 특히 명재 선생께서 퇴계에 대한 학문적 깊은 사연을 나눠주셨다. 나 또한 의기양양하여 아는 대로 말씀을 올렸다. 1519년 성균관 명륜당 은행나무를 손수 식재하신 직계 선조 평와공(平窩公) 윤탁(尹倬) 선생, 당시 퇴계 선생께서는 성균관에서 바로 그 평와공의 강의를 받으며 깊이 흠모하셨다. 그 인연을 잘 알고 계셨던 명재 선생께서는 제자들에게 늘 이리 말씀하셨다 한다.
"내 밑에서 공부하려거든 맨 먼저 퇴계를 공부하라."
평와공 윤탁 → 퇴계 이황 → 명재 윤증 — 그 학맥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고 있는 후손이, 오늘 이 귀향길을 함께 걷고 있었다.
봉은사에 도착했다.
조선은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했다. 사찰은 쇠락하고 스님들은 갈 곳을 잃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퇴계 선생은 달랐다. 보우 스님을 비롯한 불교계에 각별한 정성을 기울이며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다. 유교의 선비가 불교를 품었던 것이다. 떠나가는 퇴계 선생을 위해 봉은사 스님들이 지극정성으로 하루 밤을 모신 것은 그 은혜에 대한 보답이었다. 학파와 종교를 넘어 사람을 향했던 선생의 마음이, 1,230년 역사의 사찰 경내에 봄꽃처럼 피어 있었다.
보우당에서 연극이 시작되었다. 기대승, 박순, 김성일, 이순인 등 제자들이 스승의 마지막 귀향 앞에 찾아와 석별의 시를 나누었다. 퇴계 선생께서 응답하셨다.
원컨대 한강물 떠서 벼루에 담아 갈아서
끝이 없는 이별의 시름 써 보내고 싶어라
"봉은사 나루터에 이르렀나니, 내 이제 떠나노라."
마지막 대사가 울려 퍼지는 순간, 객석은 고요해졌다.
사흘째 날, 봉은사 나루터를 출발해 구리를 지나 남양주 다산 유적지로 향했다. 한강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봄볕이 따사로웠다. 도포 자락이 바람에 나부끼고, 갓 위로 햇살이 쏟아졌다.
그 길에서 웃음이 터졌다. 갓 쓴 어른과 작은 아이가 손을 맞잡고 걷는 뒷모습, 누가 봐도 할아버지와 손자였다.
"할아버지 손 잡고 걷는 길이 재밌니?"
그 아들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며 외쳤다.
"할아버지요, 저의 아빠인데요!"
민망한 마음속에 폭소가 퍼졌다. 갓과 도포가 빚은 착각이었지만, 아버지가 아들의 손을 잡고 선현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 그 모습 자체가 이미 퇴계의 가르침이었다.
행렬이 해우소(解憂所) 앞에 멈췄다. 예사롭지 않은 사찰의 문구처럼, 퇴계 선생도 강을 건너고 말을타고 걸으시며 벼슬의 무게, 시대의 근심을 한 걸음씩 내려놓으셨을 것이다. 우리도 각자의 근심 하나씩을 그 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럼에도 갓이 풍덩 빠질까, 도포 자락과 옷소매에 혹시나 거시기가 묻지 않을까? 해우소(解憂所)가 아니라 근심소(近心所)가 따로 없었다.
셋째 날 목적지인 다산 유적지를 관람한 후, 숙소인 남양주 해태 연수원 강당에 모였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퇴계의 서책을 읽고 질문을 드리면, 퇴계 선생이 답하는 형식의 강연이었다. 그 말씀이 오늘 이 시대를 향한 것처럼 울려왔다.
"자신의 분수를 헤아리지 못한 채 마땅히 사양해야 할 것까지 모두 받아들이고, 물러날 줄 모르고 나아가기만 하는 것을 임금을 섬기는 바른 태도라 여긴다면, 이는 도리에 맞지 않는 처신입니다."
"알아주지 않음을 원망하기보다, 알아주지 못할 만큼 부족한 저를 부끄러워할 뿐입니다.
능력이 없음에도 자리를 보전하고, 물러날 줄 모르는 이들이 넘치는 이 시대에" 500년 전 노 정객의 말씀이 서늘하게 가슴을 찔렀다.
퇴계의 정신은 경(敬) 한 글자다. 늘 마음을 깨어 있게 하여 흐트러지지 않는 것, 선생이 평생 붙들었던 가르침이자, 귀향길 14일의 걸음걸음에 담긴 뜻이었다.
500년에 가까워지는 이 봄, 250여 명의 발걸음이 도산서원을 향해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양평·여주, 충주를 지나 죽령을 넘어 경북 영주까지, 긴 여정이지만 한 걸음 한 걸음 퇴계 정신을 가슴에 새기며 걷다 보면, 4월 12일 도산서원에서 선생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모두 무사히, 그 길의 끝에 서기를 바란다. 서서히 통증 증상이 나타나는 발목을 염려하며……
2026년 4월 1일, 님양주에서
윤석구 (건양사이버대학교 교양학부 경영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