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받는 일상...南기관원 아닌가 의심(31)

by 윤석구

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 감시받는 일상...南기관원 아닌가 의심(31)


김명옥, "조용히 계시다가 주어진 업무만 보고 서울로 소환당하는 것이 가장 좋을 듯" 조인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北의 방식에 맞춰 살아야겠다" 다짐

서울로 가지 않은 주말에 취미로 시작한 골프 연습. 북측 참사는 이를 문제 삼았다.


며칠 후 개성공단 100만 평 개발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한국토지공사 개성지사 사무실을 찾았다. 평소 보지 못했던 날카롭게 생긴 북측 참사 한 명이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마자 그는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어왔다. 그렇지 않아도 윤 차장 선생 한번 만나고 싶었소."

뭔가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CIQ 세관 검사 시 차량에 신문 있었소? 세탁소에서 불평한 적 있고, 식당에서 맛이 없다고 했다던데"

잠깐 말을 멈춘 그가 더욱 차가운 눈빛으로 이어갔다.

"주말이면 미국놈들 좋아하는 그 뭐시기냐 그물망에 대고 그 골프 연습인 듯 하얀 공을 딱딱 때리던데, 윤 선생은 개성공업지구에 놀러 왔소? 일하러 왔소?"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순간 깨달았다. 내가 한 모든 말과 행동들 세탁소에서의 불평 식당에서의 투정 심지어 주말 골프 연습까지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체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끼리 남측 주재원들의 생활 모든 것을 소위 총화 시간을 통해 보고했고, 이 참사는 그 모든 내용을 보고받고 관리 겸 기록으로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던 것이었다.

몸이 점점 꽁꽁 얼어붙었고 입이 바싹 마르기 시작했다. 뒤통수를 얼음장으로 때린 듯한 충격의 시간 당해보지 않고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내가 완전히 벌거벗겨져 있었구나.'

다리가 후들거렸다. 덜덜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사무실에 있던 김명옥 북측 직원을 찾았다. 토공소속 참사와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이런 말 하기 그렇습니다만, 윤 차장 선생이 신중히 자중하며 의욕을 조금 줄여서 행동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근무하는 저는 선생님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곳은 누가 누구를 보호해주지 않습니다. 남측 선생들이 저한테 말 못 하는 부분이 있듯이 저도 윤 차장 선생님께 말 못 하는 것이 있습니다. 조용히 계시다가 주어진 업무만 보고 근무 마치시고 남측 서울로 소환당하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합니다."

'소환'은 인사명령을 의미하는 북한용어다. 김명옥 행원의 말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본 후 더욱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북측 참사 중 일부는 윤 선생님을 남측 모 기관이 파견한 위장 은행원 아니냐라고도 하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밤새 잠을 못 잤다. 격 주말 MDL을 넘을 때까지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염려가 있었다. 북한 땅에서 얼마나 호들갑을 떨었으면 중간에 귀국했느냐는 그 소리가 너무도 두려웠다.

한국토지공사 개성공업지구 현장


토지공사에서 만난 그 참사 이름은 만지성이었다. 김일성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했다고 들었는데 그는 임수경 씨가 평양에 갔을 때 환영식에도 참가했다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제야 김명옥 행원의 말이 뼈저리게 와닿았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이곳에서는 이곳의 방식에 맞춰 살아야 했다. 앞으로는 정말 주어진 업무만 조용히 수행하며 지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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