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끄시오! 이름?(30)

by 윤석구

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 라디오 끄시오! 이름? (30)

北 군인 애칭 카리스마의 살벌한 눈 의식...북녘 진입 시 인원 점검이 주목적
"언제쯤 간단한 수속으로 남북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을까?"

'남측 차량'이라는 것을 북측 관계자들이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오렌지색 깃발을 부착했다


군사분계선 MDL을 통과 북측 땅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것은 차량 탑승자 인원수를 체크하는 북측 군인이다. 남측 주재원들이 지어준 애칭이 '카리스마'였다.


가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TV에 비친 북한군들의 모습에서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는 본연의 모습처럼, 북한 땅 진입 시 차량에 탑승한 인원점검이 주목적인 그 북한 군인의 살벌한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차량을 세우고 조수석 창문을 내렸다. 통상 북측 군인이 차량 내부 인원을 확인할 때는 라디오를 꺼야 하는데, 깜박 잊었다.

순간 "라디오 끄시오."

명령이 떨어지자 내 몸이 움찔했다. 한참 내 눈을 뚫어 져라 쳐다보더니, 카리스마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로 한마디를 던졌다.

"이름?"

은근히 겁이 났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아마 껌을 씹고 있었고, 라디오를 끄지 않아서 그 북측 군인 기분을 상하게 했나 보다.

완전히 기가 죽은 상태에서 라디오를 공손히 껐다. 이름이 뭐냐는 질문에 파리만 한 목소리로 "윤석구입니다" 하고 답했다.

내 자신이 참으로 초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솔직히 비참한 생각뿐이었다.

나도 엄연히 대한민국 장교 출신이다. 임관 전 후보생 시절 21사단 GOP 근무 경험도 있어서 무서울 것 없다고 생각했는데. 남의 땅이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괜한 시비에 휘말리기 싫어서일까?

잠잠하던 마음이 심하게 흔들리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뭣 때문에 무엇을 얻기 위해서 이렇게 힘든 지역을 다니는가? 남북경제협력의 선구자라는 자부심뿐인데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언제쯤 되어야 간단한 수속으로 남북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을까?

그런 상태에서 북측 CIQ 세관원의 차량 내부 및 트렁크 검사에서 포장용 신문이 그들의 눈에 발견되었다.

"윤 선생, 남측 신문은 가져오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걸 알만한 사람이 이게 뭡니까?"

"앗, 정말 죄송합니다."

불현듯 얼마 전 관리위원회 직원 등 일부가 출입경 제한을 당했다는 소식이 떠올랐다. 어쩔 수 없이 공손한 태도를 취해주었지만 정말로 비참하다는 생각뿐이었다.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개성공단 상공의 달을 보며 자조적으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가(閑山島歌) 시조 읊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閑山島月明夜上戍樓(한산도월명야상수루)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撫大刀深愁時 (무대도심수시)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할 적에

何處一聲羌笛更添愁(하처일성강적갱첨수)
어디서 한 가락 피리 소리는 남의 애를 끓나니.'

3주일 후의 일이다. 주말에 서울에 내려가 기관 방문 업무협의 등으로 관리위원회 내 세탁실에 셔츠를 세탁 의뢰했다. 약속한 금요일 12시에 세탁이 되어있지 않았다. 북측 세탁담당 봉사원에게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느냐"고 한마디 했다.

하루 세끼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밥을 먹는 아라코 요리사에게도. 평생 음식에 대해 타박하지 않던 내가 조리 실장에게 공개적으로 한마디 했다. 많은 주재원이 거론하는 음식 맛에 대해서였다.

"갈치는 싱겁고 단무지는 딱딱하고 김치는 미원이 많이 들어간 듯 달아요."

오전 10시쯤 잔뜩 화가 난 아라코 지점장이 따져 들었다.

"정성을 다해 음식을 준비하는데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시오?"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정말 너무도 어려운 환경에서 세끼 얻어먹는 것만도 감사한 일이었다. 세 치 혀를 함부로 놀린 자신을 그때야 나무랐다. 이곳 나갈 때까지 음식 타령 안 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진짜 공포는 지금부터였다.

도라산전망대 내에 설치된 북한지역 모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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