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 "치고받고 싸웠습니다"(28)
하루빨리 남북의 교인이 함께 모여 기도드릴 수 있기를 소망
이렇게 멋진 예배당을 만들기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은 황 법인장께 재차 여쭈었다.
"법인장님, 어떻게 십자가와 강대상 장비를 들여올 수 있었습니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고 북측 CIQ 세관원들이 그냥 두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어휴 말도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인지 들어오는 날 북측 군인은 인원만 확인하고 세관원들이 있는 CIQ에서도 그냥 가라기에 속으로 미소짓고 공장 건물까지 잘 통과하여 들어왔는데 나중에 보니 세관원들이 뒤따라 오더군요.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니고 10여 명이 오더니 십자가를 보고 내래 질겁 후 무조건 짐을 다시 포장하여 남측으로 되돌려 보내라고 하더군요."
"할 수 없이 그날 오후 서울로 내려보냈고 그 다음 주 십자가 세로목, 그리고 그 다음 주 가로목으로 나누어 반입했지요."
그렇게 해서 십자가를 설치했는데 어느 날 세관원 및 잘 모르는 관리자급들이 이곳에 와서 당장 떼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 아니겠어요.
북측 세관들과 두 시간 여 싸우다가 지쳐 포기할 생각도 없지 않았는데요. 오기가 생기고 여기서 물러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치고받고 싸웠습니다. 그리고 개성공업지구법에 분명히 "종교의 자유가 있지 않은가?" 주장을 하였죠.
그 주장을 하니 북측 세관원들이 그들의 상관이듯 참사에게 보고를 하더군요. 그리고는 십자가를 차에 싣고 참사들이 근무하는 현대아산 개성사무소 인근 그들의 사무소로 가지고 가더군요.
그 후 아마 평양까지 보고를 하고 허락을 받았는지 3~4시간 후에 일부 못 이기는 체하며 양보를 하는 듯하면서 십자가를 갖고 가라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십자가와 함께 저 또한 추방당하지 않을까 등골이 오싹하고 오금이 저려 무척 힘들고 얼마나 마음고생 많이 한지 모르겠습니다."
십자가를 설치하는데 그 얼마나 고충이 많았을까? 그때 상황이 짐작이 가고도 이해가 되어 남의 일이 아니라 꼭 내가 경험했던 상황으로 오버랩 되었다.
우리 지점을 만들기 위하여 어떤 날은 통일부 2번, 현대아산 4번도 방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서울에 있을 때여서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개점식 행사 2일 전날에까지 초청장이 나오지 않아 너무도 당황하였고, 행사 당일 현수막 및 아치 글씨를 문제 삼아 얼마나 애를 태웠던지.
그런 생각에서 '십자가를 갖고 들어와 예배당을 만들고 기도드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니' 정말로 대단했고, 어느 정도 용인해 준 북측 관계자들에게 한편으로는 고마운 마음도 생겼다. 특히 그 어려움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힘으로 예배공간과 십자가를 설치한 황 법인장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오늘 아침 신원 건물에 입장하는 교인들은 북측 경비원의 철저한 직무(?)에 의거 법인명과 본인의 이름을 기록하고 예배당에 들어왔다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록 교인은 아니지만, 이 땅 개성에 교회가 설치된 그 자체가 너무도 고마웠고 참석하여 예배를 드리는 10여 분 남짓한 교인들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것을 보면서 하루빨리 남북의 교인이 함께 모여 기도드릴 수 있고 자유스러운 대화와 자유스러운 왕래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마지않았다.
십자가 창문 너머 MDL을 사이에 두고 높이 100m 철탑 위에 나부끼는 태극기와 인공기가 오늘따라 더욱 가까이 보이고 다정하게 보인다.
아마도 이곳 문화에 서서히 익숙해짐이 아닐까? 또한 하나님에 대한 기도의 힘인지 잇몸 통증도 조금은 가라앉는 느낌이라 할까.
참고로 개성공업지구 내에서 최초로 교회를 만드시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황 우승 법인장과 그린닥터스 병원의 부원장으로 무료봉사의 행정업무를 도맡은 조희억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